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아이의 바쁜 발걸음을 잡는다.
아침마다 아이에게 말한다.
Hug me.
Give me a hug.
그리고 나의 입술이 아이의 귓가에 가 닿으면 조그맣게 말한다.
Happy monday!
행복한 하루 보내고.
잘 다녀와-
내가 너를 안아주는 것 같지만 사실,
내가 너에게 안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잊지 않고,
네가 나에게 사랑받는 사람임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랑받는 사람으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익히고 기억하자고.
그렇게 아침마다 두 팔을 벌려
서로를 꽉- 끌어안는다.
잔잔한 아침 인사가 끝나고
아이가 신발을 신고 나서면 나는 다시 한번 씩씩하게 외친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물, 나라의 희망, 나라의 미래!
청소년은! 나라의 기둥!
그러면 어린이는 묻는다.
- 왜 어린이는 세 가지나 돼요? 청소년은 한 가지인데?
-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얘기야. 알았지?
이제는 쿵짝이 맞아서
어린이는! 이라고만 외쳐도 그 어린이는 대답을 한다.
그날 내키는 걸로 한 가지만!
아! 청소년은 물론, 맞장구 쳐주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 사람! 하고 외쳐줄 때는 있지만
안는 것도 마지못해 해주는 판국이니 더 이상은 바라지 않는 걸로.
청소년은 잘못 건드리면 아주 피곤해진다. 흐흐흐
가끔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출 때까지,
혹은 쪼르르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로 가
아이가 땅을 걷는 그 모습까지 바라보곤 한다.
불편한 자세를 하고 서서 가만히...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런데 뒷모습은 왜 그렇게 애잔한 걸까...
< 사랑을 받는다 / 53x72.7cm / 캔버스 위에 아크릴 / 2020 >
안아야 한다.
많이 안아야 한다.
내가 안아주어야 하고 또 내가 안겨야 한다.
서로 그렇게 많이 안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따뜻하게. 잊지 않고.
온기를 잃지 않고 피부로 기억하며 살 수 있다.
몸으로 익히는 건 절대 잊히는 법이 없으니까.
마치 어릴 때 배운 자전거 타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