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베를린에 사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다. 거주 7년 차가 되는데도 여전히 이곳 사회에 자리잡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불만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실 이 나라가 그리 선진국인지, 베를린이란 도시가 그렇게까지 매력적인지 인정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가끔 한국에서의 삶을 생각해보면 나도 몇 가지는 여기 현지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는 불편함을 견디는 사회적인 분위기이다.
운전을 하다가 비보호 좌회전을 하게 될 때, 한국에서는 뒤에서 들리기 시작할 경적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여기에선 좌회전 방향지시등을 켜고 일단 서면 뒤에서 경적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물론 반대쪽 차선이 비어 있는데도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압박이 들어오지만, 그 외의 경우는 끝까지 기다리거나 알아서 피해 간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앞사람이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5분 이상 지체할 때가 있는데, 이때에도 뒤에서 구시렁거리거나 조급해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곳 생활 초기에 나는 그런 모습에 짜증이 나곤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휩쓸려 세월아 네월아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서비스 종사자들의 칼 같은 출퇴근과 공휴일에는 예외 없이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버리는 냉정함. 365일 24시간 편의점을 보유한 나라에서 살다 온 나 같은 사람은 공휴일을 앞두고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된통 당한다. 유치원에선 제아무리 학부모라도 선생님의 쉬는 시간 중에는 만날 수 없다. 경찰이나 소방관의 임무로 인해 도로를 임시로 막아버리는 경우는 일상이다. 이 때문에 버스가 노선을 바꿔도 승객들 중 욕을 하거나 흥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불편함을 견딜 수 있을까? 여러 경험을 반영하여 나름대로 내려본 대답은, 질서와 노동에 대한 존중과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리츠 칼튼 호텔의 설립자인 세자르 리츠 Cesar Ritz는 '손님/고객은 왕이다 der Kunde ist Koenig'라는 매력적인 관용구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 문구는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혁신적이지 리츠가 호텔을 설립할 당시에는 호텔의 주 고객이 실제로 귀족이나 왕족이었다. 다소 상이한 문맥에서 탄생된 이 관용구가 한국 서비스 업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2013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갑질'이란 단어는 결국 저 매력적인 문장이 낳은 돌연변이가 아니었을까. 손님과 고객을 존중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 존중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서비스 제공자에게만 편향되었을 때 따라오는 사회현상은 말 그대로 이상했다.
추측해보건대 행복과 만족감은 비례하지 않다. 내가 만족감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나와 사회 전체에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잠시 있을 불편함과 지연을 감수하면서라도 나에게 서비스를 베푸는 사람의 상황을 배려하고 참아내는 태도가 내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 만약 사회 전반에 불편과 지연을 용인하는 정서가 만연해진다면 앞 차가 조금 느리게 운전하는 것, 갑자기 버스가 길을 돌아가는 것, 내가 원하는 시간에 서비스와 상담을 받지 못하는 것 등은 더 이상 불편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런 정서는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질서와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노동력에 대한 객관적인 존중을 형성한다. 고객은 불편하지만 점원은 당당한 사회. 소비자는 불편하지만 노동자는 제 때 쉴 수 있는 사회. 그 안에서 나의 노동과 쉼도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으며 내가 상대방에게 끼친 의도적이지 않은 불편함도 용인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