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누가 제일 부러워요?"
지난달 9살이 된 큰 아이는 요즘 아빠의 '제일'이 궁금하다. 제일 무서운 것. 제일 좋았던 것. 내가 자기 나이었을 때 제일 소중했던 물건. 며칠 전에는 누가 제일 부러운지 물었다.
"아빠는, "
나는 직업을 물었을 때 단 하나의 직업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첫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 앞에 적어도 두 마디 이상의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직업적 현실에 지친다.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좀 나았다. 다들 그럭저럭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내게 직업을 물은 사람들의 표정 변화 속에서 '의아함'과 '호기심'이 보인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는데 아직도 두세 마디를 거들어야 겨우 나의 밥벌이가 무엇인지 설명이 되는 상황에 대한.
오늘날 미대를 졸업 후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 작가예요'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 중 일부 소수는 문자 그대로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는 작가일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다수는 다음의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아직 미술로 돈을 벌고 있지는 못하지만 다른 직업으로 돈을 벌고 작품 활동은 계속하고 있어요.' 이건 한국의 현실만은 아니다. 나는 독일 베를린의 한 대학에서 예술석사 학위를 마쳤다. 내가 졸업하던 학기에 졸업 프로젝트를 발표한 학생은 총 7명이었는데, 그중 나를 포함하여 3명의 학생이 예술가의 사회적 질문을 다루었다. 한 친구는 커피숍에서 하루 종일 일하느라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는 예술가의 하루를 소재로 삼았다. 다른 친구의 테마는 갤러리와 작가의 사회적 상관관계, 그리고 나의 테마는 예술 생산의 공간과 시간이었다. 당시 작업 공간은 기숙사의 작은 식탁이었다. 하지만 작업실이 있었다 한들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마트폰에 기록된 1년간의 일과는 식당 일, 공부, 교회, 식당 일, 가족, 공부의 반복이었다. 예술활동을 위한 시간은 그 사이에 겨우 끼어있었다.
역사 속에서 예술가들이 직업적 안정을 가졌던 시대와 사회는 언제였을까?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중세 유럽은 예술가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던 때일 수도 있다고. 모든 예술 작품과 활동이 교회와 신을 위해 존재했던 시기. 그리고 교회가 예술적 활동을 지원하며 예술가들이 가진 최첨단 기술과 재능을 뽐낼 수 있도록 했던 사회. 어쩌면 그때 형성된 예술문화의 구조 속에서 르네상스의 모판이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세의 좋은 면만 보았을 때 오늘날 문화산업의 구조는 그때만 못하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 안에서도 예술 자체만을 떼어놓고 보았을 때에는 여전히 봉건주의적이다. 중세시대와 달라진 것은,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제자로 두어 기술을 전수하고 개발시켰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개인의 바람과 의지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서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국가나 사회는 예술 전공 졸업생의 수를 감당할 수 있는 문화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에는 대중의 입장에 서보자. 그 안에도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상황이 있다. 예술은 여전히 고급문화라는 것.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경제적이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소수다. 발터 벤야민이 모스크바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나와 퇴근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던 광경이었다. 이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도처에 널린 21세기의 베를린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어느 사회나 소외와 배제는 피할 수 없다. 나의 불만은 문화예술계의 생태가 반영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배제와 소외를 없는 척하는, 혹은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문화예술계와 대중의 순진함이다.
"아빠는 요즘 한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부러워. 아빠한테 누가 무슨 일 하냐고 물으면 여러 마디로 설명해야 하는 게 조금 힘들거든. 이제 한 가지 일만 하고 싶어." 아들에게 내놓은 대답은 현실적이고 편의적이었지만 진실하지는 못했다. 나는 한 가지 일만 하고 싶지 않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싶을 뿐. 그저 여기에서도 실력이 없고 저기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내 모습이 싫은 것일 뿐. 그래서 두 개나 못하느니, 하나만 못하는 게 심적으로 더 편하다고 순진하게 생각한 것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