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송국에서 제작 PD로 일할 때, 회사에는 편성 PD로 일하던 두어 살 위의 S가 있었다. 작고 통통했으나 옷은 언제나 비쌌고 가방은 제 또래가 들기엔 디자인도 가격도 다소 무거웠다. 얼굴은 각지고 눈은 날카로웠으며 목에는 자주 검은색 초커를 두르고 다녔다. 그때 나는 그게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어 본 적은 없었다.
말투는 차분했으나 시니컬했고 가벼움이나 웃음을 담지 않은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그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제 할 일을 부지런히 하고 6시가 되면 어김없이 가방을 들고 회사 문을 빠져나갔는데 매일 야근과 밤샘을 숨 쉬는 것보다 더 자주 하던 내 생활에서 그녀의 일상은 생경하기 짝이 없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그녀는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 부모님과 역시 결혼에 뜻이 없는 그녀의 언니와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명절 때마다 그들은 가볍게 캐리어를 싸서 공항으로 갔다. 명절이라 함은 무릇 불편한 버스에 7시간 몸을 실어 고향으로 내려가고 살갑지 않은 친척들을 만나고 먹지 않는 음식들을 며칠씩 해대고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제사를 올리고 하는 것인 줄 알았던 나는 명절마다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쿨하게 해외로 떠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렇게 태생부터 환경까지 너무도 달랐던 나와 그녀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도 그녀도 회사에 절대 충성하며 목숨을 거는 타입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가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수 있었다.
그 공통분모를 발견한 후 우리는 같이 쇼핑을 다니고 같이 목욕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술을 마셨다. 같이 일탈을 하고 또 같이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조금씩 더 용감한 사회인이 되어갔다. 서로의 다름을 부러워하지도 질책하지도 않았으며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고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을 공유했다. 우리의 우정은 조금씩 깊어갔다.
그러나 그 관계 속에서 조금 질척였던 건 어쩌면 내 쪽이었을까...
그녀와의 관계가 2년쯤 되었을 때 내 삶에는 어떤 전환점이 필요하게 되었다. 불규칙함이 일상이었던 오랜 PD 생활에서 몸에도 마음에도 쉼표가 절실했고, 언제나 회사에 불만이 많았던 그녀 또한 언제든 사표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진지하게 제안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가지 않겠냐고. 계획은 없지만 떠나보면, 혹은 돌아오면 무언가 바뀌어있지 않겠냐고. 그것이 무엇인지 먼 여행길에서 찾고 싶다고 같이 떠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그녀가 당연히 내 손을 잡을 줄 알았다. 그녀도 원하는 삶이라 했고, 그래서 서로에게 동지가 되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얼마 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방 안에 틀어박혀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몇 달을 잠만 잤다.
그날 이후 그녀는 단 한 번도 내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관계는 언제나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당한 친분을 나눌 수도 있는 각자의 의도를 분명히 가진 관계들
같은 공간에 적을 두고 같은 방향을 가지며 같은 수치의 이윤을 추구해야만 오래오래 삐걱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좋을 것도 없지만 딱히 싫을 것도 없는 생계형 관계
같은 병원이나 나이, 혹은 같은 유치원이나 학교처럼 끊임없는 정보 공유와 내 아이 발달 상태 체크를 위한 비교대상을 목적으로 하는 학습 도모 관계
이는 곧 자식으로 인해 엮어진 엄마들의 필수 불가결하며 필연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윗집, 아랫집 누가 사는지는 몰라도, 들며 나며 보게 되는 경비 아저씨나 관리사무소 직원, 혹은 내 집에 오는 택배 아저씨처럼 미리미리 낯을 익혀두면 때때로 요긴해지는 관계
천연의 감칠맛보다 조미료 가득한 첫맛의 중독성을 중요시하는 회사 앞 백반 집처럼 텅 빈 위장을 5분 내로 빠르게 채워줄 스피드와 단골 확보를 위한 얼굴 암기력, 귀동냥으로 알아낸 회사의 사정 및 허허로운 넉살을 옵션으로 겸비한 일방의 노력과 일방의 지불이 요구되는 생존형 관계 혹은 각자 다른 형태로 이득을 보는 필요충분 관계
때론 랜선을 타고 가상의 공간에 둘러앉아 하나의 정보를 내어주고 하나의 정보를 얻어 갖는, 그 안에서 친목을 나누고 동맹을 하고 교류를 하지만 도무지 그 깊이와 진심을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관계
그런데 이 서울에서의 관계들은 언제나 그 둥지를 빠져나오면 버려지는 관계들이었다. 각자의 필요와 목적에 의해 나름의 기준으로 선택하고 선택당해진, 일정기간 동안만 유효함을 가지는 가벼운 관계들이었다.
내가 처음 서울에 발을 딛고 사회라는 울타리로 들어와 이 같은 관계들을 맺었을 때, 나는 그것들이 유통기한을 가지는 무방부제 제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진심과 그의 진심이 더해져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사람'의 관계라고 여겼던 것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많은 관계들에 둘러싸인 내가 참 부자처럼 느껴졌었다. 그때 나는 처음 어른이었고 처음 오롯이 혼자였으며 처음 세상 속에 뛰어들었었다. 생존을 배우느라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 관계들에도 주기적인 기름칠과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고 매일매일 주고받는 말들과 마음들이 잘 드는 식도에 베인 두부처럼 하루아침에 싹둑 잘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예상치 못했다. 소원해진 마음을 붙들어보려 전전긍긍하는 날들도 있었지만 관계가 끊어진 채 나 혼자 붙들고 있었던 '사람'의 끈은 썩은 동아줄처럼 부실한 것이어서 결정적 순간이 되면 늘 기운을 쓰지 못했고 백발노인의 고뿔처럼 위태로웠다.
7년을 몸 담아온 생계형 관계도, 4년을 알아온 학습 도모 관계도, 3년을 살아온 요긴한 관계도, 또 2년을 줄기차게 맺어 온 생존형 필요충분 관계도, 나의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못했고 그 어떤 관계도 나의 고통과 희망과 사랑과 생명에 마음 한 조각 얹어주지 못했다. 스치는 바람에 전해지는 온기 한 자락 없었다.
당황스러움은 궁금함으로, 궁금함은 배신감으로, 다시 배신감은 허무함으로 변했고 그 허무함은 오랜 시간 뒤 절망과... 마침내는 인정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여전히 S가 궁금하다. 여전히 그녀와 함께했던 날들이 그립고 우리가 나눴던 고민들과 머물렀던 공간들도 생생하다. 하지만 내가 다시 그녀를 찾거나 혹은 그녀가 나를 찾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가을 단풍처럼 한없이 붉었다가 이내 지고 마는 관계들이 서글프고 쓸쓸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이 ‘어른의 관계’라는 것과 ‘타인의 도시에서 피붙이 없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