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편지
한산하고 조용한 분위기, 많지는 않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컬렉션의 조합이 좋았다. 마음이 지칠 때 조용히 그림을 보다 오고 싶은 곳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 관련 굿즈가 없어서 아쉬우면서도 기뻤다. 내가 그 작품의 숨은 매력을 알아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미술관에서 엽서를 고르는 기준은 유명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래 바라봤던 작품, 질감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아름답다. 특히 전시실 별로 다른 천장화가 매력적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달밤의 진정한 기쁨을 되찾아주는 그림들. 어느 부분이 특별히 좋았다기보다 의자에 앉아서 그 풍경을 계속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드뷔시의 달빛과 어울리는 몽글몽글한 분위기다.
초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손, 소매, 머릿결의 표현이 단순하고 즉흥적이면서도 인물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담함과 섬세함이 동시에 두드러지는 매력적인 그림이었다.
작은 방에 작은 크기로 걸려 있었던 그림.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회백색의 벽과 탁자, 어두운 채도의 옷과 대비되는 붉은색 표지의 책은 그 순간을 건조하고 밋밋하지 않고 빛나게 만들어준다. 그녀는 무엇을 읽고 있을까? 연애소설, 심리학 도서?
흥미로운 작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소리가 들리는 작품을 그리는 20세기의 화가. 시장 그림에서는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웅성거림이, 계곡과 바다 절벽 그림에서는 세찬 물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신화를 재현한 그림에도 '새로운 느낌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같은 주제의 다른 작품들이 모두 아류작으로 느껴질 만큼 색채와 윤곽, 질감이 남달랐다. 미술관에서 마주하면 압도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보자마자 그 풍경이 내 몸 앞에 다가왔고 오래 바라볼수록 감각이 더 섬세해졌다. 바람의 방향이 느껴지는 하늘 아래 이글거리는 태양과 대지에 서서 시원한 바람에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시고 한숨을 내뱉는다.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며 핑크 빛 산과 푸른색과 청록색이 섞인 물빛을 머금은 나무를 응시한다. 무엇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는 작품이다. 박노수의 <고사>와도 놀라울 만큼 비슷한 구도와 색감이다. 재료도, 표현 기법도 다르지만 통하는 이미지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키치인가? 심미안인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취향과 안목에 대한 의심 섞인 불안감. 유명한 프랑스 미술상을 그린 이 그림에서 그 묘한 기분이 와닿았다.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그걸 알아보는 재능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 세대를 건너 작품과 작가의 미래를 보는 능력은 예술가에게 필요하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고, 현재는 눈앞에 쉽게 보이니까. 그림 속 인물의 시선이 내가 작품을 감상할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미적 탐구, 의문, 경이, 감탄, 열등감, 질투, 기대, 발견의 즐거움, 흥분이 뒤섞여 있는 눈으로 조각상을 바라보는 남자를 나도 같은 눈으로 쳐다봤다.
살짝 긴장한 듯 뻗은 팔, 그러나 오랜 연습으로 익숙하게 자리 잡은 발끝까지 놓칠 부분이 없는 작품이다. 의도의 여부를 떠나 배 주변의 붉은색이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 예술적 격정, 긴장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무용수의 다음 동작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조각상.
역시 고흐는 실물 그림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 준 그림. 붓터치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법에 걸리는 기분이 든다. 단순한 물감 덩어리로부터 생동감이 느껴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모든 터치에 담긴 고흐의 확신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해져 온다.
바로 옆에 걸려있었던 유명한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보다 인상적이었던 작품. 여백의 미 또는 미완성작. 어느 쪽이든 매력적이다. 세잔 특유의 붓질과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풍경의 여백이 참 좋다. 다 채워졌다면 세잔의 많고 많은 풍경화들 중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보석으로 세공되기 전 원석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림.
죽을 때까지 예술가의 스튜디오에 미완성작으로 남아있던 드가의 작품. 완성보다 미완성, 완벽함보다 미흡함에서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예술에서는 완벽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꼭 완벽한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