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괜찮다. 아니, 그래서 소중하다.

by 오연

K키 큰 여자이다. 작은 두상, 귀여운 얼굴형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녀는 예쁘다. 얼굴만큼 마음도 고와서, 별일 아닌 일에도 그 큰 눈을 끔뻑이자주 놀랜 표정을 짓곤 하였는데,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얇고 긴 목을 가진 아름다운 K안어울리게도 거북목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유별나게 큰 자신의 키가 싫었다 했다. 남들과 비슷하기를 바랐던 그녀는 목을 길게 앞으로 빼는 버릇이 생겼다. 목을 빼면 어깨가 자연구부정하게 된다. 이 자세는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평균’의 키로 자신이 맞춰진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또래집단에 예민한 사춘기여서 으레 그럴 수 있는 일로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K의 이야기는 내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저녁 어스름한 시각, 돌아오는 길에 큰 빌딩들 사이로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같은 옷, 같은 머리의 비슷한 사람들이 우수수 몰려온다. 이방인처럼 우두커니 잠시 서 있었다. 잰걸음으로 스치듯이 지나쳐가는 사람들 틈에서 과거 그들과 같았던 헤어스타일, 그들과 같았던 정장을 입고 면접장에 들어서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두가 달랐지만 주어진 ‘틀’은 하나였고, 그 안에 모두 끼어 맞춰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는 거북목이 되어야 했고, 어떤 이는 더 말라야 했고, 어떤 이는 얼굴을 고쳐야 했을 것이다. 비단 육체적인 경우에만 한할까? 정신을 획일화시키는 것은 더 무시무시하다. 어린아이의 집단에서부터 어른의 집단에까지 강요되는 획일적 문화라는 ‘틀’이 느껴지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던 불편함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교복

집단 문화, 군대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획일성을 이유로 다양성을 억누르는 폭력정당화한다. 현대미술가들은 획일성의 폭력을 비평한다. 서도호의 작품에는 다양한 표정이나 얼굴이 아닌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세로 서있는 무리로 고등학생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모린코너의 작품이다.

당신보다 더 마른

미디어의 영향으로 '미'의 기준도 획일화되었다. 모린 코너는 당신이 아무리 살을 빼봤자 이보다 더 마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리아 아브라모비치는 마주 앉은 이들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않아 눈빛만을 주고받는다.

나이, 성, 인종, 장애는 상관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저 바라본다.

마주앉았던 퍼포먼스 참여자들의 반응들


우리의 존재는 모두 특별하다.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하며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