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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19. 2020

2cm

지구와 우주 사이

 


언제나 나는 지구 위에서 2cm쯤 떠 있는 사람 같았다. 자박자박 땅을 밟지도 못하면서 그 땅을 버리고 훨훨 날지도 못했다. 등 뒤로 난 길고 가느다란 명주실 한 올이 어느 소 도시 초등학교 앞 깨진 보도블록 사이로 비집고 나온 민들레 끝에 매달린 것만 같았다. 나를 낳은 이가 고된 손끝으로 정성스레 침을 발라 달아 놓은 명주실은 튼튼했지만 불안했다. 대롱대롱 실 하나에 나를 달고 지구 위를 떠다니는 것은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위태롭고 안타까운 부유의 상태였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그것을 끊어낼 수도, 단단히 붙들어 맬 수 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야금야금 불안을 곡식 삼아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었다.     


불안을 먹고살았던 사람은 뼈 속에 그것이 흡수되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뼈처럼 살처럼 내가 되었고 마침내 피부처럼 나에게 찰싹 붙어 나를 지배해갔다. 위태롭고 위독한 날들은 쳇바퀴처럼 잘도 이어져 돌아갔다. 지칠 줄 모르고 반복되던 요란스러운 날들은 조용히 나를 길들이고 야금야금 맛나게도 나를 먹어치웠다. 가끔씩 찾아오는 평화로운 일상은 오히려 나를 당황하게 했고 불안하지 않은 날들이 되레 불안해지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반복되었다. 부정의 기운이 스치면 그것은 겉잡을 수없이 부풀어 올랐으며 고요한 마음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 상태가 찾아올 참이면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두지 못한 채 스스로를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나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만들어진 과정이었고 던져진 삶이었다. 그 불안과 위태가 나를 빚었고 키웠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깨닫는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생의 절반이 흐른 시점이었고 삶의 많은 장면들을 겪고 난 후였다.     


부지런히 버티며 살았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나의 단단함과 강인함은 벽돌로 지은 집이 아니라 짚으로 엮은 누각이었다는 것을. 빛나던 시절을 지나 나약하고 초라한 자신을 만나게 되었을 때 사방이 뚫린 누각에는 바람만이 가득했다. 나의 가냘프고 가난한 뿌리는 모래 위에  내린 그것처럼 한없이 흔들거리며 한 잎의 푸름도 한 알의 알맹이도 내어주지 못하였다. 먼지보다 가벼운 껍질들만이 허공 속을 휘휘 날아다녔다. 뿌리가 없는 나는 여전히 지구 위에 붕- 떠있는 이방인이었으며 방랑자였다. 나는 한없이 쓸쓸하였다.     


나에게는 아직 절반쯤의 삶이 남아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가 빚어낸 생명이 있다. 뿌리 없는 내가 다른 생명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내가 나를 키워야 한다. 내가 나를 길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전에 나를 살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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