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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성 May 04. 2021

복지

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삶의 마지막 1년을 보내셨다. 아버지가 지내시던 마을의 관할 주민센터 복지과 직원은 아버지를 홀로 두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야 하는 나의 문의를 관료적으로 처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방법을 찾아본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고, 결국 아버지가 복지 혜택을 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가족들은 셋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신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드리지 못했다. 누나에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만삭인 아내와 5살 아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탔다. 장례식 둘째 날 도착해 겨우 상주의 자리를 지켰다. 장례를 마친 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셋방을 찾아갔다. 아버지의 방세를 정산하고 짐을 정돈한 후 남은 행정처리를 위해 주민센터의 복지과 직원을 찾아뵈었다. "며칠 전에도 뵈었는데..."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말 끝이 흐려지며 울컥하시던 모습이 주었던 위로는 말로 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받았던 진짜 복지은 매달 받으셨던 생활비나 식량보다도, 피 하나 섞이지 않은 사람의 부고를 듣고 울먹여줄 수 있는 이웃이 아니었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복지를 국가와 사회의 일로 여긴다. 시민/국민들의 세금으로 나라가 운영하는 사회적인 제도와 장치들이 복지의 실제이다. 그러나 정책으로 이뤄지는 복지는 이웃의 어려움에 반응할 일차적인 책임이 그 사람 바로 옆에 있는 나에게가 아니라 나와 그의 세금을 받아간 국가와 사회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은근한 회피를 정당하고 합법적이게 만든다. 결국 복지정책은 다른 의미의 지속적인 소외계층을 만들어낸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극빈층 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사각지대에 놓인 특정 직업군 혹은 개개인이다.


2011년 한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굶주림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 한국 내 예술인들의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과 노력들이 있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2019년 옥인 콜렉티브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두 작가, 진시우, 이정민 부부가 숨을 거두었다. 업계에서는 이름 한 번쯤 못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분들이다. 정책은 사회 내에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책이 실행되는 현장에서 그 노력은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한순간에 무력해진다. 


좋은 정책과 복지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사회 안의 모든 다양하고 세밀한 직업 하나하나를 번듯한 직업으로 생각하게 하는 사회적 정서를 만들어가는 일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실패와 무력감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는 진짜 복지사회는 자신이 잘 모르는 타인의 상황을 진지하고 다방면으로 생각해줄 수 있는 이웃이 많은 사회이다. 나와 아버지의 상황을 듣고 진지하고 다방면으로 고민해주어 불효자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마지막이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그 복지과 직원과 같은 이웃을, 지금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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