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하게 고요하게! 9탄
그래서 더 맛있는?
그 어딘가 사이에서.
그림도 문학도 어정쩡한 나자신이만
그사이 어디가에서 호작질하면서
재미를 따라가다.
나는 미술인도 아니고 문학인은 더더욱 아니고 그냥 자유롭고 창의적인 영혼이 되고싶은 그저 대충살기도 좋아하는 성인ADHD증후군도 약간있는 청소와 운동을 싫어하는 머리와 입만 살아있는 생명체인데.....이 저질체력의 생명체를 그대로 워드치고 심장뛰게 만들어주는 것은, 우연히 만나는 세렌디피티같은 사건과 사람과 좋은 인연들과의 조우 때문이다.
구리의 아치울은 1980년대, 서울 변두리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시대의 상처를 예술로 치유하려는 영혼들이 모여 살았다.
하인두, 구본창, 이두식, 김점선, 그리고 역사학자 이이화까지 —
그들은 예술과 삶이 맞닿은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를 북돋았다.
89년에 59세의 나이로 작고한 추상미술1세대 작가 하인두의 작품이 문학과 닮아있어 좋았다.
하인두는 푸른 산과 안개가 겹치는 아치울을 ‘빛의 회오리’라 불렀다.
그의 붓끝에는 늘 하늘의 순환, 빛의 귀의(歸依)가 머물러 있었다.
그가 그린 〈혼불 ― 빛의 회오리〉(1988)는 천상병의 시와 같은 리듬으로 돌아가는 생의 불꽃이었다.
류민자 화백의 회상처럼 “하인두의 그림은 기도 같았다.”
그의 예술은 언어보다 느리고, 빛보다 깊은 기도였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예술의 궁극을 응시한 존재의 회화였다.
천상병은 하인두와 오랜 벗이었다.
그의 시에는 하인두의 그림처럼, 생의 고통을 초월한 맑은 자유가 있었다.
“나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 이 세상 모든 굴레를 벗고.” — 시 「새」
그의 언어는 세속의 굴레를 벗어나 하늘을 향한 순수한 염원으로 가득했다.
또한 시 「귀천(歸天)」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하인두는 그 구절을 좋아했다.
그의 회화 속 ‘빛의 귀의’는 천상병의 ‘하늘로의 귀천’과 같은 세계였다.
두 사람의 예술은 매개가 달랐지만, 지향은 같았다 —
삶과 죽음이 맞닿은 자리, 그곳에서 빛은 다시 태어났다.
박완서는 아치울의 또 다른 이웃이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마을”이라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 속에는 하인두와 천상병의 예술이 스며 있었다.
박완서는 그들의 존재를 바라보며 예술이란 결국 삶의 다른 이름임을 이해했다.
그녀는 아치울의 겨울을 ‘조용한 사랑의 시간’이라 썼다.
그 사랑의 풍경 속에서 하인두의 불빛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촛불 같았다.
예술은 그들의 일상이었고, 일상은 곧 예술이었다.
하인두는 그 새를 색으로 그렸고,
박완서는 그 새를 문장으로 불렀다.
천상병은 그 새의 노래를 시로 남겼다.
그들의 바람은 아치울의 바람이 되어,
오늘 우리의 예술로 다시 불고 있다.
오늘은 "겸손과 겸허와 고요"를 발견하는 그림과 글 이야기를 하고싶다.
귀천(歸天), 생애 감수성, 빛, 순환, 쉼, 귀의와 같은 키워드들은 나 자신을 고요하게 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열정이 있어버리면 어디서건 치일 수도 있고 질투받거나 외면당하거나 은따~당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쩔수없어서 게의치 말고 그냥 남에게 해가 되지 않게 조심하면서 겸허하게 살아가야한다.
나는 예술가들의 공통 정서를 좋아했다.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예술혼 / 현실을 초월한 생의 미학 "아치울이 가난한 동네는 아니지만, 아늑하게 시끄럽지 않아 좋았던 고요한 곳이라고 한다. 예술과 삶이 교차한 구리의 ‘정신적 원향(原鄕)’
하인두의 회화는 천상병의 시와, 박완서의 문장과 함께 ‘삶과 예술의 순환’을 증명하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