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성 Sep 08. 2021

의미로 먹고사는 동물

"근로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고 의미 있게 여긴다고 생각하면 조명이 달빛 정도로 희미해진다 해도 생산량이 늘어날 것" - Henri de Man, [Joy in Work] (1929) 


작업실이 생겼다. 그동안 부진했던 작품 제작의 핑곗거리가 없어지니 먼저는 낯설고 조금 겁도 난다. 이제는 내 실력과 노력에 달렸다는 생각에 부담도 크다. 조금 더 주절대자면, 지금 나의 상황 속에서 작업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고민하게 된다. 사실 이런 고민은 내가 보아도 과도하다. 화가한테 그림 그릴 공간이 생겼는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필요하단 말인가? 영화 [폴락]의 한 대사처럼 닥치고 그림이나 그리면 되는 일인데.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간단치 못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의미로 먹고사는 동물이니까.


아무리 좋은 조건과 환경 속에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이라 해도 의미가 없다면 금방 지루해진다. 의미를 찾지 못한 활동과 삶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넉넉하게 채워주어도 뒤돌아 서면 먹을 것을 찾는 성장기 남자아이와 같다. 그래서 기초 산업이 발달한 나라들에서 문화와 여가 산업도 비교적 안정적일 게다.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활동들을 꾸준히 찾아주는 관객과 대중 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먹고사는 문제 말고 자신의 삶을 더 고상하고 의미 있는 것처럼 보여줄 활동을 찾는다.


그래서 생애 처음 생긴 개인 작업실을 곱씹게 된다. 이것이 어쩌다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이 기쁨이 금방 식어질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때 있었던 한 사건이 생각났다. 편지함에 들어 있던 한 통의 편지 때문에 울음을 터뜨린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나의 부모님은 크게 다투신 후 별거 중이셨으며 나와 누나는 아버지와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나는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바로 가기 싫어 다니던 교회의 한쪽 구석에서 시간을 때우다 들어가곤 했다. 물론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결국 나 혼자였지만. 어쨌든 힘든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학교에 휴대전화 회사 노키아가 주최하는 미술대회 공지가 떴다. 나는 실기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서양화실 한쪽 구석에서 대회 준비를 했다. 그림 제목은 “I will“. 그 당시 어디든 도망치고 싶고, 그것을 위해서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렸다. 그런데 그 대회의 1차 심사에 통과하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단체전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1차 심사에 통과했다는 편지를 받은 18살의 나는 불 하나만 켜 놓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울었다. 그때 내 감정은 기쁨과 감사뿐이었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 마음에는 슬픔도 느껴진다.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없는 기쁨. 결국 내 생애 첫 전시회에는 가족들이 아무도 안 왔다.


작업실이 생겼다. 그동안 간절히 바라 왔던 일이라 너무 기뻤다. 게다가 이제는 나와 함께 기뻐해 줄 가족이 내 옆에 있다. 아들은 계약 전 공간을 보러 간 날 함께 가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저는 여기 이 구석을 쓸게요.” 아내도 놀리듯이 말한다. “이제 집에 올 생각하지 마. 거기서 먹고 자면서 그림 그릴 생각만 해라.” 나에게 작업실이 생긴 건 이런 의미다. 내 아이들의 아빠가 이제야 마음껏 그림을 늘어놓을 공간이 생긴 것. 내 아내가 그토록 바라던 남편의 작품 활동에 작은 빛이 비친 것. 그래서 해가 진 어둑한 시간에 작업실에 나왔다. 조용하고 넓은 방에 혼자 앉아 생각했다. 이제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이전 22화 시리야, 시리얼, 시리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