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따뜻하고 강인한 위로
정확하게 언제부터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과 함께 반려 동물로 사랑받는 대표적인 동물인 고양이와 강아지는 늘 좋아했지만 반려 생물체로 집안에 어항을 들이고 거북이나 물고기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 이후로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나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어린 시절 집에는 어항이 있었고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흔하디 흔한 주황빛 물고기와 거북이 몇마리가 기억이 난다. 입을 꿈뻑거리면서 먹이를 먹고 물 속을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었다.
부모님이 물을 갈아주고 어항을 청소해주는 정성을 들였지만 더 이상 물 속을 헤엄치지 못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주황빛 물고기를 마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것 같다. 죽어버린 주황색 물고기를 걷어 내고 깨끗해진 어항에는 또 다른 주황빛 물고기들로 채워졌지만 아침에 잠에서 깨거나 밖에 나갔다가 어항으로 달려가면서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눈 앞에 펼쳐지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고기라는 존재를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올해초부터였던 것 같다. 절대롤 눈을 감지 않는 존재 물고기. 이 하나에 꽂혀서 물고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게는 물고기라는 존재가 내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 각자 품고 있는 무의식 내면의 강한 힘으로 다가왔다.
절에 매달려 있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목탁 역시 물고기의 형태에서 기인하여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살아 있는 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불교에서 연못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은 예외로 취급된다고 한다.
절대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
불교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절에는 물고기가 허공 중에도 있다. 추녀 끝에 매달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청아한 금속성 소리를 내는 풍경(風磬)의 물고기 장식이 바로 그것이다. 오직 소리가 나게 할 목적이라면 물고기 형태가 아닌 다른 것을 매달아도 될 터이나, 특별히 물고기 모양을 사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일체의 구속과 거리낌을 여읜 바람 속에 흔들리는 물고기가 만들어 내는 청아한 맑은 풍경소리는 범천의 소리처럼 들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불교에서의 물고기 의미를 알고 나니 물고기라는 존재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물 흐르듯 살아가는 물고기. 연못이나 어향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충분한 공간이 되어줄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공간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물결이 이끄는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음은 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존재에 나만의 위로를 보내본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지만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리 저리 흔들리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체 살아갈 때가 많다. 그런 인생의 여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세상사에 눈을 감지 않는, 진정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무언가의 존재를 물고기를 통해 인정하고 인식하게 되었다.
절대로 눈을 감지 않으며 심지어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의 존재처럼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절대로 흔들리고 싶지 않고 버리고 싶지 않은,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순수하고 따뜻하지만 강인한 나.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무의식 속에 자리잡아 나를 지켜주고 있는 존재.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나의 생각을 말하다 보면 내가 담고 싶은 메세지는 보다 진해지며 그런 과정 속에서 더 깊숙하게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내가 좋아진다. 그림을 그리는 내가 사랑스럽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온전한 나를 만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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