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생활자의 고뇌_2

수면교육, 성공할 수 있을까?

by EUNJIN




'아파트 생활자의 고뇌_1 / 904호의 진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 런. 데!

나는 돌이 지나고 두 돌이 다 되도록 이 수면교육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도만 벌써 다섯 번째였으나 매번 실패하고 실패했던 건 전적으로 내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오래된 아파트 말이다.


아이의 울음과 악다구니가 방 창문 두 개를 타고 베란다를 거쳐 바깥 새시를 넘어 윗집 아랫집 옆집 그리고 앞 동 뒷동까지 울려 퍼질 생각을 하니 정말이지 머리가 아찔하고 아득했다. 울고 있는 시간이 10분, 20분, 30분이 되면 내 발은 동동동, 가슴은 두 근 반 세근 반, 언제 인터폰이 울릴까. 누가 현관 벨을 누르지나 않을까. 다들 우릴 욕하진 않을까. 혹은 내 아이를 욕하고 있진 않을까. 하... 그러면 뭐라고 둘러 대야 하지?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울고 있는 시간이 다시 40분 50분을 넘어 1시간이 되면 내 심장은 가을볕에 널어놓은 고구마처럼 쪼글쪼글 말라비틀어져가고 머리는 화끈화끈 타들어가며 미간 사이에는 빙글빙글 어지러운 타원형이 돌아갔다. 그쯤이면 눈 뜨고 있으되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고, 우주의 모든 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하나로 뭉쳐지는 참으로 기괴하고 괴로운 지경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용수철 인형처럼 튀어 들어가 아이를 안고, 업고, 달래고 또 달래어 울음을 그쳐놓고서야 비로소 참았던 숨을 몰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 뒤, 세 달 뒤에 시도했던 수면 교육도 아이 울음 그치기 전에 애미 가슴 타 죽을 것 같아 내리 실패를 하고 매정한 아이는 내 속도 모른 채 토실토실 살이 올라갔다.


그때마다 논 밭 중간에 덩그러니 놓인 집 한 채, 그 집이 우리 집이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흐르는 건 달빛이요, 들리는 건 풀벌레 소리뿐인, 울어도 울어도 아무도 야단하지 않고 다만 엄마와 아빠만 묵묵히 지켜보고 참아내면 되는 그런 집이, 우리 집이었으면... 하고 밤마다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더 이상 안아 재울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아이를 밤마다 유모차에 태워 온 동네를 배회하면서 두 돌이 넘어 서고 있을 때 나는 마지막 수면 교육을 시도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살아야 했기에 내 안의 생존 본능이 제 멋대로 움직였고, 이 아파트에서 쫓겨 나도 어쩔 수 없다고 각오했는지도 모른다.



우는아기.png < www.pxfuel.com >



밤 9시 20분부터 정확하게 두 시간이었다. 그 두 시간 동안 아이는 제 생에 내내 모아 온 우주의 기운까지 다 끌어 모아 악다구니를 써댔다. 업어달라고! 나를 눕혀 높지 말라고! 나를 당장 들어 안으라고! 불이 난 소화전에 경고 사이렌이 울리는 것처럼 날카롭고 무서운 굉음으로 울어재꼈다.

나는 귀를 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건 우는 소리가 아니라고 주문을 외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다 이러한 과정이라고 합리화했다. 당신들이 이해 좀 해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11시 20분.

아이의 울음이 스르륵 사그라들더니 거짓말처럼 뚝! 하고 울음이 그쳤다. 그것은 찰나였다.

그렇게 아이는 업히지 않고, 안기지 않고, 이불에 등을 댄 채로 제 힘으로 온전한 사람처럼 잠이 들었다. (더 정확히는 악을 쓰다 지쳐 엎드린 채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지만...) 아이는 두 시간을 저항했고 나는 두 시간을 견뎌냈고, 위대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그 두 시간을 거룩하게 참아주었다. 하... 그때의 감동이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찔하고 또 감사한 날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웬만한 층간 소음에 무뎌졌다.

쿵쿵쿵 무겁게 뛰어다니는 소리도, 드르륵 가구를 끄는 소리도, 콩콩콩 못을 박거나 그르르르르르 드릴로 벽을 뚫는 소리도, 왁자지껄 사람들이 모여 떠들거나 놀이터에 노는 꼬마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나의 반응은 한 발씩 느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뎌진 것이 아니라 괜찮아졌다. 오감 중에서도 특히나 청각이 예민한 나는 못 듣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는 도시이고, 아파트고,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니까, 각자의 마당과 담장을 갖고 살지 않는 이상 이 아파트 단지 안에는 수십수백의 소리들이 모여 있을 것이고, 그 소리들이 모여 결국에 삶이 유지되는 것이리라. 내가 듣는 소리는 내가 낼 수도 있는 소리이고, 내가 내는 소리 또한 그들이 듣고 있을 수 있는 것이리라.

조금 덜 예민해졌더니 조금 더 가벼워졌다.


그때와 다른 아파트에 사는 지금도 여전히 윗집에서는 늦은 밤 ‘쿵- 쿵-’ 불규칙한 소리가 울리고 안방이나 화장실에서는 어느 집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애처롭게 부르는 노랫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그 덕에 나는 이 새벽 깨어있는 것이 나 혼자는 아니라 덜 외롭겠구나... 하다가 또 어느 날엔 유행하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혼자 큭큭거리며 “제 점수는요!”하며 k팝스타 심사위원 노릇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진지하게 노래하는 그 아이는 모르고 있겠지만 듣고 있는 나로서는 무료한 어느 오후에 피식- 큭! 하고 한 번 웃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그 집이 어느 집인지 애써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고 또 알게 된다 한들 너무 날카롭게 굴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아니라도 우리 인생은 너무나 복잡하고 뾰족해서 자주자주 베이고 찔리는데, 가볍게 놓을 수 있는 것은 좀 놓고 심플하게 사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매일 얼굴 마주치며 살아가야 할, 알고 보면 다들- 고향집 먼 친척보다 낫다는 ‘이. 웃. 사. 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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