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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터치 우주 Sep 12. 2020

어린 시절의 기억

카카오 프로젝트 100 다섯번째 질문

어떤 말을 해야할지 바로 떠오르는 질문은 아닌데요, 글쓰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는 이왕이면 행복한 추억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저런 생각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의식의 흐름대로^_^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놀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학교가 끝난 방과 후였는데,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모든 아이들이 걸어서 다니던, 그런 동네였어요. 아파트는 없었고 대부분 친구들의 집은 단독주택이였던 시절이고 동네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아니면 단지 없이, 독립된 연립 주택이나 빌라에 살던 친구들도 있었을것 같고요. 


무리지어 놀던 친구들의 얼굴들이 하나씩 떠오르네요. 그 중에 연락이 되는 친구는 아쉽게도 한명도 없네요. 성인이 되어 만난적은 있는데, 살고 있는 동네가 제각각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계속 만남이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어릴때는 매일을 만나고 만날때마다 할 얘기도, 놀거리도 많았던 시절이였는데. 다음 날 학교에서 바로 다시 만날 수 있는데도,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어둑 어둑해질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뭐가 그리 재밌었을까?

어린 시절에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터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겼는지 궁금해지네요. 단체 생활 보다는 개인 생활이 좋은 것임을 언제부터 깨달았는지... 그만큼 사람들의 관계에서 피로함을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어릴때는 뭐가 나에게 맞는지, 이것이 좋은지 저것이 좋은지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예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필요가 없었던, 그야말로 행복했던 시절이였네요.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았던 그때가 진정 행복했던 시절임을 행복이라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니 더 이상,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것 같습니다. 


행복이란 뭘까? 
다른 사람들은 행복할까?

어른이 되면서 나에 대한 기준없이 살아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에 대한 요구도 많이 받았던것 같아요. "메타 인지", "나를 알기"를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것이 좋은가, "나"를 알아가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살아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나"에 대한 생각을 내려 놓고 가치 판단을 하고, 중요한 일을 결정 하기에는 겁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끊임없이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글쓰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유치원에서의 나의 모습입니다. 몬테소리 교육을 도입한 유치원을 다녔고, 그 당시에 그 지역에서는 나름 명문 유치원으로 기억이 납니다^_^ 


학예회 발표 준비를 막 시작했던 시점이였던것 같아요. 저는 일찍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던 언니의 영향으로 저 역시도 5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면 다행이였을텐데,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던것 같아요 하기 싫고 잘 못해서ㅠ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토록 싫었던 피아노를 잘 쳐 보고 싶다며 제 발로 피아노 학원을 찾아갔네요. 

마음터치 우주/2020

어느날 선생님께서 "피아노 칠 수 있는 사람?" 하고 물었어요. 지금의 저 보다 훨씬 소극적이고 조용했던 저는 당연히 손을 들지 않았답니다. 선생님은 저를 이미 쳐다 보고 계셨고, 저는 그날 모든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후에도 집에 갈 수가 없었어요. 억지로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고 선생님께서는 피아노를 쳐보라고 강요를 하셨어요. 


소극적이였지만, 고집은 센 아이였던 저는 끝까지 치지 않았고, 그날 유치원 화장실에 갇히는 벌을 받게 되었어요. 정확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걸 보면 그 당시의 어린 저에게는 공포로 다가올 만큼의 꽤 긴 시간임은 확실해요. 


결국 저는 선생님의 요구대로 최소한의 연주 "도레미파솔라시도"을 치고 나서야 웃으며 들어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겪은 것을 정확히 전해 들었다면 결코 엄마는 웃으면서 저에게 다가오지 못했을텐데.... 선생님은 뭐라고 엄마한테 한걸까?" 속으로 아마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것 같아요. 하지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다시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내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였구나.

다음 날에도 저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해 학예회에서 저는 피아노를 쳤거든요. 그때의 사진이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천천히 글로 쓰면서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니, 아무렇지 않았던게 아니였네요.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여도, 상처로 남았던것 같아요. 


마음터치 우주/2020
나는 큰북을 치고 싶었는데... 
단독으로 시선을 받는 피아노는 싫었는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더 없이 행복해진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말로 차마 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는 할 수 있었거든요. 


특정 사람에게 "나 지금 너에게 얘기 하고 있어."하고 꼭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그림을 봐줄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그리는 과정이 가능 하고 그림을 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행복해질 수 있는 창작이거든요.


마음터치 우주/2020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를 꺼내 보여주는 일.

옛다 여기, 우주.
아무리 주변에서 천둥 번개가 치더라도 
나는 그림을 그리며 나를 보여줄 것이다.

- 마음터치 우주 -

여러명의 선생님들이 떠오릅니다. 불행하게도 좋았던 선생님들 보다는, 조금 이상했던 남자 선생님들의 행동이 떠오르네요. 흑. 흠. 그냥 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좋은 기억만 하고 싶어졌네요.


학교 뒷뜰에서 야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뒷뜰 야영"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 옛날 사람만 아는 단어 맞겠죠? ^_^ 야영이라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캠핑과 비슷한 활동인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준비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1박 2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액티비티였어요. 특별한 이야기가 더 떠오르지는 않네요. 아마도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나의 창조성이 급 막혀버린것 같네요. 오늘의 글쓰기는 이렇게 급하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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