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생활자의 고뇌_1

904호의 진실

by EUNJIN



벌써 세 번째다. 경찰이 온 것이 말이다.

내가 내리고 경찰이 탄 엘리베이터는 아니나 다를까 8층에서 멈췄다. 우리 집에서 부른 것은 아니니 목적지는 또다시 옆집 804호인 것이다.


지난번엔 복도가 하도 시끌시끌하여 현관문을 벌컥 열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옆집 언니가 튀어나왔다. 정복을 입은 경찰관 두 명의 시선을 뒤통수에 꽂고 들썩이는 숨을 제대로 고르지도 못한 채 다급한 증명이라도 하듯 내게 물었다.


“쿵쿵거리는 소리 계속 들렸지? 응? 아... 정말 미치겠어. 하루 이틀이어야 말이지.”

“어...... 글쎄요... 신경 쓰고 있지 않아서 잘... 모르......”

“아니,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평소에 너희 집은 안 들려? 뭘 그리 두들기는지. 아무리 찾아가서 벨을 눌러도 인터폰으로 누군지 보기만 하고 문을 안 열어 준다니까?”

“... 아...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별로 신경 써서 듣지 않아서 그런가... 한두 번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긴 해요.”


나의 반응이 마음에 차지 않았던 옆집 언니는 이내 시선을 계단으로 옮겼다.

계단에서는 성인이 된 옆집 큰 딸과 고등학생 아들 그리고 언니의 남편이 콧구멍 가득 뜨거운 바람을 싣고 씩씩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왜 문을 안 열어줘? 인터폰으로 자기 할 말만 딱! 한다니까! 자기네 아니라고! 경찰이 와도 문을 안 열어.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야. 문을 열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아 됐어, 됐어. 우리도 천장에다 대고 쿵쿵거리면 돼!”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는 듯 경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진정들 하시고 저희가 다시 한번 올라가 보겠습니다.”



< pixabay.com >



늦은 저녁의 소란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보이는 게 뭣해서 그만 문을 닫고 싶었으나 매정하게 문을 닫기가 쉽지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공감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지근한 죄책감이 정상적인 것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언니는 바쁜 나를 붙잡고 20여 분간 하소연을 했다.

1004호 정아네가 이사를 갔다고, 그간 904호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고 입을 열었다.


“윗집 904호 사람들, 보통 아니야. 1004호 시끄럽다면서 밤새 천장에다 대고 막대로 두드리고 스피커 틀고... 아휴 말도 마. 경찰이 몇 번을 오고, 뭐 측정하는 데 있잖아, 거기서 와가지고 소음 측정도 두 번이나 하고, 결과적으로 1004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는데도 밤낮으로 사람을 얼마나 들들 볶아대는지, 싸워도 안 되고 설득도 안 되고 뭐 증거자료를 갖다 대도 안 되고 이건 뭐 자기 할 말만 딱! 하고 막무가내야 막무가내. 더군다나 정아네 얼마 전에 막내 낳았잖아. 자기도 생각해 봐, 정아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는 어려도 얌전한 딸내미에다가 막내는 이제 갓 태어났는데 그 집에 뛸 애가 있기를 해 뭐를 해. 그런데 밤만 되면 시끄럽다고 거실이며 주방이며 방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천정을 치고 두드리나 봐. 그 통에 그 백일도 안 된 애가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참다 참다 결국은 며칠 전에 이사 가버렸잖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한다 그거지 뭐. 아니 그러면 이제 이사 가고 빈집인데 조용히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저렇게 분란을 일으켜. 여전히 시끄럽다면서 이제 1003호한테 난리를 치나 봐. 자기들 때문에 동네가 다 들썩이는 건 생각도 안 하고 말이지. 완전 비정상이야 비정상. 말이 안 통해. 관리실에서 찾아가 봐도 그렇고 경찰이 가도 그렇고 문도 안 열어준대. 무대뽀야 무대뽀. 아휴.... 정말 내가 다 미치겠다니까. 자기네는 안 들려? 우리 집도 그렇지만 903호도 시끄럽다던데...?”



2아파트생활자의고뇌3.bmp < pixabay.com >



큰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 때 나는 노원구의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그곳은 노태우 정권 때 대대적으로 만들어진 지은 지 30년이 다 된 거대한 아파트촌이었다. 오래된 파이프관과 벽을 타고 윗집 아저씨 쫄쫄쫄 오줌 누고 물 내리는 소리, 옆집 꼬마 수도꼭지 트는 소리, 아랫집 부부 쌍욕 하며 싸우는 소리, 삼층 위 새로 이사한 집에서 못 박는 소리 하나까지 아무런 노력 없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지는 도대체가 사생활이라고는 보장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윗집 아저씨의 퇴근 시간과 취침시간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알게 되고, 아랫집 부부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벽에다 귀를 대고 엿듣게 되는 피곤하고 시시한 삶에서 나에게도 복병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이’였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대부분의 부모들은 ‘수면교육’이라는 걸 하게 되는데, 이는 아이를 안거나 업거나 유모차에 태우지 않고, 이부자리에 반듯이 누운 상태에서 잠들도록 습관을 들이는 일이다. 이는 올바른 수면 방법을 익히고 질 높은 수면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아이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꼭 필요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의 냄새와 온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수면교육 초기에 거세게 발버둥을 치거나 울면서 온 몸으로 거부하게 되는데 이때 부모가 포기하지 않고 몇 날을 반복적으로 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아이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점차 그 패턴에 적응하며 반복되는 수면 방식을 일종의 의식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수면교육의 성패에는 물리적인 환경요인이나 부모의 의지력 또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곤 하는데...



2 아파트생활자의고뇌1.jpg





'아파트 생활자의 고뇌_2 / 수면교육, 성공할 수 있을까?'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생활자의 고뇌_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