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를 떠나는 날
8월 말의 미네소타는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공기 속엔 가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들판의 색도, 바람결도, 어딘가 서늘한 기척을 품고 있었다.
에밀리는 그토록 기다려온 계절을 마주하고 있었다.
새로운 출발, 자신만의 시간, 정미가 아닌 에밀리로 사는 첫 가을.
12살이 된 쌍둥이 중 네이선은 아침부터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누나라기보다 엄마 같은 존재였던 그녀.
학교 숙제도, 옷 정리도, 밤마다 두려워하던 악몽도, 에밀리가 곁에 있어야 사라졌던 것들이다.
에밀리는 마지막 짐가방의 지퍼를 닫고, 흙 묻은 운동화를 탁탁 털었다.
그 순간, 현관문이 삐걱 열렸다.
마가렛은 밀가루가 묻은 앞치마를 입은 채, 말없이 문턱에 섰다.
“요리하는 걸 좀 더 배워둘걸 그랬다.”
마가렛의 말투는 건조했다. 마치 ‘잘 가’라는 인사를 대신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은 듯했다.
에밀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배웠어요. 충분히.”
정말 그랬다. 새벽부터 빵 반죽을 하며 손끝이 갈라지는 것도,
울며 보채는 쌍둥이를 재우는 것도, 찬물로 청소하며 손발이 얼어붙던 날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냈다고 생각했다.
양부 리처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새벽부터 교회에 갔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 한마디 없이.
네이선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누나, 안 가면 안 돼? 누나 없으면... 나 수학 숙제 누가 봐줘?”
에밀리는 눈가를 손으로 살짝 훑었다.
“직접 해야지. 할 수 있어.”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너희 둘 덕분에 여기서 견딜 수 있었어.
“잘 지내.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쌍둥이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가렛은 문득 참지 못하고 말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먼 곳까지... 무슨 돈으로 학교를 다니겠다고?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해도 생활비는 어쩔 건데?
우리도 네이선이랑 조슈아 키우기 빠듯한 거 알지 않니?”
에밀리는 가방에서 종이파일을 꺼냈다.
린던 선생님이 써준 장학금 추천서와 UC Berkeley 풀라이드 장학금 수여 확정서.
그녀는 그것을 천천히 펼쳐 보여주었다. 마가렛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한숨만 쉬었다.
“다 컸다고 멀리 떠나서 니 맘대로 살고 싶겠지.
마지막은 우리 나쁘게 헤어지지 말자.
너도 서운한게 있었겠지만.... 우리도 너 키우느라고 힘들었어.”
그 말은 처음 듣는, 마가렛식의 사과였다.
에밀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엄마, 아무튼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어릴 적, 마가렛이 쌍둥이를 안아 웃던 장면을 멀리서만 바라보며 에밀리는 자신도 한 번쯤 안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10년을 함께 살면서, 품에 안긴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마가렛이 다가와, 잠시 머뭇거리다 말없이 그녀를 안았다.
둘의 포옹은 어색했지만, 그 안에는 서로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조용히 묻어 있었다.
서러움도, 애정도, 조금은 녹아들었다.
버스가 도착했다.
에밀리는 가방을 짊어지고 캐리어를 끌며, 계단에 한 발을 올렸다.
그 순간, 마가렛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강해라. 그래도... 가끔은 소식 좀 주고.”
에밀리는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집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안녕, 미네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