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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을 따라가다.

에너지와 파장이 본질인 세계

by 손큐

그림은 보는 게 아니라.

읽어 내리는 것이다

해독에 가깝다.

그래서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해 사람들이 열광하거나 공부하거나 헤어 나오지 못하는 유희의 세계이다.


오늘 문득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본질은 느리게 다가갈 때 빛날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커피. 빠름. 퀵. 배달. 편의점. 또 서두름 등에서 멀어질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들이 내 것이 될 것이다


Marrow of Silence ― 차가 식을 때, 문장이 익는다
굳은살이 베이는 감각.
아프지만, 그 안에 생이 있다.
본질에 다가가려면 때로는 베여야 한다.

나는 본질을 좋아한다.
겉이 아닌 속, 화려함보다 단단한 골수 같은 곳.
꿰뚫고, 다가가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에게 닿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말했다.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나는 인생의 골수를 빨아먹듯, 깊이 있게 살고 싶다.

‘Marrow’라는 말에는 살의 중심, 삶의 진심이 들어 있다.
예술도 그렇다.
기교가 아니라, 진정성이 골수다.
모든 장식을 벗겨낼 때 비로소 진짜가 드러난다.

차를 마실 때면 마음이 천천히 식는다.
세상은 늘 ‘빨리’를 외치지만,
나는 그 속도에서 피로를 느낀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문장도 천천히 익어야 제맛이 난다.
급하게 끓인 문장은 늘 밋밋하다.
시간의 향을 머금은 문장만이 마음에 남는다.

“Where there’s tea, there’s hope.”
차가 있는 곳엔 희망이 있다.
이 단순한 문장이 오래 남는 이유는,
희망이 언제나 느림 속에서 우러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면,
내 안의 잡음이 잦아들고 의미만 남는다.
생각을 끓이고 걸러내는 시간.
한 모금의 차가 식어갈 때, 문장은 익어간다.

그림을 읽을 때도 같다.
색과 선 사이의 침묵을 듣고,
미세한 떨림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힌다.

차 한 잔의 온도,
문장 하나의 호흡,
선 하나의 떨림.

이 모든 것은 느림 속에서 살아난다.
삶의 골수는 늘 조용한 곳에 있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자리.

차가 식어가는 동안,
문장이 익어간다.

오늘도 나의 그림감상의 본질은

밝음으로 다가가고

기세에서 꺾이지 않음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Marrow #느림의 미학 #차 한잔의 시간 #글쓰기 #그림 읽기 #예술의 골수 #손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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