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저씨들에게도 ‘정희네’가 필요하다.
남편의 아킬레스건이 터졌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온몸에 땀이 흥건하게 고이던 8월이었다. 그 더위를 비집고 야간 운동에 나갔던 그는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왼 다리를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으이그... 조심 좀 하지. 삐끗했나 보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와
그러게 뒤로 돌아서는데 갑자기 뻑! 하더라고...
라고 말하며 슬며시 눈치를 보던 그였다.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다며 그는 위태롭게 절뚝이며 다시 나가 축구팀 멤버에게 목발을 빌려왔다. 서 있을 수도 없는 그 다리로 타고 갔었던 자전거를 끌고 오고 다음날에는 여느 때와 같이 한 번의 버스와 두 번의 지하철을 갈아타며 새벽 출근을 했다. 남편도 나도 부상의 심각성을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었지만 이 날의 내 아둔함과 무심함은 두고두고 그에게 미안함으로 느껴졌다.
다음날 찾아간 스포츠 재활 전문 병원에서는 또래쯤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가 안타까운 표정을 서슴없이 드러내며 얘기했다.
아킬레스건이 터졌습니다. 좀 많이 끊어졌네요. 붙어있는 게 거의 없어요. 이건 수술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수술이요? 출근해야 하는데... 수술 없이는 안 되나요?
네. 이 정도 파열이면 자연적으로 붙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가능한 빠른 시간에 수술하시는 게 좋아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실 겁니다.
...... 얼마나 걸리나요? 수술하면 2~3일 뒤면 출근할 수 있나요?
허허... 심각성을 잘 모르시나 본데요. 이건 운동선수로 말하자면 치명상이에요. 시즌을 통으로 쉬기도 하고요, 1~2년 재활이 걸리기도 하죠. 조폭들 있죠? 예전에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조직끼리 싸움이 나면 상대방 조직원을 잡아다가 세워놓고 뒤에서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려요. 그러면 그대로 퍽! 주저앉아버리거든요? 그럼 다리는 거의 구실을 못하는 거예요. 실제로 그런 식으로 굴복시켰어요. 수술을 하고 나면 허벅지까지 통 기브스를 한 채 일주일 걸리고요. 입원하셔야 하고요. 전혀 움직이지 못하세요. 그 이후로 보조기를 차고 다리 각도를 조절해가면서 재활해야 하는데 빠르면 두 달? 두어 달은 출근이 힘드실 테니까 휴직하셔야 합니다. 2~3일 뒤에 출근이라고요? 허허허허. 그게 가능한지. 저도 그런 분 보고 싶네요. 허허허허허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다. 남편의 부상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눈에 보이는 부상이니 수술하고 재활하면 낫는 병인데도 가까운 사람의 병원 행은 언제나 덤덤해지지 않았다. 명치 아래에 턱! 하니 30kg의 새까만 돌덩이를 얹은 것만 같았다.
다음 날로 수술을 결정하자 또래의 남자 의사는 남편의 상황과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한마디 보태었다.
다시 잘 뛸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아니오, 선생님. 축구는 다시 하면 안 되겠죠?
나는 서둘러 의사의 말을 막아섰다.
아... 다시 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하는데..... 하... 하...
당황한 의사가 말끝을 흐렸다. 의사와 간호사가 멋쩍게 웃으며 힐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뭐, 어쨌든 잘해보겠습니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던 남편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그렇지... 이젠 좀 차분한 걸 해야겠지... 조깅이나... 걷기나 뭐 그런...
그간 남편의 조기축구회 모임을 반대하지도 않았지만 쌍수 들고 반기지도 않았던 나는 이번 부상을 계기로 그가 조금 더 안전한 운동을 하기 바랐다. 90분을 운동장에서 뛰기엔 이제 그의 나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술을 끝낸 남편은 의사의 말대로 2~3일 뒤에 출근을 하지는 못했지만 굳건한 의지와 직장인의 현실로 인해 두 달의 휴직이 아닌 2주의 요양 후 다시 출근을 했다. 거대한 보조기를 왼다리에 찬 채 기운 센 로보캅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재활이 계속되면서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남편의 배는 하루하루 도톰하게 살이 올랐지만 하루아침에 축구를 잃은 그의 표정은 시들시들 물기를 잃어갔다. '일주일에 딱 하루! 일요일 오전 일찍! 가족 스케줄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라고 약속하고 시작했던 조기 축구가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이 되고... 주중, 주말,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늘어나다가 종내 '회장'직 까지 맡게 되면서 점점 곱게 보이지 않았었다. 못마땅함은 마음을 뚫고 나와 간간히 핀잔과 잔소리를 흘리곤 했다. 어느 날은 눈치를 보다가 또 어느 날은 항변을 하고 그게 모자라 목구멍까지 억울함이 차오르던 날엔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며 소리를 치던 그였다. 그에게 축구는, 혹은 조기 축구는 그런 의미라고 했다.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 말이 나는 내내 서운했었다. 문득문득 그 말을 하던 그의 표정이 떠올라 내장이 베베 꼬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하루 활기를 잃어가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매일 새벽 일어나 조각 잠과 바꾼 씨리얼 한 그릇을 우유에 말아먹고 남보다 빠른 시간 출근길에 오른다. 버스와 지하철을 세 번에 걸쳐 옮겨 타며 1시간 20분 만에 일터에 도착한다. 10여 년이 넘는 동안 그의 업무시간 중 통화를 해본 적은 한 손에도 꼽을 정도이다. 퇴근길 다시 버스, 혹은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낮에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가끔 그는 똥이 마려운데 똥 눌 틈도 없다며 퇴근해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곤 한다. 피식하고 웃고 말지만 똥조차 맘 편히 눌 수 없는 서글픔이나 처연함은 그것이 그저 똥을 참는 육체의 고통뿐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들의 공부를 봐줘야 한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나와 그의 교육 방식이지만 아이들의 전 과목을 돌아가며 매일 봐주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봐줄 공부가 적은 날엔 집안일을 나누어한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씻고 잠드는 것이 새벽 한 두시. 그때부터 짧으면 4시간, 길면 5시간, 잠에 든다. 이렇게 매주 5일이 똑같은 모습으로 일 년 내 돌아가고 주말에도 가끔 일이 있으면 가능한 빠지지 않고 나가 부수입을 올린다. 일이 없는 주말엔 가족과 나들이를 나가거나 대청소를 한다. 집에 있는 날에 낮잠을 자는 것은 아내의 눈치가 보인다. 이렇게 반복되는 7일 중에 오롯이 그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딱 그때! 축구할 때! 그때뿐이다.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조기축구를 계속하려면 집안일에 더 협조적이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머지 날들을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
<동훈>
산사는 평화로운가?
나는 천근만근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로 간다.
<겸덕>
니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 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꼭 내 남편과 같은 아저씨들이 나온다. 밥벌이의 감옥 안에 24시간 갇혀 사는 40대의 아저씨들. 사회와 가족이라는 두 개의 둥지를 넘나들며 수없이 넘어지고 수없이 다치지만 그들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계산되지 않은 우정을 나누는 '후계 조기축구회'가 있다. 특별히 튈 것도 없는 실력으로 겨울바람에 땀을 날리고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한 잔의 술과 유년의 추억을 찾아 '정희네'로 향한다. 둘레둘레 모여 앉은 불알친구들은 어미 새가 지어놓은 둥지에 들어앉은 것처럼 먹고 마시고 깔깔거린다. 그들 중 누구라도 어른답게 굴라거나 똑바로 살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웃고, 같이 울고, 악당 같은 세상에서 같은 편을 먹을 뿐이다.
얼마 전 남편의 조기축구회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일곱 명의 아저씨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 공간 안에는 설명하기 힘든 기운과 흥분이 둥둥 떠 다녔다.
도대체 여러분에게 조기축구가 뭐예요?
아니, 'FC ○○○'가 뭐예요? 뭐 길래 이렇게 다들 축구~ 축구~ 하는 거예요?
그때 그들이 말했다.
어딜 가나 조기 축구회가 5년 이상 유지되기가 힘들어요. 이런저런 사건과 알력으로 그전에 해체되기 십상이죠. 그런데 여기는 벌써 7년째예요. 별다른 트러블 없이요. 여러 곳 가보았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그들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우리에겐 축구가 필요하지만 축구라는 매개체로 '같은 편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드라마의 동훈에게도, 현실의 내 남편에게도,
또 후계동의 아저씨들과 우리 동네 아저씨들에게도
진짜 필요한 것은 어쩜 축구가 아니라 퍼질러 앉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희네’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