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기

영화 <허공에의 질주>

by 아트필러

*이 글에는 영화 <허공에의 질주>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

너무 오랫동안 누군가로 살다 보니 자신을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게 이름, 운전면허증 번호, 군번뿐인 아더의 모습이 서글펐다. 현재의 나는 텅 비어있어서 과거의 나 또는 미래의 나로서만 존재하는 기분. 대니의 정체불명의 몸짓에서는 어떻게든 지금을 되찾으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아더가 그토록 가족이 함께 있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도, 가족만이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애니, 대니, 해리는 가명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그의 진짜 삶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니는 성장하면서 삶에서 소중한 다른 것들이 많아진다. 야구, 피아노, 로나는 그에게 지금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언제나 가족이 함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점점 다른 순간들에 더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상기하게 된다. 결국 대니는 자신의 삶을 증명해 주는 존재들이 충돌하면서 갈등하게 된다.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그들의 도피 생활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음악이, 그 집이, 그 나무가, 그 해변이, 그 피아노가, 그 가족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삶의 매 순간은 마지막일 수도 있는 순간이다. 함께 있는 지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오히려 그 삶을 충만하게 채워낸다.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 그래서 진정한 순간을 사는 것이 진정한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우리도 그들만큼 절박하다면 그들만큼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절박함 보다는 안전함을 선택한다. 그래서 인생은 비슷한 순간들의 모음이 되고 결국 지루해져 버린다.


Running on empty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질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방향도 모르고 제대로 발을 디디지도 못한 채로. 공부, 대입, 스펙 쌓기, 취업, 결혼 등 마치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듯 살아간다.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여유롭게 사색하는 시간은 사치이며 삶의 공백기는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사실 발이 땅에 제대로 닿아야 제대로 뛸 수 있다. 허공 속에서는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다. 땅에 발을 단단히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 없이 속도를 내는데만 급급하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다. 아더가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진정한 가족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함께 사는 것만이 가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진정한 가족으로서 필요한 응원과 사랑을 빼앗아갔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념 아래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어떻게 해야 땅에서 질주할 수 있을까?


If you don't like it, why do you do it?
하기 싫은데 왜 하려는 거야?
Baseball is my life.
야구는 내 인생이니까.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컷, 네이버 영화


누군가 이걸 왜 이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좋아하니까", "잘하니까", "돈을 잘 버니까", "행복하니까"가 아니라, "그게 나의 인생이니까"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단단한 확신이 필요하다. 지금 이 삶이 나에게 유일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남들의 뻔한 이유들을 빌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감각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알고 있고 그걸 인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인생은 없다. 명예도 돈도 사랑도 행복도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가치 자체를 추구하면 괴로워진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치의 굴곡에 흔들리지 않고 그저 주어진 것을 묵묵히 해나갈 수 있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진정한 부모라면 이별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남이 온전히 그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별도 그들의 권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식에게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안전하게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자식이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모든 성장 영화는 이러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그려진다. 그리고 멋진 부모는 자식의 독립을 응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함께 한다. 그럼 자식은 불안함과 두려움이 아닌 믿음과 사랑을 추진력 삼아 달릴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지지하는 가족과 이별한 대니가 이제 삶에서 제대로 질주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common (23).jpeg 영화 <허공에의 질주> 스틸컷, 네이버 영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고 밤에 기숙사 2층 침대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어른이 된다는 것,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에 대한 흥분과 두려움, 벅참을 대니와 함께 느꼈다.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메인 테마 피아노곡을 한동안 듣고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허공에의 질주>는 리버 피닉스와 나의 청춘을 담고 있는 영화다. 나의 일부를 새겨둔 영화가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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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236.jpeg 애니메이션 <루카> 스틸컷, 네이버 영화

*시리즈온,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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