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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15. 2019

에너지 고갈의 시대

눈 뜨면 할 일이 차고도 넘치는 하루


[ 2019. 05. 14. 시간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하지만 에너지는 나이와 반비례한다. ]


     

 집 안에는 언제나 할 일이 차고 넘친다. 저녁 8시만 되면 비몽사몽 맥을 못 추는 부실한 체력이지만 새벽 6시만 되면 번쩍 눈이 떠지는 이유를 나는 당최 모르겠다. 아마도 그건 습관의 힘이거나 혹은 식구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고 그들을 다독여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자의 의무감이 아닐까 하는 유추를 해 볼 뿐이다. 여행 후유증이 시작된 어제는 하루 종일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통증을 느꼈다. 뜨거운 찜질팩을 올려가며 아픈 눈알을 달래 어렵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11시 30분쯤 이른 잠에 들었다. 사실 잠이 들었다기보다 그냥 기절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요즘의 나는 거의 기절과 몽롱 사이를 번갈아 오가고 있는 중이니까. 어쨌든 평소보다 일찍 기절했기에 그 상태대로라면 그래도 제법 긴 시간을 잘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꿀처럼 단 잠은 그리 길게 허락되지 않았다. 꿈도 없는 무의식 속의 심연 속에 죽은 듯이 있다가 난데없는 우당탕탕 챙그랑소리에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지르며 번쩍! 눈을 떴다. 침대 옆 서랍에 고이 놓여있던 찰랑거리는 쇳조각이 주렁주렁 달린 스탠드가 바닥으로 거꾸로 쳐 박힌 것이다. 냉기 어린 쇳소리에 놀라고 그것의 정체가 스탠드라는데 또 놀라고 마지막으로 그 스탠드가 저처럼 뒤집어지니 알전구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아주 위험한 모양새였다는 것에 재차 놀랐다. 10년도 더 된 물건이었지만 단 한 번도 저러한 모양새를 보인 적이 없었기에 그 새벽에 나는 느닷없이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된 전율마저 느꼈던 것이다. 물론 그 밤의 난리가 나의 소행은 아니었고 내 침대를 점령해 요상한 자세로 자고 있는 어린것의 우발적이고도 무의식적인 소행이었다.


 ... 깜짝이야큰일 날 뻔했네전구가 깨졌으면 산산 조각나서 아주 위험했을 텐데... 조심해야지.


 미처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몰골로 들은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을 짓던 녀석은 이내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져 다시 잠에 취해버렸다. 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그러나 한 시간 후 다시 찰랑찰랑 사고의 예고편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잠에 든 건지 아닌지도 모를 상태에서 거의 0.5초 만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서둘러 불을 켜고 보니 그 어린것은 다시 한번 스탠드를 칠 요량으로 두 팔을 스탠드 쪽으로 쭉쭉 뻗은 채 대각선으로 자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이 것이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고의인지 실수인지를 슬며시 의심해 보게 된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그러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아 낸 후에야 불을 껐다.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각조각 잠들을 엮어 꼬매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번쩍! 눈이 떠졌다. 하... 6시였다. 왜 자꾸만 이 시간에 눈이 떠지는 거야. 기어이 이 시간에 일어나 해야 할 일도 없다구!... 힝. 내 잠들은 모두 토막토막 썰려나갔다. 보상받지도 못할 시간은 이미 과거가 되어 흘러버렸다.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나와 차분히 식탁에 앉아 진하게 내린 커피 한잔으로 빈 속을 적시며 조용한 아침을 맞이했다. 아니 그렇게 해 볼 요량으로 커피를 내려 식탁에 막 앉는 참이었다. 잠에서 깬 꼬맹이가 쭈뼛쭈뼛 방을 나오며 말한다.


엄마... 이상하게 팬티가 축축하네?

핫... 하하하하... 핫. 헉... 뜨.

구???


 맙소사! 입고 있는 옷은 물론이거니와 덮는 이불, 침대에 깔아 놓은 러그, 러플이 달린 침대 커버, 거기에 꼭 맞게 씌워 놓은 매트리스 커버까지... 하나라도 빠지면 섭섭해라도 할까 봐 아주 공평하게 골고루도 적셔 놓으셨다. 이 모든 것들을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루트로 죄다 빨아 널은 지 이제 겨우 열흘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우리 집에는 건조기도 없는데. 저것들 다 빨아서 말리려면 못해도 이틀은 걸릴 텐데... 힝. 

 꼬맹이의 잘못이 아니니 혼을 낼 수도 없고,  으이궁~ 으이궁~ 만 소심하게 흘리다 말고 이불을 하나하나 벗겨낸다. 기저귀를 뗄 때도 한 번도 하지 않던 실수를 왜 갑자기 하는 걸까? 어디 문제라도 있는 걸까? 병원에 가봐야 할까... 나의 무심함이 아이의 문제 상황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세탁기에 구겨 넣은 이불처럼 머릿속에서 윙~ 윙~ 하는 소리가 나고서야 식탁으로 돌아온다. 따끈하다 못해 입술이 홀랑 데일 것 같던 커피는 이미 오래전에 밍밍하게 식어있었다.


하... 눈부신 오월의 하루는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인데 나는 냉수 한잔 들이붓기도 전에 이미 에너지 고갈의 상태가 되어버렸구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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