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 토요일 / 날씨: 체감 온도 최상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갑자기 정전되었다.
음악을 틀어두고
밀린 설거지를
흥겹게 해치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 퍽 꺼지고
음악이 뚝 끊겼다
전등도
냉장고도
와이파이도
멈춰버렸다
야심 찬
저녁 계획이
무너졌다
읽고 쓸 것이
한가득이었는데
새삼스럽게 전기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깜깜한 방에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가보니
맞은편 아파트도
완전히 새까매졌고
작고 동그란 손전등 불빛만
이리저리 반짝거리고 있었다
옆집 이웃들도
다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문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근처가 다 정전인 것 같다는
대화 몇 마디를 나누었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고등학교 아침 자습 시간에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운동장에 우르르 몰려나왔던 순간이 떠올랐다
다들 영문을 몰라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다소 들뜬 듯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혼자였을 땐
당황스러웠던 패닉이
다른 얼굴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황당하고 재밌는 이벤트로 바뀌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 손전등에 의지해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정말로 의지한 건
옆집에 이 상황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즐거웠던
뜻밖의
금요일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