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Emily라는 이름 -1978년 3월-
비행기가 착륙하자, 몸이 들썩였다.
안내방송이 흐르고, 기내의 아기들이 하나둘 깨어 울기 시작했다.
혜순은 왔다갔다 바쁘게 아기들을 돌보는 아줌마들을 보며
주변의 아기들을 자꾸자꾸 토닥였다.
도착장은 시끌벅적했다.
지역 방송국 로고가 붙은 카메라가 보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환영합니다.’
이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신생아부터 세 살 정도로 보였다.
둘둘 감긴 이불에 싸여,
아무 말도 못 한 채 안겨 있거나,
기저귀 가방 위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가장 큰 아이는 혜순이었다.
리차드와 마가렛이 다가왔다.
리차드는 성경책을 든 손으로 혜순을 어깨로 껴안았고,
마가렛은 꽃다발을 들고 혜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mily! Thank you, Jesus! What a blessing!”
카메라맨이 연신 셔터를 눌렀다.
환한 조명. 사람들의 박수.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정미여야 하는 혜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깨를 감싼 리차드의 손이 무거웠고,
마가렛의 웃음은 너무 밝아서 더 눈부셨다.
그들 뒤로, 기독교 방송 로고가 박힌 마이크가 있었다.
리차드는 말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어요.
정말 특별한 순간입니다.
이 아이 정미는 저희가 바자회를 통해 후원했던 아인데,
직접 품에 안게 되다니… 하나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혜순은 들리지 않는 영어 속에서
‘정미’라는 이름만 알아들었다.
그 이름이
처음으로 들려온 순간이었다.
“Say thank you, 정미.”
마가렛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혜순은 눈을 내리깔았다.
말하지 않았다.
미국 미네소타의 작은 도시,
지역 교회 사람들은
그들을 ‘순종하는 주님의 가정’이라 불렀다.
리차드는 교회 행정을 맡고 있었고,
마가렛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빵집에서 일을했다.
쌍둥이 두 살배기 아들을 키우며
육아에 지쳐가던 이 부부는
1년 전 바자회에서 정미의 후원요청서를 발견했다.
‘이 아이를 후원해주세요.
이름: 김정미 7살
부모: 미상
특징: 7살이지만 고아원 동생들이 기저귀도 갈고
우유도 먹이는의젓한 여아’.
처음에는 한달간 소정의 후원금을 후원아동에게 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 들어온 기부물품중 여자애가 좋아할법한 인형이 있어 정미에게 보냈다.
그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심깊은 부부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밤마다 번갈아 울어대는 쌍동이 아들을 보며 그들은 동생들을 잘 돌보는 정미를 떠올렸다.
자신들의 선택이 주님의 부름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기부물품이었던 그 인형을 안고 도착한 아이는 생각보다 작고 말이 없고 침울했다.
웃지도 않았다.
사진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잘못 온 아이처럼,,,
차에 오를 때, 혜순은 작게 중얼거렸다.
“나 정미 아닌데…”
그 말은 자동차의 시동 소리에 묻혔다.
쌍둥이의 울음소리가 진동처럼 울렸고,
리차드는 룸미러를 조정하며 말했다.
“우리 집은 이제 아이가 셋이네.
Praise the Lord.”
마가렛은 뒤돌아보며 웃었다.
“Emily, 아 네 이름은 정미 아니고 Emily야.
여기 동생들은 네가 아주 잘 돌봐줘야 해.
엄마가 많이 바쁘거든.”
에밀리라 불리는 정미 아니 혜순은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가슴에 인형을 끌어안고 있다.
그 인형은 자기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뭐라도 필요했다..
에밀리라는 이름도,
이 집도, 이 가족도,
아무것도… 진짜는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박수를 쳤고,
모두가 축복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잃은 소녀는,
이제 ‘에밀리 정미 스윗’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