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소식을 들은 지 7개월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집에 한 번 놀러 오란 이야기였다. 우리가 다녀간 이후로도 별말 없이 여전히 시누이는 만삭이 되어서도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임산부들에 비해 입덧도 없었고 배도 크게 나오지 않아 생각보다 임신기간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시누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일찍 독립한 터라 자립심이 매우 강했다. 쉬지 않고 일해왔고 그런 탓에 쉬는 게 어려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느껴지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안해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속 깊고 배려심 많은 매부가 옆에 있어서 다소 큰 일이언정 어려움도 조용히 해결해 왔던지 출산을 앞두고서야 부모님을 통해 연락을 듣게 되었다. 출산예정일에 다 돼서 연락을 해봐야겠단 생각이었으나, 한 발 늦었다.
시누이 임신기간 동안 나는 경험자가 아니었기에 예비아빠인 매부보다도 임신과 출산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고 사실은 관심이 없었다. 아기에 대한 궁금증은 늘 가지고 있었고 귀여워하지만 한편으로 울음소리와 짜증의 표현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시도 때도 없이 안 아픈 곳이 없는 내 증세를 아기가 쏙 빼닮을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웠다.
나는 나부터 챙기기 급급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나는 아기를 가질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게 확실했다. 산전검사 때 느꼈던 고통과 생겼던 트라우마가 시간이 지날수록 아물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벌써 검사한 지 1년이 넘었고, 다 잘 될 거라고 다독이고 해결될 거라며 방치했던 걱정스러운 순간들이 다시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검사를 무서워하면, 아무래도 많이 힘들 텐데...
그랬다. 몸에는 크게 이상이 없었지만 약만큼이나 병원을 싫어했던 성격인지라 산부인과 검사는 몸 안의 상태를 신경 쓰지 않는 내게 혹독한 직시의 현장이었기에 더욱이 무섭고 살 떨리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그걸 알고 난 이후로 혼자 나는 결정했다. 아무래도 내게 아기 천사는 오기 힘들겠다...
인별, 맘카페 등 불임이었으나 기적적으로 혹은 치료를 통해 아기를 가졌고 잘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하게 육아생활 중인 엄마들의 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속 쓰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얻기까지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기에... 그들처럼 나도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더 머뭇거리게 됐다.
아기가 태어났다
자연분만을 원했던 시누이가 진통이 와서 12시간 동안 견뎌보다가 분만촉진제를 맞고도 어려워 결국 제왕절개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빠른 회복을 위해 선택했던 자연분만이었으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연분만... 자연분만에 대한 아쉬움보다 제왕절개를 권유했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게 아닐까?
초음파 속에서 처음 만났던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사진 속에서 보여줬던 얼굴 일부처럼 얼굴 선이 뚜렷했고, 깨끗한 편이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됐지만 눈을 떴고, 소리도 낸다고 한다. 마땅히 축하할 일이고, 기뻐할 일이며, 기대되는 일이다. 앞으로 이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같이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함.
가장 가까운 주변에서 생각이 변하는 과정이 있다고 한다. 아기를 안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시기심이나 질투심으로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하게 되고, 노력하게 되며, 결국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
참 이상하게도 내겐 그런 생각이 없다. 주변 어른들은 간혹 볼 때마다 아기 소식을 물어보곤 한다. 그게 안부인사와 동일하다고 여겨하시는 말씀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속으로 그런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말을 꺼냈을 거라고...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속이 쓰리고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아기는 싫어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힘없고 능력 없고 의지할 때가 없는 노후에 접어들게 되면 그땐 자식 하나 있으면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기야 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남편은 나와 같은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또 다른 행복
두 명이 아닌 세 명일 때 느낄 수 있는 그 행복에 대해서 말이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즐길 수 있는 행복. 그 이상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결혼을 할 때 무조건 아이에 대한 생각을 같이 했어야 했구나.'
결혼=임신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면 자연히 임신도,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우리는 결혼 전에도 우리만의 가족에 대한 생각을 나누지 않았었다. 왜 사람들이 결혼을 기피했는지... 임신이 어려웠는지...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는 중이다.
나보다 조금 늦게 결혼했지만 일반적인 부부들의 절차에 따른 시기 안에 시누이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병원에서는 노산으로 불리는 나이에 임신하고 출산해 낸 그녀가 경이로워 보일 뿐이었다. 산부인과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엄마는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임신유무를 떠나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짠해졌다.
작은 것조차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시부모님께 축하 인사를 드렸다. 우리가 일찍 아기를 가졌더라면... 조금 먼저 드릴 수 있었을 축하인사였겠지만, 그나마 시누이가 효녀답게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듣게 해 드렸다. 내가 못 가지게 될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이 있었으나 조금은 덜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내 걱정과 불안감은 엄습해 왔다. 시누이가 출산한 사실은 진실이었고 이내 시댁식구의 친인척들이 알아갈 게 뻔하니까 말이다. 겨우 한 겹짜리 강철로 덮여있는 유리 멘털이라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기쁜 일도 안 좋은 일도 모두 엄마한테 얘기해야 해~
이번에 시누이 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셨다. 별의미 없는 말이셨을 수도 있겠으나... 심도 10000m에 묻어뒀다 생각했던 불안감이 그 한마디에 지진이 일어난 마냥 흔들리고 멘털이 부서졌으니 말이다. 괜한 부담감을 주지 않으시려는 시부모님의 배려를 모를 일 없었다. 그래서 더욱이 마음이 무겁고 뵙을 때마다 그 점으로 힘들었다.
병원에서 노산을 부르는 나이에도 결혼 1년 차에 아기를 가졌고 출산한 딸의 모습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에서 아무래도 친손주의 소식도 듣고 싶으실 테다. 티는 크게 내지 않으셨지만 무언의 침묵과 눈빛, 공기에서부터 전해진다.
시누이의 출산으로 인해 남편조차 조카의 탄생을 반가워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그래서 마냥 온 힘을 다해 기뻐할 수가 없었다. 마치 학급 내에서 만년 2등으로 인정받다가, 5등 하던 친구가 갑자기 1등이 되어 버리면 느끼게 되는 감정과 동일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이대로 딩크족에 대한 생각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비를 맞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부터 챙기기 급급한 사람이 아니다. 나부터 챙겨야 하는 사람... 나를 위해 제대로 시간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 그래서 뭘 좋아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기를 원하고 갖겠다는 건 오히려 돌에 계란을 치듯이 막무가내의 시도가 아닌가 싶었다. 아기는 소중하다. 한 생명이 몸 안에서 생기고 자라고 인간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과정은 단 한순간도 헛됨이 없다. 단, 무지로 인한 사소한 실수와 장난이 연속으로 이뤄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결혼이라는 절차를 밟는다 해서 무조건 한 가정의 자손을 번영할 의무가 주어진다면 그건 너무나 가혹하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스스로의 몸도 마음도 돌볼 수 있고 건강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현재가 아닌 미래까지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결혼과 임신. 학력과 취업, 공교육과 사교육, 퇴사와 이직. 월세와 매매, 사업과 대출.
이외에도 우리는 무수히 타인의 시선에 갇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무엇이 스스로를 갉아먹게 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고 잠시 스스로를 위해주는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내 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