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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14. 2023

어스름에 어스름한 생각




어제 저녁 어스름,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던 남산 타워

참 예뻤는데.

아름다웠는데.


왜 아직까지 조명을 켜주지 않을까

반짝반짝 어둠 속에서 빛나면 더 예쁘지 않을까 아쉬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화려한 조명이 없어서 더 아름다웠던 거 같아.

그저 아무것도 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 좋다... 좋네. 했었으니까.


알록달록한 거.

치장하는 거.

꾸미는 거.

포장하는 거.

그거 생각보다 금방 질리는 거잖아.


때로는 그 화려함이

본질을 가리기도 하고

본질을 잊게도 하고

본질을 오해하게도 하고.


겉의 화려함이 반드시 내면의 요란함은 아닌데

겉과 내면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힘들 수도 있으니까.

지레 짐작하고

지레 도망가고

혹은 지레 무례하고.

그러기도 하잖아.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맑고 투명한 게 그저 이뻐 보이는 건

이십 대, 딱 그까지가 아닌가 싶기도 해.

내가 이십 대에 걸쳐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꼰대같이 이십 대가 훠-얼씬 지나고 보니

좀 덜 익은 언어들이 싱그럽고

좀 가난한 지갑이 더 아름답고

넘어지고 무너지는 밤들도 다 웃음이고

그저 뽀오얀 맨 얼굴이 가장 빛 나.

그 얼굴에 가득 담은 미소는 순수하고 영롱하고 말이지.


나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모르고

마구마구 꾸미려 드는 것을 보면

오히려 그것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마알간 마음을 마알간 눈에 담아 건네면

그게 그렇게 힘이 있고 멋지게 느껴지던데.





그런데 나이가 인생의 반쯤을 넘어 서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 같아.

생기를 잃은 겉을 꾸미듯

마음도 표현도 좀 꾸며야 하는 거 같아.

아니 사실, 이게 맞나 잘 모르겠는데...

여전히 솔직한 사람은 때론 두려움이 되기도 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부담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러잖아.


우아하고 고상하게 나이 들어가는 건 참 좋은데,

그러려면 자신의 마음까지 꾸며야 하는 걸까?

아니면 마음이 어떻든 간에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을 정제해야 하는 걸까?


좋아도 덜 좋은 척.

싫어도 덜 싫은 척.

보고 싶어도 안 보고 싶은 척.

안 보고 싶어도 보고 싶은 척.

괜찮아도 안 괜찮은 척.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마음은 반드시 같은 깊이로 흐를 때 안정이 되지.

어떠한 관계든지 서로의 깊이가 다르면 소용돌이를 일으켜.

안타깝다.

어쩔 수 없고, 어쩌지 못하는 일이야.


하... 모르겠다.

오래도록 답이 나지 않는 질문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오늘은 그냥 달달한 거 한 잔 마시고

그만 생각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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