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11. 빈 미술사 박물관 - 2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Part 2에서는 파올로 베로네세, 카라바조,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와 틴토레토, 그리고 바로크 시대 스페인의 궁정화가 디에스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빈 미술사 박물관의 숨은 보물들이 여전히 많으니 부푼 기대를 가득 담고 랜선 여행 출발~




커다란 액자에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is van Dyke)의 작품이 걸려있다.


Mary with Child and Saint Rosalie, Peter and Paul, 1629, Antonis van Dyke(1599-1641) - Gallery XIV


이 작품은 '성 로잘리아의 대관식(The Coronation of Saint Rosalia)' 이란 제목으로도 불린다.

가운데 흰옷을 입은 인물이 마리아, 마리아의 손에 들린 아기 예수를 통해 관을 받는 여성이 로잘리아이다.


마리아의 축복이 예수를 통해 그녀에게 전달되는 형식으로 축복의 Origin이 Maria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천주교는 그들의 교리를 전파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보다 마리아를 그 위에 두는 것으로 성경 말씀과 다분히 배치되는 것이다.

왼쪽에 칼을 들고 서 있는 남성이 바울이며, 로잘리아 우측에서 하늘의 아기 천사를 바라보는 푸른 숄을 걸친 인물 - 천국의 열쇠를 손에 들고 있는 이는 언제나 -이 베드로이다.


성 로잘리아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공주였다. 어느 날 신에 이끌려 순결하게 살고자 십자가와 몇 권의 책을 들고 성을 떠나 세상에서 완전히 단절된 채 동굴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속죄를 통해 거룩한 삶을 살기로 하고 여생을 그곳에서 보내다 30대에 죽는다.

흑사병(Pest)이 창궐하던 17세기 초, 한 은둔자가 성 로잘리아의 환영을 보고 그녀가 죽어 있던 동굴을 찾아 그녀의 유해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흑사병이 종식되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시칠리아에서는 지금도 그녀를 기리는 축제를 매년 2번씩 개최한다고 한다.(1927년 교황에 의해 성스러운 날로 승격되었다.)


그녀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입고 있는 브로케이드(Brocade)는 금실로 번쩍이고 화려한 수가 놓아져 있다.

반 다이크는 앤트워프 예수회 교회의 예배당을 위해 그렸는데, 훗날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여제가 구입 후 빈으로 가져와 이곳에 걸리게 된다.


다음은 Part 1에서 소개한 피터 폴 루벤스의 대형 작품이다.


왼쪽의 대형 캔버스의 그림과 문가에 세워둔 패널의 작은 그림이 같은 주제를 그리고 있다.
The Miracles of St.Francis Xavier, 1617/18, Peter Paul Rubens (1577-1640)


이 그림은 앤트워프(Antwerp) 예수회 교회의 제단에 걸려있던 그림이다.

강단 위에 오른 성 프란치스코 자비에르(St. Francis Xavier)는 군중들을 향해 설교를 하고 있다.

죽은 자가 설교를 듣고 다시 소생되고, 소경과 다리 저는 자가 나음을 입은 장면을 그린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 자비에르는 아시아에서 종교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여러 기적들을 행했는데, 이는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증거이자 카톨릭 시복(Beatification)을 위한 준비로써의 증거이다.


주제야 어떻든 간에 루벤스의 작품답게 안정적인 구도는 시각적인 편안함을 제공한다.

등장인물들의 근육 묘사를 보라. 소경(우측의 양 팔 벌린 이)이 걸어오고, 죽은 자가 일어설 것 같지 않은가.

왼쪽 상단에 짙은 색 망토를 입은, 검은 얼굴의 악의 천사가 보이고 - 죽었던 자가 깨어나니 놀란 모양 - , 그 위로는 하늘의 영광이 임하자 우상이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고 사람들은 놀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편, '로욜라의 성 이그나티우스의 기적' 그림과 번갈아가며 제단 위에 걸렸다고 한다. (이 그림 우측에 별도의 작은 패널 그림이 있다.)


작품 설명


이탈리아 베네치아 태생으로 티치아노를 사사했던 틴토레토(Tintoretto)의 작품, [수잔의 목욕].

Susanna Bathing, 1555, Tintoretto


그는 스승 티치아노와 함께 베네치아 화풍을 이끌었던 화가이다.

조르조네, 티치아노로 대표되는 베네치아 화가들은 빛과 색채를 활용해 화면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였고, 등장인물뿐 아니라 풍경까지도 하나로 융합해 작품의 중요한 주제가 되는데 기여하도록 했다.


틴토레토는 선배 화가들의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거침없이 화폭에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역사와 성서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연구했고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위 작품에서는 예의 그의 필살기인 '극적인 효과와 긴장감'은 그리 발견하기 어렵다.

눈이 부실만큼 백옥 같은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고, 담벼락 뒤에서 두 명의 사내 - 한 명은 뒤에 작게 그려져 있다. - 가 이 광경을 엿보고 있다.

물론 이 사내들은 긴장감을 가지고 가슴 두근두근하면서 이 광경을 볼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관람객들 입장에서는 그리 강한 긴장감은 보이지 않는다.


자, 그렇다면 필자가 언급했던 그의 필살기가 뿜뿜 뿜어 나오는 작품을 보도록 하자.


[Saint George and the Dragon, 1555/8] Tintoretto -National Gallery, London

그림 전체를 감싸고도는 음산한 분위기 속에 화면 중앙에 백마 탄 기사가 창을 들고 용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 사이를 틈타 긴장된 표정으로 이 현장에서 도망치는 여인의 모습. (a.k.a. 백마 탄 기사가 공주를 구하는)


작품을 보는 이들도 이 장면을 보면서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기의 불안정한 색조는 이러한 긴장감과 흥분된 감정을 더한층 고조시킨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 화풍의 선배 화가들이 깔아놓은 편안한 방석에 앉지 않았다.

티치아노의 작품에 대해서는 '성경과 성인들의 엄숙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할 만큼 그리 열정적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선배들의 익숙한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한 것이다.


틴토레토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우리 앞에 전개되는 엄숙한 인상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 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인용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빛과 대기가 주는 평온함을 버리고, 안정적인 구도 대신에 - 원근감이 무너져 있다. - 역동성을 택하였다.

기사가 입은 바지와 여인의 붉은색 숄이 두 인물을 강조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위대한 혁신을 만들어 내는 길은 기존의 방식을 따르고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


작품에서 강조할 부분 외에는 붓 터치를 완료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어 관람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긴 것도 특징이다.- 뒤의 희뿌연 성의 모습이 미완성이다.


언젠가 이 작품을 대면할 날을 고대하며...




다음은 루브르 박물관의 [가나의 결혼잔치]로 유명한 베로네세의 작품이다.


역시나 사이즈가 크다


Sacrificial Death of Marcus Curtius 1550/52, Paolo Veronese(1528-1588)


작품 설명에 따르면 베로네세는 대담한 원근법을 통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의도하였다.

이는 시각적으로 특이하고 장난기를 내포하는 예술에 대한 즐거움으로 그 시대의 매너리즘적 취향(정통적인 화법을 피하고 새로운 기법을 동원해 인습적인 아름다움과는 다른 효과를 의도)에 다분히 소구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포로 로마노에 갑자기 깊고 거대한 웅덩이가 생겨 로마 시민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된다. 시민들은 신들이 로마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절망하고 있을 때, Marcus Curtius라는 젊은 군인이 신탁(Oracle pronounce) 을 듣고 시민들을 향해 로마인의 무기와 용기가 가장 귀중한 재산이라고 그들을 꾸짖으며 그 구덩이에 몸을 던져 로마를 구한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ㅎ


그림에서는 그 포로 로마노의 근처에서 발견된 부조(Lacus Curtius)를 살피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구나.


Cleopatra's Suicide, 1659, Guido Cagnacci (1601-1663)


귀도 카냐치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아름다운 여인이 잠이 든 것처럼 보이고, 주변의 다른 여인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아!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잠든 여인의 팔에 뱀이 감겨 있고 이를 쳐다보던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다!

빛은 가운데 여인을 비추고 있으며 배경의 검은색과 대비되어 그녀의 미모가 더한층 강조된다. Beauiful. t 없이 아름답다.


이집트의 마지막 왕비인 클레오파트라.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개선 행진으로 로마를 통과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 불명예를 당하지 않으려 스스로 독사에 물림을 당한다.

이 그림에는 두 가지 상호 대비되는 표현이 콤바인 돼 있다. 하나는 그녀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애도하는 하인들의 분출된 감정을 사실감 있게 표현했고(리얼리즘) 다른 하나는 클레오파트라의 차분하고 침착한 자세(고전주의)이다.


The Baptism of Christ, 1622/23, Guido Reni(1575-1642)


귀도 레니(Guido Reni)의 [침례를 받는 그리스도]이다.


침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서 설교를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침례를 주고 메시아(Messiah)의 강림을 선포한다. - 침례 요한을 상징하는 막대기. (아래에 라파엘로의 [The Madonna of the Meadow] 작품에서도 십자가 모양의 막대를 들고 있다.)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예수님은 세례 - 위 사진처럼 물을 몇 방울 뿌림- 받으신 게 아니라 침례를 받으신 것이다.

성경을 살펴보면 [마 3:16]에 "As soon as Jesus was baptized, he went up out of the water." 라 명백히 언급돼 있다.

즉, 머리에 달랑 몇 방울의 물을 뿌린 것이 아니라 물에 첨벙 잠긴 후 새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로서의 '침례'라는 것이다.


예수는 침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뒤의 천사들의 그의 옷을 받는다.

이때 성령(Holy Spirit)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하늘로부터 임하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


현실과 이상, 그리고 지상 것들과 천상이 균형 잡힌 모습으로 이 고요한 장면에서 서로 침잠한다.


다음 작품도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Christ and the Diciples in Emmaus, 1614/1621, Caravaggio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이다.

강한 명암의 대비로 정평이 나 있는 화가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앞에 예수가 나타난다. 최후의 만찬에서 그러했듯 예수는 빵을 쪼개고 이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이에 화들짝 놀라는 두 제자의 모습을 포착하였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London, National Gallery)에 이와 똑같은 구성의 'Mirror Image'가 있는데 그 화가는 카라바조의 화법을 계승했다는 네덜란드 화가 - Hendrick Terbrugghen - 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다음 작품을 살펴보자.


Crowning of Thorns, 1603, Caravaggio (1571-1610)


군인들이 예수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있고 한줄기 빛이 마치 무대 위 조명처럼 이 광경을 비추고 있다.

예수의 벌거벗긴 몸과 군인들의 몸의 근육이 카라바조의 붓 터치로 인해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 같지 않은가!

가시 면류관을 쓴 머리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빛의 명암 효과를 극대화해 화가가 어필하려는 주제가 관람자에게 더한층 생생하게 전달된다.


위 작품은 카라바조의 진품인지 논란이 됐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머리와 두 군인의 어깨, 가슴의 표현, 붓 터치 등에서 카라바조의 특성을 발견하고는 그의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쇤브룬 궁전



Archduchss Marie-Antoinette, Queen of France, 1778, Marie Louise Elisabeth Vigee-Lebrun


작품 속 여인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아내였던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그림은 프랑스의 파리 태생의 여류 화가인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Louise Élisabeth Vigée-Lebrun)이다.

1775년 그녀는 이미 여러 귀족들과 부유층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고, 그 명성이 궁에까지 전해져 마리 앙투아네트의 요청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의 초상화까지 그린다.

이 그림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위한 것이었고, 이 그림은 보고는 "너의 큰 초상화가 참 마음에 든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그림은 호프부르크 궁전(Hofburg Palace)에 전시돼 있다 빈 미술사 박물관(KHM)으로 옮겨졌다.




다음에 소개할 그림이 필자가 빈 미술사 박물관의 나머지 '반의반'에 해당한다고 평가하는 작품입니다!

아 이 작품을 드디어 실물로 보게 되다니!


Madonna of the Meadow, 1505, Raffael (1483-1520) - Gallery III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Madonna of the Meadow)]라는 작품이다.


중앙에 벌거벗은 귀여운 아기 예수가 침례 요한(십자가 막대기)과 놀고 있고 - 침례는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했기에 무릎을 꿇고 - 마리아는 이 모습을 자애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아주 평화로운 그림 되시겠다.


작품의 구도를 살펴보자, 삼각형의 안정적인 구도이다.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만큼.

인간계를 의미하는 광활한 목초지를 배경으로 해 예수-마리아-침례 요한의 삼각 구도를 형성한다.

이 프레임이 웅변하는 바는 영속적인 세계는 영원하지 않고 유한한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세계만이 영원하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영적 사고의 출현이었다.(멀찍이 보이는 인간계를 흐릿하게 표현함으로써 덧없음을 내포한다.)


사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회화의 대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를 오마주한 것이다.

작품 구도도 그의 작품을 따르고 있으며, 다빈치가 개발한 '대기 원근법'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라파엘로 역시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라 할 만하지만 선배 화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의 기법을 열심히 익혀 이러한 명작을 만들었다.


원작보다 분위기도 한결 밝고 부드러워 보기만 해도 따듯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붉은색은 예수의 죽음을, 푸른색 치마는 교회를 상징)

박물관 방문 기념 마그넷을 사와 지금도 차가운 냉장고에서 따스한 온기를 뿜고 있다.


필자는 수 년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다빈치의 작품과 라파엘로의 [성모자상]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좌), 라파엘로의 성모자상(우) - 루브르박물관, © hdotjin, 2018.10


어떠한가. 다빈치의 구도와 원근법이 라파엘로의 작품으로 이어져 있음을 느끼겠는가.


암굴의 성모와 이에 대한 라파엘로의 오마주 기록은 '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루브르박물관'편을 참고하시길 (스압주의)





빈 미술사 박물관은 컬렉션의 무게감에 비해 관람객이 많지 않은 듯하다. 루브르나 오르세의 경우 인파들로 북적여 그림만 온전히 카메라에 담아내기 어려웠는데 이곳은 대체로 한산하다.


일요일 오후 5시임에도 갤러리는 한산하다


필자가 보고 싶었던 작품들 모두를 돌아보지는 못하였지만 굵직한 작품들은 직관하게 되어 기쁘다.

더구나 아이와 동행한 미술관인데, 잘 참아준 아이와 처자식을 내버려 두고 그림만 찾아보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남편 대신 돌보느라 고생한 마눌님에게 참 고마웠다.


정면으로 베르메르의 작품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그림은 귀여운 공주님들이시다!

그런데 다소 무미건조하게 공주님들이 등장하는구나.


공주님 입장~~


스페인 황실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가 그린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 세 편이 이웃해 걸려있다.


Infanta Margarita Teresa in a pink Gown, 1654, Diego Velázquez(1599-1660)


마르가리타(Margarita Teresa, 1651-1673) 공주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첫아이였다.

할아버지였던 페르디난트 3세의 요청에 따라 스페인 왕실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2~3년 간격으로 보내게 된다.


위 그림은 단상에 앳되지만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당당하게 서있는 공주의 모습을 그렸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마르가리타 옆에 화병에는 그녀가 살짝 비쳐 보인다. (사진에서는 확인이 힘듦)


[시녀들] 출처 Wikipedia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평범한 캔버스를 가지고 등장인물을 전경-중경-후경에 배치하였는데, 인물의 배치에 있어 빛과 음영을 적절히 활용해 가까이서 바라보다가 뒤로 몇 발짝 내디니, 캔버스의 등장인물의 위치가 들쭉날쭉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마치 크리스마스 입체 카드처럼.


부연 설명하자면 한 발짝 뒤에서 보면 전경과 후경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2개의 공간으로 나뉘다가, 다시 한 발짝 더 뒤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전면의 시녀들 우측의 창으로 인해 빛이 새어 나오면서 또 하나의 공간이 생기면서 총 3개의 공간에 등장인물이 배치되어 보이는 것이다.


마술을 본 것 같아 참 놀라웠다.


왼편의 벨라스케스 자신을 그려 넣고 가운데 다섯 살짜리 마르가리타가 보인다. "아빠, 엄마 오셨어요?" 하는 것 같다.


위 그림은 1985년 전 세계 미술가가 뽑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작품 [시녀들]의 그 복장이다.


드레스의 볼륨과 주름의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매끈한 느낌까지 화가의 놀라운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세 편의 초상화 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다음 작품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를 보도록 하자.


Infanta Margarita Teresa in a blue dress, 1659, Diego Velázquez(1599-1660)


좀 더 성장한 여덟 살의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로 벨라스케스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그해 이 그림은 훗날 마르가리타와 결혼하게 되는 레오폴트 1세(Leopold I)에게 전달된다.


이 작품에서 화가는 테크닉의 정점에 도달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부각시켰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간단한 붓 터치로 끝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녀의 왼손과 오른손을 비교해 보라. 불필요한 부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오로지 핵심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도록 화가가 의도한 것이다.


드레스의 주름을 비롯해 드레스의 반짝이는 점들이 인상주의의 그것처럼 관람객의 눈에 잔상으로 남는다.

이 효과를 느끼기 위해 필자도 한 발짝 물러선다.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마치 3차원 공간에 그녀가 서 있는 것 같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뒤 배경보다 앞으로 몇 발짝 내디딘 모습처럼 보인다.


마르가리타가 입고 있는 옷은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한 것으로 은색 천을 덧대어 드레스를 장식했고,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엉덩이 부분을 풍성하게 늘린 틀(크리놀린)이 특징이다.

그녀는 스물두 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원인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장려한 결과로 추정하고 있다.


좌 - [Infant Philipp Prosper], 우 - [ Infant Maria Teresa]


이 밖에 [어린 펠리페 프로스페로 왕자의 초상]과 [어린 마리아 테레사의 초상]도 걸려있다.

모든 초상화가 등장인물의 왼쪽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빨이 잘 받는 각도 일는지요. ㅎ


미술은 알아야 잘 보이는 법. 역시 세 번째 작품 주위가 가장 붐빈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끝으로 1층 회화관을 나선다.


이탈리아, 북유럽, 플랑드르 지방의 르네상스 회화부터 바로크 미술까지 다양한 작품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화를 보여주는 수준 높은 컬렉션이라 할 만하다.

갤러리실 곳곳에 필자의 눈을 잡아 끄는 훌륭한 작품들로 인해 감동한 시간이었다.




아직 한 개의 작품이 더 남아있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 회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아 0.5층의 이집트 및 동방의 유물과 그리스 로마 고대 유물관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다.


화려한 금으로 주조된 수공예품이 캐비닛에 보관돼 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Salt cellar (Saliera) - Benvenuto Cellini - Gallery XXIX


피렌체의 조각가이자 금세공사인 벤베누토 첼리니 (Benvenuto Cellini, 1500-1571)의 [소금 그릇]이다.

아니 무슨 소금 그릇이 이렇게나 화려한가 싶다. 왕은 소금 하나 찍어 먹더라도 이런 그릇에 담아 먹었다는 말인가? ㅎㅎ


360도로 돌려본다. 소금 그릇을 앞에 두고 남녀가 뭐하고 있는 것인가? 해설이 필요한 순간이다.

바다를 상징하는 해신은 주위에 네 마리의 해마(Sea Horse)를 배치하고 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다. 맞은편의 여신(데메테르)은 대지를 상징하는데, 후춧가루를 담을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의 신전을 곁에 두었다.

땅과 바다를 의미하는 장식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 속 주인공을 소환한 것으로 예술가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 서양미술사, E.H. 곰브리치 인용


첼리니가 프랑스의 왕에게 선물한 금으로 도금한 그릇이다. 화려한 장식이 극에 달한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창안을 끝없이 고민했을 예술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장식 하나하나에서 보이는 듯하다.




모든 작품을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며, 다음을 기약한다.

미술관을 나가기 전, 세기말 빈의 예술혼을 상징하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멋진 조각상 앞에 다시 서 본다.


@KHM WIEN, 2019.6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동상이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다.

Maria-Theresien-Platz


♪♬ 빈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KHM)

https://www.khm.at


이전 11화 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11. 빈 미술사 박물관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