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걷고, 명상하고, 차를 마시며 모닝 저널을 쓰고 그 안에 확언을 하고, 오늘의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하루를 열기 시작한 지 40일째가 되었다.
어떤 날은 게으름이 났고, 어떤 날은 의미가 없게 느껴졌으며 어떤 날은 몸이 고되고, 또 어떤 날은 날씨가 궂어 미루기도, 못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하루를 그렇게 건너뛰고 나면 이상하게 나는 그 시간이 깊게 그리워졌고 다시 굳은 다짐이 들었다. 새벽에 못하면 한낮에 하기도 했고 저녁에 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시간을 바꿔가면서 나에게 맞는 패턴을 찾으려 애썼다. 그렇게 40일 대부분을 내가 정한 루틴으로 살아보려 노력했다. 아니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보려 노력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내가 처음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게 된 건... 궁금증 때문이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라고 그 시간에 일어나 움직이는 그들이 신기하고... 그 사람들은 그 시간에 왜 일어나는 걸까? 그 시간에 일어나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세상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다가올까. 내가 그렇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삶을... 팽개쳐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걸까...?
처음의 목표는 한 달만 해보자는 것이었다. 딱 한 달만 그 시간에 일어나 보자는 것!
눈을 뜨고 재빠르게 침대에서 벗어나 일단 집을 나서보자는 것. 아무런 의심도 하지 말고, 의미 같은 거 따지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그냥 딱 한 달만 그렇게 해보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들이 정한 규칙이 아니라 그들의 조언과 경험을 동기 삼아 내가 내 루틴을 주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내 삶도 조금 더 나은 방향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궁금함 그리고 아주 얕은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지독한 무기력과 우울, 화와 짜증, 그리고 통증에 잠식되어 있었다. 내 뜻대로 쓸 수 없는 시간에 포기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그런 포기들이 쌓여 어느 것도 성취해내지 못했으며 성취감의 부족은 곧 의지력의 부족으로 귀결되어 나의 자존감은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이틀 간격으로 치른 두 건의 가족 장례와 죽음 그 후에 온 죽음보다 더 전쟁 같은 일들. 나는 온통 너덜거리고 있었다. 단단하게 붙들지 못한 정신은 점점 불어나는 체중으로 보이고 있었고 누적되어오던 신체적 통증들은 매일 위치를 바꿔가며 늘어나는 체중계의 숫자만큼 더해지고 있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같은 건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나를 그냥 내팽겨 쳤다고 해도 무방한 날들이었으며 삶에 대한 나의 서운함은 켜켜이 쌓여 가까이에 있는 남편을 향해 불고 나의 화는 내 아이들을 과녁 삼아 발사되는 일이 잦아졌다.
무기력의 중력은 대단했다. 뭐든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뭐든 하지 않고 있었고, 다만 스스로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미라클 모닝, 아니 정확히는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주체적이고도 능동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삶을 조금씩 엿봄으로써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무기력과 우울에서 나는 나를 건져낼 수 있을까...?
오늘 새벽 산책 길에 만난 달팽이.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가고 있니?"
자신에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고 자주 말하라. 끊임없는 자기 긍정은 믿음이 되고, 때때로 우리가 상상조차 못 했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모든 일은 신의 뜻대로 착착 진행된다. 모든 일은 완벽하게 이뤄진다!
<치유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 중에서
나는 아직도 실험 중이다. 아직도 어떤 날은 꾀가 나고 어떤 날은 의미가 없다. 어떤 날은 의욕적이고 어떤 날은 신이 나다가 또 어떤 날은 허무하며 어떤 날은 자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