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품은 삶의 무게와 방향성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여러 나라와 도시들을 경험하며, 때로는 그 도시가 마치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도시는 여성 같았고, 또 어떤 도시는 남성 같았다. 이 비유는 매우 주관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지만, 내가 경험한 감각과 기억을 바탕으로 떠올린 생각을 나누고 싶다.
처음 그런 감각을 강하게 받은 도시는 파리였다. 파리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무궁무진한 영감을 주는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파리를 아주 섬세한 여성으로 느꼈다. 반면,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샤프한 남성의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관광객으로 잠시 머문 도시들과 달리, 서울은 내가 직접 생활하며 그 속에서 살아온 경험이 투영된 도시다. 그래서인지 서울을 사람으로 비유하면 40대 중반의 남성으로 떠오른다. 열심히 달려온 덕분에 어느 정도의 자본과 성취를 이뤘지만, 너무 빠르게만 달려오느라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 놓쳐버린 관계와 추억의 공백이 곳곳에 남아 있다.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한 탓에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 흔적들이 삶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서울은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 속에 서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그대로 반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의미와 확신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버티는 것이 일상화되고 습관이 되어버린 모습, 그것이 지금의 서울과 닮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깨닫게 된다. 결국 도시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것을. 다음에 다른 도시를 여행하게 된다면, 그곳의 건물이나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먼저 만나보고 싶다. 그래야 그 도시가 어떤 사람의 얼굴과 성격을 지녔는지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을 사람에 비유하며 떠오른 씁쓸함은 어쩌면 내 삶과 겹쳐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도시의 모습이 나의 현재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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