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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Oct 19. 2021

남편의 판도라상자를 열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부산에서 짐이 잔뜩 왔다.

시댁에서 이사를 가시면서 아직 그 집에 있던

남편의 옛날 물건과 옷들을 보내신 것.

큰 캐리어 두 개 가득, 상자 세 개, 그리고 컴퓨터.

많이도 왔다. 밖에서 아버지를 도와 일을 돕느라

정신이 없는 남편에게 물었다.

"짐들 어떡할까? 내가 뭘 몰라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랬더니 할 수 있는 건만 해달라고 한다.


가장 먼저 캐리어 두 개를 풀었더니

옷가지와 잡화들이 나왔다.

옷방으로 가져다 놓고 잡화들은 어울릴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다음으로 뚜껑 닫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엔 많은 사진과 편지, 각종 상들_증명서, 임명장, 메달 등, 그리고 카드와 통장 등이 있었다. 우선 사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소 통통하고 귀여웠던 그의 유년 시절과 또 (지금에 비하면) 깡 말랐던 대학 시절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행지에서 사고 모았을 엽서들도 보았다.

그가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핀란드와

이탈리아, 스웨덴 등 여행지 모습이 담긴 엽서들.


어린날에 우린 그가 핀란드를 가서 장거리연애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헤어졌다. 과거의 나는 헤어지면 칼같이 자르고 뒤돌아보지 않았던 터라 그때도 며칠을 오롯이 아파하곤 미련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상대는 다를 줄 알았다. 마지막에 이별을 고한 건 그였기에 분명 나를 놓친 걸 후회하고 머지않아 "잘 지내?"라는 이불 퀵할 문자를 보낼 거라 예상했다. 이런 나의 기대는 철저히 빗나가고야 말았다. 연락도 없고, 가끔 들어가 보는 그의 프로필 사진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인스타그램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타고, 발트3국 여행까지 갔더라. 아우 얄미워라.


6년이 흘러 재회하고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나와 헤어지고 꽤 많이 힘들었단다. 우울증까지 와서 당시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친구들은 그의 우울증이 전여친(그러니까 나)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극복하고자 떠난 게 발트3국 여행이었다고. 나도 아주 못 느낀 건 아니었다. 이별한 지 꽤 지난 어느 날에, 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익숙한 아이디의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렀다. 바로 그였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뒤 내가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서도, 그가 좋아요를 눌렀다. 물론 다 실수였을 테지만 그때 나는 전여친이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호기심에 따른 거거나, 아니면 이별할 때 바라던 그의 후폭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잠시 젖었던 추억여행에서 빠져나와 편지를 정리했다. 군대시절부터 그의 동아리 회장 시절, 취업준비 시기에 이르기까지 지인들이 써준 각종 편지들. 그러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백색 무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뭐지? 하고 열었는데 똑같은 방식으로 접은 편지들이 열 장 정도 들어있었다. 가장 먼저 열어본 편지에서는 캘리그라피로 적은 도종환 시인의 시가 적혀있었다. 순간 내가 적어준 거였나? 했다. 연애할 당시에 캘리그라피 연습을 많이 해서 그에게 몇 번 적어준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 필체가 아니다. 다른 편지들도 읽어보기 시작했다.


찢은 그리드 노트    장마다 빼곡히 적은 편지들은 모두 한사람이  편지였다. 그리고 도입부에서 예감이 왔다. 바로 전여자친구가 썼구나.


편지들.


아무튼, 편지를 통해 남편의 과거 매력은 '똑똑함', 그리고 당시에 취업준비로 꽤 많이 힘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 읽고 편지지함을 정리한 후 밖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남자는 마냥 해맑다. 툭, 한마디 했다.

"나 정리 다했어."

"진짜? 고생했어. 뭐가 있디?"

"옷이랑 이것저것.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지."

그랬더니 웃음과 당황이 뒤섞인 표정으로 "어...?"

하는 그. 남편과 나를 멀뚱히 바라보던 백구 우주에게 말했다. "우주야, 아빠 물어!"ㅋㅋㅋㅋㅋ


그리고 읍내로 나가는 차 안에서 이야긴 이어졌다.

"근데 진짜 있는 줄 몰랐어. 보관한 게 아니라 처박아 두고서 잊고 정리를 못했던 거야."

하며 슬쩍 나의 눈치를 보는 그에게 말했다.

예전에 연애할 때였으면 이런 흔적이 기분이 나쁘고 질투가 느껴졌을 수 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너의 과거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게 오히려 재밌다고.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뭐 어때? 그래 봤자 어차피 지금은 내건데ㅋㅋㅋ"


가족이 되었더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걸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지난 금요일 밤늦게 버스 타고 가겠다는 딸이 걱정되고 안쓰러웠던 엄마는 함양까지 차로 태워주셨다. 함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만 왜 과거에 내 모든 연애를 반대했어요?"

많이 연애해보고 놀아봤더니 다 부질없더라가 아닌 외할머니 말하길 엄마는 학교선배, 동기, 주변 남자들의 숱한 고백에도 매몰차게 거절하고 연애 한 번 안 하다가, 결국 대학 졸업 후 선 보고 한 달 만에 아빠랑 결혼했다. 그랬으면 딸에게 엄마는 연애 많이 못해보고 남자를 안 겪어봐서 이런(?)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했으니 너는 될 수 있는 한 많이 경험해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같은 생각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맛을 봐야 아는 거냐며, 굳이 안 겪어도 될 일은 겪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서 나는 반대 의견을 말했다. "엄마 나는요, 이성친구일 때와 남자친구일 때 알 수 있는 이 사람의 깊은 내면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니 가능한 한 많이 만나보고 다양한 사람과 연애해야 남자 보는 눈도 길러지고 결국엔 나와 가장 잘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덧붙여서, "그리고 전에 만난 남자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고요. 반대로 저는 남편의 전여자친구들이 고마워요. 지금 이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서"라고 했다.


그는 전여자친구를 만나며 나를 생각하곤 했다고 했다. 시어머니도 이미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그에게 "난 아라가 참 좋았어." 하셨었다고..^^ 역시 어머니는 내편. 그러면서 재회의 이유엔 나만한 사람이 없구나 깨달았던 게 컸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우린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결혼했지만 살아보니 남편은 더 괜찮은 사람이다.


아무튼, 주말에 발견한 판도라의 상자 덕분에 추억여행도 하고 우리는 서로를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 왈, "다음은 너 판도라의 상자 열 차례다" 대구 가자마자 얼른 찾아서 버려야겠다 ^_^


그리고 같이 보내는 주말 마지막 밤, 갯마을 차차차 마지막 회 보고 둘 다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고 폭풍 대리설렘을 느꼈다. "나도 다시 저런 설렘을 느낄 수 있을까?" 했더니 남편이 "지금~~~~"하면서 백허그를 시전 했다ㅋㅋㅋㅋㅋ아직은 스킨십에 "왜 이래 징그럽게" 하며 밀어내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같이 재미나게 늙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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