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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12. 알베르티나

오스트리아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Wien)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알베르티나(Albertina)에 도착한다.


Albertina © hdotjin, 2019.06

알베르티나(Albertina)


1776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황후의 사위인 Albert 공이 설립한 이 컬렉션은 100만 점이 넘는 판화와 6만여 점의 드로잉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새로운 전시 컬렉션으로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독일 표현주의,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 미술에서 가장 인상적인 예술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모네의 [수련], 르누아르의 [소녀]를 비롯해,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기도하는 손], [산토끼], 피터 폴 루벤스의 습작 등이 매우 유명하다.

1919년, 건물과 컬렉션의 소유는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오스트리아 공화국으로 넘어갔으며, 1920년에 판화와 그림 등 컬렉션이 기존 황실 컬렉션과 통합되었다. 1921년에 이르러 Albertina로 명명되었다. - 출처 : Wien.info


Albertina Palace


알베르티나 궁전은 신고전주의(Neo-Classic) 양식의 건물로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느낌을 전해준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빈에 남은 마지막 요새로 왕궁의 남쪽 끝에 위치하였다.

1945년 연합군의 폭탄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는데, 이후 수년에 걸쳐 재건하였다.


알베르티나 윙의 위용. 출처: Wikidata.org


건축가 한스 홀바인(Hans Hollein)이 티타늄으로 만든 60m 길이의 날개를 테라스에 얹고, 엘리베이터를 추가해 2008년, 기존의 복고적 모습에 현대적인 모습을 가미하였다.

이에 걸맞게 2018년에 Alex Katz, Cindy Sherman, Georg Baselitz 등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해 1,300여 개의 작품을 인수하는 등 현대 미술품 컬렉션 구성도 노력하고 있다. - Wikipedia

2020년 5월, 현대 예술 작품 - 약 6만 점 -을 중심으로 새롭게 'Albertina Modern'을 개관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황후의 아버지인 카를 6세(Karl VI)의 후원을 고대하며 알베르티나 근방에 살던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곡을 링크한다. 이 곡을 배경으로 함께 미술관 관람을 떠납시다. (스압 주의!!)


Antonio Vivaldi - Bassoon 협주곡 e단조 RV.484 중 3악장 Allegro
Basoon : Milan Turkovic with 'The English Concert'
https://www.youtube.com/watch?v=RVRvJVPw9KM&t=4s


공중에 길게 뻗어 나온 육중한 윙(WING)이 건물의 개성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노란색 이름표가 인상적이다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뒤러의 "산토끼"와 클림트의 여성 연구와 같은 작품들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치 있는 그래픽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 Wien.info



건물 안에 들어가면 벽에 BENEFACTORS (후원자) 와 DONORS (기부자) 리스트가 쭉 명기돼 있다.

후원자 명단에 개인 이름도 보이고 스왈롭스키(Swarovski)와 같은 기업명도 보인다. 마찬가지로 기부자 명단에 개인도 있고, Siemens 과 같은 기업체도 보인다.


인류의 자산인 미술품에 대해 국가를 초월한 개인과 기업의 끊임없는 후원과 기부가 이 미술관을 지탱하게 하고, 그 수혜는 이렇게 전 세계 국민들이 향유하는 것이다.



6월의 아침 햇살이 유리 천장을 통해 내비치고 있어 베이지 톤의 실내가 더한층 화사했다.


당시, Rubens부터 Makart까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빈의 여러 미술관 관람을 하고 싶지만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었기에 고민이 많았는데, 오다가다 특별전의 루벤스의 그 그림을 보고는 꼭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짧은 여행 기간에 미술관 관람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흔쾌히 승낙해 준 마눌님께 지면을 통해 고마움을 표한다.


알베르티나는 총 3개 층으로 구분돼 있다.



2층의 그 아이가 날 응시한다. 곧 만나러 갈께 기다려~




처음 마주하는 작품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걸 보니 브뤼헐의 작품인가?


The Numbering at Bethlehem, 1607- Pieter Brueghel der Jüngere(1564-1638)


아버지 피터 브뤼헐(Pieter the Elder)의 큰 아들인 피터 브뤼헐 더 용어(Pieter Brueghel der Jüngere)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이다.

그의 그림도 아버지의 그림과 너무도 흡사하여 구분할 수가 없다.

캔버스 사방에 퍼져있는 사람들의 디테일한 묘사와 농부들의 일상생활. 아버지 밑에서 열심히 배웠나 보다.


좌측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눈 덮인 길을 쓰는 여인과 빙판에서 미끄럼 타는 아이들...

각자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가운데 가운데 청록색 옷을 입고 나귀를 타고 가는 이가 마리아와 그의 남편 요셉인 것이다.

그림 타이틀을 보지 않고는 성경 속의 모습을 화폭에 묘사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인구센서스를 명했고 마리아와 요셉이 이를 피해 베들레헴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때 마리아는 임신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겨울 눈 속의 사냥꾼] 작품처럼 아버지의 그림을 모사해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일상적인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서 상의 중요한 사건을 평온한 눈 덮인 농촌 풍경 속에 특별하지 않은 사건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가운데 성서에서 예언한 중요한 사건들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는지.


눈 덮인 풍경 속에 북적북적 되는 사람들의 일상이 풍부한 서사가 되어 보는 이에게 전달된다.

작가를 보고 나서야 아버지 작품인지 아들 작품인 지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이 함정이자 보는 재미로세.


여섯살 주니가 사자 입 모양 흉내를 내고 있어요. Terra (Earth), 1570 - Giuseppe Arcimboldo


위 작품은 아르침볼도의 4원소 가운데 [땅(Earth)]이다.

땅에서 서식하는 포유류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사슴뿔은 왕관 모양을 형성하고 있으며, 사자의 머리와 가죽은 보헤미아 왕국을 상징하지만 한편, 합스부르크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로 때려잡고 머리에 쓴 사자 가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가슴의 숫양의 머리는 합스부르크 왕조를 상징하는 '황금 양털 왕조'를 메타포(metaphor)로 하고 있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4원소 가운데 [불]과 [물]를 보았었는데, [공기]는 아직 못 보았구나.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짠!

아, 더 난해합니다..


Air, Giuseppe Arcimboldo, Private collection, Basel, Switzerland


[공기(Air)]의 경우 하늘을 나는 새들로 그려놓았다. 가까이에서 보면 모른다. 멀찍이 떨어져 봐야 한다.

참 기발하다. 입은 닭고기구나. 이른바 창의성이란 게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Saint Jerome, 1615 - Anthony van Dyck(1599-1641)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의 [성 제롬].

그림의 주인공은 라틴어로 '히에로니무스'라고 불리는 기독교 성직자로 천주교에서는 위대한 성인으로 추대하는 인물이다.

그는 저술에 몰두하거나 고뇌에 찬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 그림은 안토니 반 다이크의 최초의 대형 종교 작품이다.

관람객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쓰는 모습에 몰두하고 있는 성 제롬.

허리춤에 걸친 붉은색 Mantle 이 강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제롬은 근육질 사내로 묘사하였다.

반 다이크는 자연 주의와 빛과 색채를 강조한 베네치아 화법을 결합해 신격화된 모습이 아닌 나이 든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발밑의 사자는 그가 발톱에 박힌 가시를 뽑아 주었고 그때부터 그의 곁에서 발톱을 감추고 순한 양처럼 함께 했다는 가공의 산물.)


안토니 반 다이크는 루벤스를 사사한 제자 중 가장 위대하고 독보적인 화가였다.

스승 루벤스의 모든 기법에 통달했으나 인물은 다소 정적으로 묘사하였다.


아래 그림을 보자.


Charles I at the Hunt - Anthony van Dyck,


사냥을 하다가 방금 말에서 내린 듯한 찰스 1세의 초상화는 역사 속에 영원히 남고자 원했던 스튜어트 왕조의 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 서양 술사, E.H. 곰브리치


찰스 1세를 하나의 흠도 없는 완벽하고도 교양이 넘치는 인물로 묘사를 한 것이다.

거만한 귀족의 태도나 세련된 옷을 입고 근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러한 초상화는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영국 귀족 사회에서 그의 그림은 인기가 많아 그는 찰스 1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고, 이름도 안토니 반 다이크 경(Sir Anthony Vandyke)으로 불렸다. 덕분에 그 당시 영국 귀족 사회에 관한 옷차림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스승처럼 그도 밀려드는 초상화 주문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 많은 조수를 고용했으며, 얼굴 부분조차도 그의 붓질이 닿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마치 마네킹처럼 인물을 미화해 후대 초상화에 많은 폐해를 일으킨 부분도 없지 않았다.

위 그림도 생뚱맞기는 마찬가지. 말은 옆에 그대로 두고, 주인공만 포즈를 취한 모습이 참 작위적이다. 그런데 그 시대 귀족들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이런 젠체하는 초상화를 선호했다고 하니까. 그러나.,


루벤스의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건장하고 힘찬 인물들 못지않게, 인간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 세계를 풍부하게 해주는 명문 출신다운 귀족적인 품위와 신사적인 유유자적한 태도의 이상을 그림 속에 구체화시킨 사람이 바로 반 다이크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양미술사, E.H. 곰브리치



이런 맥락에서 같은 홀에 있는 그의 다른 작품을 감상해 보자.


Portrait of a Woman, 1618 - Anthony van Dyck(1599-1641)


익명의 여인 초상이다. 이 그림 옆에 동일한 느낌의 나이 든 남자의 초상이 같이 페어로 걸려 있다.

반 다이크의 초기 그림 중 하나로 앉은 인물의 3/4 정도를 그렸다.

단색 배경색 앞에 포즈를 취한 이 여성은 내면적으로 강인하고 절제된 모습이다.


여인에 투사된 옅은 빛은 주름 잡힌 옷을 비추고, 인물이 검은 배경으로부터 앞으로 튀어나 보이도록 한다.

최고급 비단 옷의 촉감까지 관람자에게 전해진다. 역시 루벤스의 제자답다!

그림에 꽉 차도록 인물이 들어차 있으며, 흰 Ruffs & Cuffs (목에 두른 깃과 손목에 두른 레이스)로 인해 색상의 대조를 극명하게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레이스 장식이 정말 사실적이다. 얼마나 디테일하게 묘사했는지 모른다.

어두운 배경이고 검은색 옷을 입었음에도 빛과 색채의 적절한 대비로 인해 전혀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다음 작품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주제 같다.


Saint Sebastian,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1562-1638)


그렇다. 성 세바스찬의 순교 장면.

복부에 화살을 맞은 채 하늘을 응시하면서 죽어가고 있다.

지난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그림(아래)에서처럼 순교자 세바스찬의 몸을 근육질로 묘사했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hdotjin, 루브르 박물관, 2018.10


왼편으로 쏟아지는 빛이 그의 뒤틀린 몸매를 더한층 부각시킨다.

화가는 이탈리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가 묘사한 이상적인 인간의 몸매와 역동성은 과거 전통방식과 매우 달랐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의 감정 표현을 볼 때 1506년 로마에서 발굴된 [라오콘 군상]을 연상시킨다. - 작품 해설




자 드디어 필자가 꼭 만나고 싶었던 아이를 여기 오스트리아에 와서 만난다!


Portrait of Clara Serena, 1616 - Peter Paul Rubens (1577-1640)


유럽 아이 초상화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루벤스의 큰 딸 Clara의 다섯 살적 모습으로 색상의 배치를 통해 생동감 있는 아이의 얼굴을 부각시켰다.


작품 해설


작은 액자 안에 담겨 있는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아이는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쳐다본다.

그러고는 활짝 열린 표정으로 그 시선을 나에게 되돌려준다.

"어머 멋진 아저씨, 절 보러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전 잘 지내요."


너무도 예쁜 아이다. 아이의 탱글탱글한 살결. 액자의 색상과 화실 색상도 깔 맞춤!

아, 이 그림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오스트리아 옆에 인접한 나라인, 6번째로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왕실 소장품(Princely Collections)인데 때마침 특별전이 열려 이렇게 '특별히' 만나게 된 것이다. 필자가 리히텐슈타인에 방문할 일이 없다고 보면 정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 만났을 터.


[아이의 얼굴], 1616, 피터 폴 루벤스 - 파두츠 리히텐슈타인 왕실 소장품


구도상의 복잡한 기교도 없으며 화려한 의상이나 흘러내리는 빛도 없는 단순한 소녀의 정면 초상일 뿐이다.그런데도 이 그림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고 맥박이 고동치고 있는 듯하다.이 그림과 비교해 보면 그 이전 시대의 초상화들은 예술 작품으로서는 제아무리 위대하다 할지라도 어쩐지 실물과 거리가 멀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 서양미술사 - E.H. 곰브리치



입술에 머금은 물기, 얼굴과 머리카락의 입체적인 묘사에 있어 붓질을 잘 활용했을 것이다.

그의 붓질로 인해 액자 속 주인공은 생명력과 활력을 갖고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역시 명작은 알아본다니까요


루벤스의 다른 작품을 감상해 보자. 이 작품도 리히텐슈타인 왕실 컬렉션 가운데 하나이다.


Venus in front of the Mirror, 1614/15 - Peter Paul Rubens (1577-1640) ,파두츠 리히텐슈타인 왕실 소장품


거울 속의 미녀가 나를 응시한다.

아까 아이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 오옷 저 이미 결혼했어요.


방금 목욕을 마친 '미의 여신' 비너스(고대 그리스어: 아프로디테)는 붉은색 오토만에 앉아 있고, 왼편의 날개 날린 아이, 큐피드(고대 그리스어: 에로스)가 엄마에게 거울을 보여주고, 곁에 하인이 그녀의 금빛 머리칼을 빗겨주고 있다.

비너스의 뒤태를 넋 놓고 훔쳐보던 관람객들이 거울에 비친 그녀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아 들켰네!

큐피드가 관람객들 정신 차리라고 짓궂게 딱 관람객이 보는 기가 막힌 각도로 거울을 들고 있는 거다.


루벤스에 대한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 할아버지 - 그러고 보니, 그도 오스트리아 빈 출생이다! -의 평가를 보자.



루벤스에게 그 이전의 어떤 화가도 누려보지 못한 명성과 성공을 거두게 만든 것은 거대하고 다채로운 화면을 손쉽게 구상하는 천부적 솜씨와 그 속에 활기가 충만하게 떠돌 수 있게끔 하는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재간과의 조화에 있었다. - 서양 미술사, E.H. 곰브리치



[거울 앞의 비너스]는 루벤스의 자필 서명이 들어간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로 피부와 살결의 묘사에 있어 매우 출중한 작품이다.

등에 쏟아지는 빛으로 인해 흰 살결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 검은 피부색의 하인과도 - 몸의 굴곡이 잘 드러난다. 굴곡진 황금빛 머리카락도.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날씬한 몸매가 유행이 아니었으므로 풍만한 체격의 비너스를 보여준다.

동시대 회화와 조각의 결투에 있어 회화가 제공할 수 없는 (조각만이 가질 수 있는) 3차원 효과를 화가들은 이렇듯 거울을 이용해 보완하곤 하였다.




동시대의 다른 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의 작품이다.

그는 루벤스의 가톨릭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신교도였다. 그리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화가였다.

유럽 미술관 통틀어 프란스 할스의 작품을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The portrait of a Man - Frans Hals (1582-1666)


액자 속에 한 아저씨가 관객을 응시한다.

살짝 주저앉은 눈매와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그런 편안한 모습을 연출한다.


프란스 할스는 어떻게 유쾌한 순간의 분위기를 전달할지 와 그림에 어떻게 생기를 불어넣을지 잘 아는 화가였다.

이곳 작품 해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그림은 하나의 '스냅 사진'처럼 보인다!

단지 인물의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심리적인 특징화(Psychological characterization), 즉 그 인물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였다는 말이다.



동시대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서 그려진 루벤스, 반 다이크 또는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들과 비교해 보자. 
그들의 초상화는 모두 생동감이 넘치고 사실적이긴 하지만 주문한 사람의 위엄과 귀족적인 혈통을 암시하기 위해 화가들이 주문자의 자세에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할스의 초상화들은 화가가 주문한 사람을 어떤 특정한 순간에 '포착해서' 그의 화폭에 영원히 고정시켰다는 인상을 준다. - 서양 미술사 - E.H. 곰브리치



순간적인 인물의 개성을 포착하기 위해 모델을 치밀하게 관찰했을 화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얼굴 표정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손을 흐릿하게 그린 점 등은 후대 인상파 (Impressionist) 화가들에게 분명 큰 임팩트를 주었을 것이다.


Vanitas Still Life, 1630 - Pieter Claesz(1596-1660)


다음은 피터 클라즈(Pieter Claesz)의 후기 작품으로, 그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그림을 잘 보여준다.

그는 정물화 속에서 우의적인 장치를 통해 인간의 덧없는 인생을 묘사한 체계를 수립한 사람이다.(피터 클라즈는 Vanitas라는 예술가 운동의 영향을 받음)


위 그림을 보면 오브젝트들이 탁자 위에 글자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겉보기에는 임의적으로 배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엎어진 황금잔, 꼬여있는 진주 목걸이, 은 보석 상자에서 흘러내리는 금가루, 꺼져버린 촛불 등 이 모든 대상들은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일시성"을 상징한다.

승리한 자에게 씌우는 영광의 상인 월계수 아래에 있는 해골. 시간이 흐르면 이생의 영화도 다 부질없다는 삶의 유한함을 일깨워준다.


저 화려한 소유물들은 누구의 것인가? 물건의 소유자가 죽으면 그것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착각하는 것이 '소유'의 문제이다. 우리가 누리고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정해진 기간이 있다. 우리가 잠시 살아있는 기간 동안에만 우리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Still Life' 가 은유하는 바가 바로 이것인 것이다.



The Piazza San Marco in Venice, 1723 - Giovanni Antonio Canal (1697-1768)


이탈리아 베네치아 풍경이다.

Canaletto 로도 불린 이탈리아의 풍경 화가인 Canal 은 자신의 고향 베네치아를 그린 작품들로 인해 명성을 얻었다.

원거리에서 보면 이것이 사진인지 그림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그의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는 당시 발명된 Camera Obscura 덕분이었다. (설명: 그림을 보다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발명한 광학 장치. 사진기의 전신.)

높이 솟은 산 마르코 종탑과 우측의 산마르코 대성당의 화려한 파사드가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Ferdinand Georg Waldmüller (1793-1865)


두 점의 정물화. 모두 생동감이 느껴지는 탁월한 묘사가 돋보인다. 크리스털 접시와 은도금 화병의 디테일을 보라.

Waldmüller는 오스트리아 빈 태생으로 성공한 초상화 화가이자 풍경 화가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Still Life(죽은 자연)' 그림을 잘 그린 여성 화가다.

꽃의 묘사에 있어서 신선함, 화려한 색상,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 거장으로 찬사를 받았다.

대부분 검은색 배경에 오브젝트를 배열함으로써 과일과 꽃의 광택, 은색의 반짝임, 크리스털의 불투명 등 색상 대비의 효과를 의도하였다.

예컨대, 우리도 파워포인트로 Deck 만들 때 배경이 검은색이면 텍스트에 더 집중하게 되고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Dark mode로 눈의 피로도도 낮추고.)


꽃이 놓인 대리석, 밀랍 표면을 가진 화병 등 금속성에 대한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크리스털 쟁반 위에 포도는 아직도 싱싱하구나!

빛의 반사와 대상 고유의 Opacity를 인상적으로 화면에 녹여내어 살아있는 정물화의 '정수'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The halted Pigrimage, 1853 - Ferdinand Georg Waldmüller (1793-1865)


이 그림 역시 같은 화가의 그림이다. 근데 이건 무슨 장면인가.

높은 평야의 좁은 trail 을 따라 Mariazell (지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한 여인이 지쳐 바위 위에 주저앉아 있고, 한 남성과 두 여인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남자는 그녀에게 물을 건넨다.


Mariazell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마리아 숭배의 가장 중요한 장소로 17세기부터 순례의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화가는 매년 순례를 떠나는 시골 사람들의 깊은 경건함을 묘사함과 동시에 가혹한 그들의 삶의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조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위 그림 세부


떠오르는 태양빛에 주변이 점차 밝아지는 이른 새벽, 바위틈에 투영된 빛줄기로 인해 바위가 3차원적으로 돌출되어 보인다.

주저앉은 여인의 피곤에 지친 얼굴. 그녀의 심리상태도 형상화하여 인물의 감정까지 읽히는 듯하다.

필자가 현장에서 이 그림을 보고 사진기로 찍은 것이 아닌가 싶어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인물의 묘사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어찌 보면 이 미술관이 보유한 최고의 작품이라 할 만한 그림을 보러 간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 비해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의 화가의 집념을 보여주는 대작들이다.

자 기대하시라. 교과서와 미술책에서 보던 최고의 '소묘(Drawing)'를 볼 수 있다.


소묘 갤러리로 이어진 화려한 홀을 지나간다.



두둥!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산토끼(Hare)].



Hare, 1502 - Albrecht Dürer (1471-1528)


아이들이 본다면 액자 속에 산토끼가 한 마리 들어가 있어요~라고 할 것 같다. 곤두서있는 토끼털 하나하나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수채화 작품으로 화가는 대상의 세밀한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을 것이다.

이렇듯 과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대상에 대해 소상히 묘사하는 것이 화가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상을 왜곡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를 화폭에 담고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다.


뒤러의 작품들


다음 뒤러의 작품은 어찌 보면 알베르티나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그림이다.

우리가 한 번쯤 예배소나 미술책에서 접한 적이 있는 [기도하는 손].



Praying Hands, 1508, Albrecht Dürer (1471-1528), Brush in gray and black



이 작품을 여기서 직관하게 될 줄이야!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신에게 간구하는 기도를 올리는 장면.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오로지 기도하는 손만을 그림에 담았다.

뒤러는 가톨릭 신자였기에 신앙을 연마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그렸을 터다.


위 그림 세부


뒤러의 성공을 위해 노동을 택한 뒤러의 친구의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있다.

오른쪽 손가락이 다소 굽은 것으로 미루어 노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손등에 묘사된 혈관들과 살갗에 대한 묘사를 보라!

붓질 하나하나가 보이고, 이것이 모여 하나의 완성작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주의 깊게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을까 싶다.



뒤러의 소묘 작품들


빈에 와서는 유독 뒤러의 그림을 자주 접하고 강한 임팩트를 느끼고 간다.

뒤러의 소묘 작품 몇 점이 이 홀에 별도로 전시돼 있으니 잊지 말고 확인해 보시길.



Male nude from behind, 1504 -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소묘도 눈에 띈다.

대작을 그리기 전에 이렇게 습작 형태로 인물들을 스케치해 보고 나서 이행했을 것이다.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이번엔 피터 폴 루벤스의 아들 니콜라스의 초상이다.


Nicolas Rubens, 1619 - Peter Paul Rubens (1577-1640), Chalk, Red Chalk


벽에 걸려 있지 않고, 유리로 된 캐비닛 안에 들어 있다.

(이 그림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첫 번째 도판으로 나오는 그림. 미술사를 이해하려면 필독해야 하는 책이다.)

루벤스는 자신의 아이를 아름답게 묘사하는 데 분명 공을 들였을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예쁜 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검은색, 붉은색 초크로 슥슥 그린 초상화인데 포동포동한 아이의 피부와 발그레한 뺨 등 생동감이 넘친다.





다음은 상설전으로 열리는 '모네부터 피카소까지'의 주요 작품들이다.


전 세계 유명한 미술관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화가가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바람둥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그림도 여기에. 그의 여인들의 수만큼이나 그의 작품들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Nude woman with Bird and flute player, 1967 - Pablo Picasso (1881-1973)



피카소의 작품은 타이틀을 봐야 무엇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가 있다.

피카소의 마지막 삶의 동반자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 - 나이 차이가 무려 마흔여섯 살! - 와 새로운 도시로 이동한 1961년, 그는 점점 더 자신에게 빠져든다.

후기 작품은 늙음에 대한 투쟁, 두려움 그리고 에로틱한 환상으로 점철된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그의 회화를 지배하게 된 것.

그래서인가, 말년에 그는 엄청난 작품을 쏟아냈다고 한다.


베네치아 회화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 아카디아(Arcadia, 목가적 환경)에서 여성에 구애하는 플루티스트가 있는데 그 Theme 을 가져왔다.

성욕의 상징인 비둘기를 넣음으로써 에로틱 분위기를 뚜렷이 암시하고 있다.


Woman in a Green Hat, 1947 - Pablo Picasso (1881-1973)


앞선 그림보다 20년 전의 그림이니 한창 큐비즘(Cubism, 입체파)에 탐닉해 있을 적에 그린 그림이다.

누가 봐도 이건 피카소 그림이구나 할 정도로 그의 그림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인의 앞에서 본 모습과 옆에서 본 모습, 즉 관찰자의 시선의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모습을 하나로 혼합해 보여준 것이다.


이 비뚤어진 코를 일부러 그렸는데... 코가 보이도록 했습니다. 나중에... 전혀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냥 예쁜 조화와 절묘한 색상에 대한 인식은 그만둬야 합니다. - Pablo Picasso



뒤러의 그림에서 우리가 보았듯 우리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울 때는 데생과 소묘부터 시작을 한다.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것을 튼튼히 다진 이후, 거기에 자신의 개성을 가미하면서 대상을 다르게 표현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큐비즘의 화가들이 왜 대상을 왜곡해서 그렸을까, 저 정도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데 그건 오산이다.

그들은 사물을 그대로 보이는 대로 묘사하지 않고,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대상을 다르게 변형하거나 왜곡시켜 창작을 한 것이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 가운데 초상화를 그린 것을 보면 얼마나 잘 그렸는지 모른다.


다음 그림은 필자가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Museu Picasso)에서 본 그의 초기 작품이다.


Science and Charity, 1897 - Pablo Picasso, Museu Picasso


협소한 방에 환자가 누워 있고 왼쪽의 환자의 맥을 짚고 있는 의사(Science, 피카소의 아버지가 모델 역할을 함), 오른쪽의 수녀(Charity를 상징)의 모습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과학적 진보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 예술 영역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회화에도 이러한 사회 현실주의적인 내용을 담은 그림이 많았다. (위 그림은 피카소가 15살 때 그린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보고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익숙한 방식의 회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연구하던 중, 세잔의 그림에 자극을 받아 큐비즘을 창조하고 입체파의 기수가 된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제일 큰 장애물은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다. 
친숙하게 알고 있는 주제를 뜻밖의 방법으로 표현한 그림을 대했을 때, 그것이 정확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하곤 한다.
 ... 
미술가가 작품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그 작품을 만드는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우리는 각 시대의 미술가들이 이룩하려고 고심해온 그런 종류의 조화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이러한 조화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풍부해질수록 그만큼 그런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을 즐기게 될 것이다.
- 서양미술사 - E.H. 곰브리치



미술작품을 많이 감상하도록 하자. 이는 우리의 눈을 더 날카롭게 하고 감수성을 키워주며 이러한 경험이 쌓여 비로소 화가가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작품을 접할 때 참신한 시선을 유지하자. 그럴수록 그림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The Enchanted Domain, 1953 - René Magritte (1898-1967)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어떤 마법이 펼쳐진 공간, 초현실적인 느낌.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작품은 처음 접한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호안 미로(Joan Miro)와 더불어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Surrealism) 미술가의 대표자 중 한 명이다.

초현실주의는 주로 무의식과 꿈에 기반한 주제에 소구하며, 이들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진실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초현실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숨겨진 현실(Reality)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렇듯, 초현실주의는 꿈과 현실, 주관적인 느낌과 객관적인 대상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고자 하는 혁신의 산물이었다.


한편, 초현실주의 회화는 대상을 분명하게 묘사한다. 위 사진에서 보듯 대상의 윤곽선이 뚜렷하다.

꿈이라는 것은 무의식적인 세계이고 대상이 뚜렷하게 형상화되어 보여질 수 없는 데, 초현실주의 회화에서는 이렇듯 대상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모순점을 내포한 있는 사조라 할 수 있다.


Two profiles, 1928 - Pernand Leger (1881-1955)


위 작품은 페르낭 레제(Pernand Leger)의 작품이다.

그도 피카소처럼 세잔(Cezanne)의 영향을 받은 화가로 1909년에 피카소, 브라크(Braque)가 주도하는 입체파에 합류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기계의 힘'에 강한 인상을 받아 기계 시대의 진보를 추구하는 그림을 주로 그리다가 1919년에 다시 큐비즘으로 회귀한다.


그는 풍경이든, 정물이든, 얼굴이든 중요하지 않고 모두 다 평등한 대상으로 보았다. 화면에 보이는 대상은 명확하고 질서 정연하게 아웃라인 되어 있고, 두 개의 대상이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질서와 조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 - 작품 해설



왼쪽은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



다음은 자그마한 액자에 담긴 마티스의 그림


Parrot Tulips, 1905 - Henri Matisse (1869-1954)



Parrot Tulip 은 꽃잎 가장자리가 주름져 있고 그 부분이 화려한 색으로 빛을 발해 마치 앵무새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하면 야수파(Fauvism)이 떠오르지만 그가 잠시 점묘법에 관심을 가진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그는 폴 시냐크로부터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을 배웠다.)

우리도 이 정도면 그릴 수 있는 것 아니야? 할 수 있겠지만 대가가 그린 것이니 뭔가 일반인이 잡아내지 못하는 Value 가 있지 않을까.



마티스의 다른 작품은 아래 퐁피두 센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상설 전시관에 딱 한 점 걸려있는 모네(Claude Monet)의 작품. 필자가 거실에 걸어놓고 보고 싶은 수련 작품이다.


The Water Lily Pond, 1917~19 - Claude Monet (1840-1926)



연못에 버드나무가 비치고 연잎이 몇 개 떠 있고 노란 연꽃이 피었다

대상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대신 시간에 따라 바뀌는 빛의 조도를 반영하여 대상을 흐릿하게 묘사하였다.


모네의 후기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작업실이 위치한 지베르니(Giverny)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일본 정원을 본떠서 꽃을 심고, 나무다리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었다. (그래서 지베르니를 찾는 일본인이 많다고.)


생애 말년에 그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리 보이는 수련에 집착하였다.

수련의 특별한 매력은 대상의 실제와 물에 반영된 모습의 공존, 캔버스에 가득 차도록 연못을 그리고 수평선을 배제한 데 있었다.

'수련 연작'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숨을 거둘 때까지 인상주의(Impressionism)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추상의 본질에 다다르려고 노력했던 진정한 화가였다.

필자도 언젠가 지베르니에 가서 그가 직접 가꾼 정원과 수련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그의 [수련 연작] 8점은 아래 오랑주리 미술관 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artelove/3


근대 조각가의 시조로 불리는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François Auguste René Rodin)의 조각 작품 한 점이 전시돼 있다.


로댕의 다나이드


로댕 박물관에서 봤던 흰 대리석의 그것과는 다른 황동 조각 작품.

예의 다나이드의 아름다운 보디라인과 풀어 헤쳐진 머리가 바닥과 하나가 된 것 같은 일체감이 인상적이다.


다음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인 [Nymphs].


Nymphs (Silver fish), 1899 - Gustav Klimt (1862-1918)



이 그림도 클림트의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곤 하는 작품이다.

여인의 얼굴을 한 올챙이 같구나. 클림트의 특징은 광택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 여인의 얼굴은 당시 귀족 부인이던 '로제 폰 로스트 호른 프리드만'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귀족 부인을 한 팜 파탈인 것이다.

클림트는 물에서 Motif를 많이 가져왔는데 [물뱀 연작]도 그중 하나이다.



클림트의 알레고리인 인어(Mermaids)와 모네의 수련 연못(Water Lily Pond)의 대응은 1900년 무렵 인기 있었던 물 주제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을 제시한다.  
물빛으로 뒤덮인 연못에 빛이 번갈아 가며 영향을 미치는 모네의 인상파적 인식은 형태와 색의 해체로 이어진다. 
반면에 클림트는 상징주의를 선택했고 수중 세계에 대한 에로틱한 해석을 암시했다. 수많은 금의 뉘앙스로 표현된, 여과된 햇빛은 물의 짙은 녹색과 어우러져 두 마리의 악마 같은 인어와 그 주변을 지나는 은어의 신비한 배경을 형성한다. 
모네와 클림트 둘 다 자연현상의 덧없음에 대해 각각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 Albertina 작품 해설



그의 작품은 이날 오후 '벨베데레 국립 미술관(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13편)'에서 제대로 감상하게 된다.



Prostitute, 1918 - Amedeo Modigliani (1884-1920)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모딜리아니의 작품. 그가 그린 작품들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전시도 불허되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변변히 펼치지도 못하고 서른일곱의 나이로 짧은 생을 살다 간 불우했던 작가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사후 그의 작품은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고 명 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소녀]를 감상한다.


Portrait of a Young Girl, 1879 - 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작은 액자 속에 어여쁜 여자아이가 미소 짓고 있다. 파스텔로 칠해서인지 더욱 아이의 얼굴과 미소가 더욱 따뜻하게 전해오는 것 같다.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도 화가로서의 경력 초기에는 초상화 수입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였다.


모델은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미술 수집상의 조카인 Elisabeth Maitre로 여섯 살 때의 그림이다.

상반신으로 잘라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묘사했으며, 약간 자세를 옆으로 틀어 앉아있지만 아이의 시선은 보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법상으로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파스텔 기반의 초상화 방식을 의도적으로 채택하였다.



모네부터 피카소까지 상설전 풍경


귀여운 꼬마 아이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상설전까지 관람을 하였다.

위에 서술한 작품 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손짓을 한다.

시간상 알베르티나가 보유한 모든 컬렉션을 둘러보지 못하였다. 아이와 함께한 여행이고 나만 좋다고 미술관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아프로디테가 다음에 또 봐요 하는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빈 슈타츠오퍼



알베르티나를 나오니 정면에 빈 슈타츠오퍼가 보인다.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이 광경이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와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호프부르크 왕궁을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빈 도심만 해도 가볼 곳이 정말 많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자이기에 시간을 쪼개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ㅠㅠ



폴 루벤스의 그림과 알브레히트 뒤러의 소묘가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 가운데 하나로 손색이 없었다.

포스팅하면서 알베르티나 홈피를 보니 현장에서 미처 보지 못한 작품들도 많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을 기약하자.



알베르티나의 상징, WING



♪♬ 알베르티나 (Albertina, W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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