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생각 no.9]
나는 내 인생의 가장 끈질기고, 집요한 목격자다.
단지 자신이라서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타인보다 나 자신을 더 깊이 오래 들여다본 까닭이다.
목격담을 쓰다 보면 늘 마지막은 예상치 못한 추상적 이미지로 끝나버린다.
날 것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익히고 데치고 구워서 소스와 함께 내놓게 된다.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생각은 저 멀리 멀어져 있다.
엉뚱한 꿈 속에 도착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에 옷까지 다 입어놓고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을 목격하다.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스러져 가는 순간을 마주할 때면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다. 감정을 드러낼 힘조차 없어서 멍하게 투명해진다. 집 밖을 나서고 싶지 않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 무엇도 이루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지 않은 것만 선명해진다. 귀에는 쿵-하고 둔탁하게 세계가 좁아지는 소리를 듣는다. 입에는 착잡하게 내려앉은 쓴 맛이 감돈다. 손에는 무거운 공기만 얹힌다. 나태, 권태, 무기력, 기타 등등. 우릴 만큼 우려서 아무런 향도 남아있지 않은 찻잎처럼 뻔한 단어들. 그걸 책상 위에 쏟아두고 햇볕을 쐰다. 피할 길 없는 빛에 말라서 비틀어지며 보여주는 미세한 움직임을 지켜본다. 버석하게 마른 찻잎을 다시 손에 넣고 부순다. 창문을 열고 그 가루를 바람에 실려 보낸다. 남은 가루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하나의 입자도 남김없이 날려 보낸다. 공기의 움직임이 보인다. 가루가 된 것을 바람에 실려 보낸다. 마음이 0.5g 정도 가벼워진다.
추신. 이날은 결국 외출을 했고, 가는 길엔 여전히 아리송한 기분이었지만 돌아올 땐 웃음이 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참고로 목적지는 동네 도서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