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의 언덕
예술 앞에서 사색하는, 고요의 미학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를 따라가면
산자락에 조용히 기대 선 모란미술관이 있다.
1990년 4월 28일,
‘21세기를 향한 조각의 새 표현전’으로 문을 열며
한국 최초의 현대조각 전문 사립미술관으로 기록된 곳.
돌과 금속, 나무가 한데 놓인
8,600평 규모의 야외조각공원.
자연과 조각이 부딪히지 않고, 서로를 품는다.
그 균형감 속에서 문득, 겸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ㅡ 조각의 시간은 느리다ㅡ
이곳의 작품들은 세월을 머금은 돌 같다.
1992년부터 이어진 국제조각심포지엄의 흔적,
그때 세워진 작품들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작품은 여전히 서 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고요의 힘을 배운다.
미술관은 처음엔 조각 전문관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회화·사진·설치 등
동시대 미술로 영역을 확장해왔다.
그 변화마저도 조용하고 단단하다.
ㅡ예술의 겸허함ㅡ
실내 전시실로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작품 하나하나가 각자의 호흡으로 벽을 채운다.
완성보다 더 큰 것은 멈춤,
그 멈춤 속의 여백이다.
나는 작품 앞에서 자주 멈춘다.
설명보다 침묵이,
자세보다 시선이,
감탄보다 겸허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ㅡ모란이 가르쳐준 고요ㅡ
돌아 나오는 길,
햇살이 조각 위를 흘러내리고
그림자는 내 발밑에 길게 눕는다.
모란미술관이 내게 남긴 건
작품의 기억이 아니라 태도의 기억이다.
화려함보다 절제,
속도보다 여백,
말보다 고요.
봄날의 모란은 피고 지지만,
이 언덕의 조각은 사계절 내내 피어난다.
말없이, 그러나 한결같이.
나는 그 앞에서 오늘도 배운다.
겸허하게 서 있는 예술의 자세를.
고요 속에서 들리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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