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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시각에서 바라보다]

익숙함이 만든 울타리 밖으로 사고를 이동하는 법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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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수준 이상으로 일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내부의 사고방식에 갇히게 된다. 관습이나 루틴에 익숙해질수록 생각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행위에 종속되고, 결국 사고의 반경과 방향마저도 고정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은 외부의 장벽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인식의 벽인 경우가 많다.


미술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저변 확대’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속에는 은연중에 내부 시각에 갇힌 사고가 숨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문턱을 낮추자”는 말이다. 나는 이 표현 자체가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고 본다. 예술에는 애초에 문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문턱이 있다고 느끼는 건 미술계 바깥에서 예술을 바라볼 때 생기는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미술계 내부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문턱’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가 설정한 선이다.


이처럼 사고의 방향뿐 아니라, 바라보는 위치 자체를 바꿔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특히 한 분야에 오랜 시간 몸담은 사람일수록 내부의 시각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밖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밖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안에서는 복잡한 벽이나 제약으로 전도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이 관계를 불필요하게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특정 산업이나 직업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입장 차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 한 번만 시점을 바꿔 생각해도 이해가 가능해지는 문제들이 많으며,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다. 사고의 위치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


결국 중요한 건 스스로 만든 사고의 문턱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미술로 들어오는 길목에 놓인 문턱은 본래 외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미술계가 자신들을 더 특별하게 보이기 위해 설정한 상징적 울타리에 불과하다. 그 울타리 밖으로 나와 사고하는 순간, 문제의 본질과 기회가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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