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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29. 2023

강변북로에서 저를 보신다면



밤 9시,

강을 거슬러 북쪽으로 갑니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어느 낯선 강변에서 강을 보고 마주 서 있습니다.


이곳은 이렇게 생겼구나.

바라보는 강은 이런 풍경이구나.

이런 사람들이 거닐고

이런 공기가 흐르고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그런데 어쩐지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시간을 기다려 봅니다.

강가를 거닐며 들었던 노래를 듣고 또 듣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꾸만 짧은 거리를 오갑니다.

한 시간이 꼭 열 시간 같네요.


어린 청춘들이 흘리는 담배 냄새와 연기가 매캐합니다.


삼십 분을 더 기다립니다.

삼십 분이 꼭 삼 년 같아요.

어쩜 이리도 냉정할까요.


오 분만 더 기다리자.

오 분만.

사 분째에 바람이 붑니다.

아...


그런데 그 바람 참,

슬프네요.

제법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목구멍을 누르고 눌러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강은 이리도 달랐던 걸까요.

우리가 들었던 노래도 이리도 달랐던 걸까요.

우리가 남겼던 언어도 이처럼, 이리도 달랐던 걸까요.


돌아선 공기는 뜨겁기까지 합니다.

애꿎은 노래를 원망합니다.

지나간 날들을 미워합니다.



< 강변북로 _ pixabay.com >



새벽 1시,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으로 강변북로를 달립니다.

창은 모두 내리고

음악은 아주 크게 틀고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쓸어 넘기고

익숙지 않은 그 길을 그저 막 달려봅니다.

네 곡의 노래를 고문처럼, 혹은 두통약처럼

듣고 듣고 또 듣습니다.


노래는 다른 차들의 소리를 묻어버리고

젖지도 않았는데 번지는 눈앞 때문에

깜깜한 고속의 도로는 더욱 깜깜하고 흐릿합니다.

사이드 미러에 보이는 저 차가

 차인지 뒷 차인지 혹은  뒤의 차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차선을 변경하다 그 차에 쾅-하고 박히는 상상이 절로 듭니다.

갑자기 이 길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한 시간을 달렸습니다.

달릴 수만, 밤새라도 달릴 수만 있다면

이 답답한 체증을 하루 내,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한 시간어치의 소화만 시키고 돌아옵니다.


나는,

어쩌면,

밤마다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에,

창을 죄다 내리고 머리칼을 휘날리며 커다란 노래를 반복적으로 듣고 있는 여자를 보신다면,

가만히 차를 세우고,

달디 단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저 조용히,

먹는 내 모습을 지켜 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저는 따뜻한 눈빛을 애써 모른 척하며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소화제 대신 천천히 녹여 먹어볼게요.

그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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