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9일 새벽 5:00 서울시 종로구 도심 한복판의 K고시원에 화마가 들이닥쳤다.
목숨을 잃은 7명의 나이는 79세, 73세, 63세, 58세, 56세, 54세, 그리고 35세였다.
50명이 살고 있던 낡고 오래된 고시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그곳은 그들에게 집이었을까. 집이 아니었을까.
18년 전, PD가 되겠다고 서울로 왔을 때, 나의 첫 집은 잠실 신천의 허름한 고시원이었다.
그땐 오로지 PD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 어디든 몸만 누이고 옷만 갈아입을 수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남 언니네서 지내라 했지만 밤샘 작업이나 야간작업이 잦아 여러모로 불편했고 또 적극적인 만류는 아니었지만 가족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던 진로를 고집했기에 모든 걸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진정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생각하니 오히려 설레기까지 했다.
몇 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차곡차곡 모은 돈을 쪼개어 하남에서 멀지 않은 서울에 집을 구하자니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이라는 곳뿐이었다.
학비와 1년 치 용돈을 제외하고 났더니 집에 손 내밀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주거비는 딱 6개월치 고시원 비용 정도였다.
나는 그때 고시원을 처음 알게 되었고 처음 보게 되었다.
지금은 ‘잠실 새내 역’으로 이름이 바뀐 ‘신천역’에 내려 출구로 나가면 눈 앞에 바로 시장이 펼쳐졌다. 그 왁자한 시장 길을 따라 둘레둘레 걷다 보면 오른쪽 2층에 커다란 초록색 간판이 보였다. 거기엔 까막눈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큰 글씨로 ‘고. 시. 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왱왱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미끄덩한 회색 바닥을 종종걸음으로 걸어 계단을 오르면 하얀색인지 누런색인지 모를 시트지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유리문이 나왔다. 삐거덕하고 문을 당기면 여지없이 딸랑~ 종소리가 났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그 세계는 온통 흙빛이었다. 바닥은 번들번들 금방이라도 자빠질 듯 한 황토색 장판이었고 일렬종대로 마주 보고 늘어선 방들은 하나같이 갈색 나무문이었다. 그 문에는 드문드문 탁한 금빛이 도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한쪽은 창문이 있는 방이었고 맞은편은 창문이 없는 방들이었다. 창문이 없는 방은 5만 원 정도가 더 쌌다.
복도를 따라 구석으로 가면 화장실이 있었고 거기엔 두꺼운 파란색 비닐로 샤워 커튼을 대신한 욕실 겸 세면실이 딸려 있었다. 누군가 오줌을 누고 있으면 세수를 할 수 없고, 머리를 감고 있으면 괄약근에 힘을 주고 똥을 참아야 했다.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면 안에 있는 사람도 밖에 있는 사람도 길 잃은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 옆으로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와 동그란 테이블과 개수대가 있는 주방이 있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이 아니라 반찬을 보관하고 밥을 데우고 컵라면 물을 끓이는 정도의 부엌이었다. 냉장고에는 각자의 방 번호가 적힌 반찬통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남의 사무실에서 쓰다가 준 것 같은 동그란 테이블에는 언제나 밥풀과 김치 국물이 묻어 있었다.
나에겐 창문이 주는 인권보다 5만 원이 주는 실용이 더 절실했다. 창문 없는 벽으로 다닥다닥 붙은 방들 가운데에 내 방이 있었다. 한 평쯤 되었을까. 침대 없는 방에 책상 하나 옷장 하나 옷걸이 하나였다. 이불은 가져와야 했고 물건은 최소화해야만 했다. TV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볼 수도 없었으니까.
하얀색 합판 두 장으로 가벽을 세운 것이 벽의 전부였다. 오른쪽으로 합판 두 장, 왼쪽으로 합판 두 장, 앞으로는 갈색 나무 문, 그것이 내 공간을 지켜주는 유일한 것들이었다. 소리는 공기보다 빨라서 어디선가 큼큼거리면 205호에서 조용히 하라고 톡톡 두드렸고 그러면 이내 207호에서 알겠다고 다시 톡톡 두드렸다. 방귀를 참지 못한 누군가가 '뿌- 웅-'하고 가스라도 발사하면 싸늘한 눈초리와 찰나의 탄식이 침묵의 공기를 타고 합판을 넘실거렸다.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던 그곳은 말보다는 글이 편할 공간이었다.
205호도 207호도 남자였지만 그것을 굳이 확인하진 않았다. 가끔 화장실 문 앞에서 머리에 노란 수건을 돌돌 말아 올린 채 양치질을 하고 있는 여자를 볼뿐 그곳은 대부분이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젊었다. 비록 창문 없는 한 평의 청춘들이었지만 모두 제 각각의 미래와 꿈을 좇는 뜨거운 사람들이었다. 말없이 비켜가는 인연이었더라도 살면서 한 번은 떠올릴 법한 세상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치열한 삶은 시작되었다.
지금의 고시원도 그러할까.
18년 전, 내 꿈을 위해 잠시의 안위와 안락을 보류하던 그 시절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종로의 K고시원에서 뜨겁게 죽어간 79세, 73세, 63세, 58세, 56세, 54세, 그리고 35세에게 그곳은 무엇이었을까.
피해자의 대부분이 50대에서 70대였으며 그들이 외국인 유학생, 일용직 노동자, 기초생활수급자 등이었던 것에는 근래 부각되고 있는 노인 고용의 문제와 더불어 심각한 고용 불안, 가정의 파괴, 또 부의 불균형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는 주거의 형태를 바꾸고 갈 곳 없는 중년들, 사회로 귀속되지 못한 이방인들, 내 집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창문 없는 한 평의 사각형을 집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도심 고시원 입주자의 평균 나이는 36.4세, 전국적으로 228만 가구가 최저 주거 기준 미달이거나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고 있다. 그중 고시원처럼 주택의 형태가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가구는 약 38만 가구로 추정된다. 고시원은 일반적인 집이 아니다.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여지가 없는 선택이요, 삶의 전장에서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선택이 있었더라면 몸 하나 곧게 누이기 힘든 좁은 공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창문 없는 벽, 식사와 배변 등의 기본적 의식주를 낯선 이와 공유해야 하는 그곳을 ‘집’으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른 밤, 말끔한 도시의 건물마다 들어선 고시원과 싸구려 달 방 한 평에는 오늘도 고단하게 몸을 누인 사람들이 소리 없이 숨을 쉬고 소리 없이 숨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