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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성 Oct 02. 2021

작업실을 나서며

문을 여니 시원한 공기가 맞이한다. 춥고 어두웠던 겨울이 끝날 즈음 작업실에 들어왔는데 문 밖에 펼쳐진 계절 속에는 나뭇잎이 색을 바꾸고 있다. [그림 쓰기]는 원래 [노동자의 아들이 화가의 아들에게]라는 제목의 수필집으로 시작되었다. 거기서 나는 아들에서 아버지로 정체성이 이동하는 30대 남성의 묵은 이야기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을 아들로 살았으면서도 아직 아들을 잘 모르겠고, 아빠로서도 이제 겨우 열 살일 뿐이라서 긴 글을 써보겠다는 꿈은 버려야 했다. 대신 제목을 바꾸고 짧은 글을 습작처럼 써보았다. 회화의 큰 주제를 잡기 전 수십 장씩 그려대는 스케치처럼.


글을 쓰다가 기억이 났다. 나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며 두 개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한 길은 이론가, 다른 길은 화가였다. 그때 내가 그림을 그리기로 선택했던 한 가지 이유는, 이론가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단 화가가 이론에 능한 것이 더 멋있을 것 같아서였다. 제대 후 2학년에 복학하니 학교에서 인문학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선생님은 매주 새로운 복사 꾸러미를 전해주시며 엄청난 독서를 시키셨는데 스물세 살 복학생은 난생처음으로 공부의 재미를 맛보고 말았다. 그 후 열심히 미술 이론과를 기웃거리며 관심 있는 수업을 들었다. 전공필수과목이라 타과 학생이 들어갈 수 없는 경우 교수님을 따로 찾아가서 수강신청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론 공부에 대한 열심에 비해서 작품에는 열정을 쏟지 않았다. 스튜디오 교수님이 내 작업실에 오실 때마다 아직도 이거 하고 있냐며 혀를 차셨던 걸 생각하면 나는 이때부터 이미 헤매고 있었다. 책 먼지와 유화 기름 냄새 중 어느 것이 진짜 나의 것인 줄 모른 채 말이다.


글은 이미지와는 달리 한눈에 직관적으로 인식되지는 않지만 그 어떤 매체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보관해준다. 지난 시간 써둔 글들은 나와 함께 성장하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결한다. 30대의 시간 중 앞으로 잊지 않고 평생 꺼내보고 싶은 사건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홀로 숨을 거두신 방을 정리하러 간 일이다. 여러 의미에서 매우 고단했던 하루였지만 그 통증을 잊고 싶지 않다. 그래야 내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화가의 붓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도 나는 한 노동자의 아들임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작업실을 나서며 4년 전 썼던 글을 꺼내어 작업실 책상 위에 올려본다. 언제고 다시 돌아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볼 수 있도록.


한 달만에 다시 찾은 집은 제법 낯설어졌다.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집을 비운 기간이 길어서인가? 이른 밤 테겔 공항에 내려 집에 도착했을 때, 3년 전 독일에 처음 와서 가졌던 기분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실 줄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일찍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신 빈 방에 가족들과 들어가 짐을 치우는 내내 작년 마지막으로 뵌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계속 눈물이 나오려 했다. 아버지 집을 치우려 쓰레기봉투를 사고, 간식으로 곶감을 샀던 마트는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드시고 싶으셨던 스테이크는 안산 그 작은 동네에선 구할 수 없어 길에서 팔던 간장게장을 사드렸었는데, 밥 한 그릇을 다 드시던 모습도 아내와 함께 떠올렸다.

가족 모두에게 큰 짐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열악했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평안하게 돌아가신 것 같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던 방, 끼고 사셨던 술병도 하나 없이, 담배도 정갈하게 한 갑. 그리고 나머지는 옷가지들, 작은 밥상, 식기, 양념 등이었다. 동사무소의 복지과 직원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눈시울을 붉혔다. 울먹이던 목소리가 어떤 위로보다 고마웠다.  

한국에 돌아와 살 것을 생각하며 남겨 두었던 짐들을 정리해 독일로 부쳤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3년 전 유학을 위해 와서 가졌던 동일한 막연함이 있다. 시차 때문인지 새벽에 눈이 떠진다. 왼쪽 편두통도 함께 잠에서 깬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슬픔이나 그리움보다는 설명하기 힘든 막막함이 떠나질 않는다. 가장 간절했던 기도제목이 하나 사라져서인가?

아내 뱃속의 둘 째는 무사하다. 두 달만 더 기다렸으면 할아버지도 사진으로나마 손녀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낮잠 없이 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한 달 동안 밀린 일들을 하고, 시간이 나면 전화번호부도 정리하며. (2017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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