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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r 03. 2019

발 없는 새

이제니



 청춘은 다 고아지. 새벽이슬을 맞고 허공에 얼굴을 묻을 때 바람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지.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 이제 우리 무엇을 할까. 어디든 어디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청춘은 다 고아지. 도착하지 않은 바람처럼 떠돌아다니지. 나는 발 없는 새. 불꽃 같은 삶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옷깃에서 떨어진 단추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난 사라진 단춧구멍 같은 너를 생각하지. 작은 구멍으로만 들락날락거리는 바람처럼 네게로 갔다 내게로 돌아오지. 우리는 한없이 둥글고 한없이 부풀고 걸핏하면 울음을 터뜨리려고 해. 질감 없이 부피 없이 자꾸만 날아오르려고 하지. 구체성이 결여된 삶에도 사각의 모퉁이는 허용될까. 나는 기대어 쉴 만한 곳이 필요해. 각진 곳이 필요해. 널브러진 채로 몸을 접을 만한 작은 공간이 필요해. 나무로 만든 작은 관이라면 더 좋겠지. 나는 거기 누워 꿈 같은 잠을 잘 거야. 잠 같은 꿈을 꿀 거야.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내가 어디로 흘러와 있는지 볼 거야. 누구든 한번은 태어나고 한번은 죽지. 한번 태어났음에도 또다시 태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 한번 죽었는데도 또다시 죽으려는 사람들. 제대로 태어나지도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사람들. 청춘은 다 고아지. 미로의 길을 헤매는 열망처럼 나아갔다 되돌아오지. 입말 속을 구르는 불안처럼 무한증식하지. 나의 검은 펜은 오늘도 꿈속의 단어들을 받아적지. 떠오를 수 있을 데까지 떠올랐던 높이를 기록하지. 나의 두 발은 어디로 사라졌나. 짐작할 수 없는 침묵 속에 숨겨두었나. 짐작할 수 없는 온도 속에 묻어두었나. 짐작할 수 없는 온도는 짐작할 수 없는 높이를 수반하지. 높이는 종종 깊이라는 말로 오인되지. 다다르지 못한 온도를 노래할 수 있는가. 다다르지 못한 온도를 아낄 수 있는가. 우리의 대답은 언제나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지. 청춘은 다 고아지. 헛된 비유의 문장들을 이마에 새기지.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 쌓여만 가지. 위안 없는 사물들의 이름으로 시간을 견뎌내지.





날카로운 1월의 공기, 희뿌연 하늘 속을 새처럼 훨훨 날아 니가 떠나던 날.

그녀의 꿈속에서는 수많은 이름 모를 새들이 퍼득거렸다고 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와 흩날리던 눈 발 사이를 비집고 희고도 잿빛인 새들이 날아들어 “엄마~ 엄마~” 불렀다고 했다.

사연을 알 길이 없는 그녀는 내내 니가 신경 쓰인다 말했었고, 그 말을 듣는 나는 그녀가 마음에 쓰였었다.

       

계단 앞에 가지런히 놓인 너의 푸른 운동화는 주인을 잃고 어쩔 줄 몰라했을 것이다.

의리 있던 그 녀석은 너의 발목을 차마 잡지도 못하면서 놓아주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며칠 전 사 입혔던 두툼한 패딩은 포동포동 여전히 너를 감싸고 있었지만 꽁꽁 언 흙 위로 날아 앉은 너의 등은 더없이 차고 가슴은 아리도록 시렸을 것이다.

분명히 총명히 반짝였었을 너의 까만 눈, 야무지게 오똑한 콧날, 오물오물 작지만 언제나 건조했던 너의 입술, 습자지를 댄 듯 투명하고 희었던 얼굴은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서서히 핏기를 잃은 푸른빛으로. 꽃처럼 피었다 꽃처럼 사그라들었다.


그 날, 비 내리고 눈 날리던 복도를 오가며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것일까. 며칠 내내 잠들지 못하고 환영 속을 헤매었던 것일까.

오라비의 부재는 너에게 슬픔이기보다 차라리 생존의 끝자락을 위협하는 두려움이었던 것일까.

어두운 장례식장 한편에서 쭈그리고 있던 너의 모습은 영혼 없는 무기력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고민하던 심연의 번뇌와 우울이었던 것일까.


혹은... 먼저 떠난 오라비가 차마 너를 혼자 두지 못해 너마저 그곳으로 데려간 것일까.


너의 의지였는지 아니었는지 알 길이 없는 나는

너의 슬픔의 무게를 1그램도 알지 못했던 나는

너의 용기였는지 포기였는지 알 수가 없는 나는

결국,

너에게 쏘아붙였던 마지막 말이 컥, 목구멍에 걸리고 말았다.


예정된 이별과 예정하지 못했던 이별은 무게가 달랐다.

왜 하필, 이렇게 차가운 날 떠났느냐고. 왜 이렇게 비 내리고 눈 오는 날 떠났느냐고.

아직 땅은 꽁꽁 얼었고 그마저도 스미는 비에 축축하고 질척한데 분홍 꽃 아스라이 피는 봄에나 가지 왜 이런 날 가느냐고 밤새도록 너를 책망했다.

쉽게 마음 주고 쉽게 버림받았던 너는 평생을 고아처럼 부유하다 제대로 묻힐 곳도 하나 없이 고아처럼 사라져 버렸고 나는, 왜 그렇게 슬프게 살았느냐고. 왜 그렇게 평생을 아프기만 했냐고. 왜 그렇게 불쌍하게 떠났느냐고. 돌림노래처럼 같은 말만 내뱉으며 찾아올 이 하나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꺼이꺼이 울고 또 울었더랬다.


그러다 며칠 후 이 시(時)를 만났다.

밥도 먹고 고기도 먹고 술도 먹고 커피도 먹던 어느 날이었다.

심장에도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그것이 끊어질 때 이런 느낌일까.

멈출 수도 없을 만큼 울고 또 울었다. 아니 울었다는 말이 어울리지도 않을 만큼 그저 눈에서는 쉴 새 없이 주르륵주르륵 물이 흘러내렸다.

찔찔찔 오줌을 누면서도, 조잘거리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침대에 누워있다 모로 돌아 누우면서도, 휴대폰의 뉴스를 읽다가도, 씻고 나와 팬티를 갈아입다가도, 저녁 찬거리를 고르면서도, 쓰레기를 잔뜩 안고 현관문을 열면서도, 시금치를 뚝뚝 잘라 씻고 박박박 그릇을 닦으면서도... 그저 속절없이 미지근한 물이 눈에서 시작해 발등 위로 뚝뚝뚝 떨어져 내렸다.


작은 관도 없이 기생하듯 잠든 너는 이제 거기 누워 꿈같은 잠에 들었을까. 잠 같은 꿈을 꾸고 있을까. 질끈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어느 평온한 곳으로 흘러가 있으면 좋겠다.

제대로 태어나지도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어차피 청춘은 다 고아니.

누구든 한 번은 태어나고 한 번은 죽으니.

나는 그저 때때로 후드득 떨어지는 물기 속에서 너를 기억하고 위로할 테니.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어.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래.

< 아비정전 _ 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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