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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y 11. 2021

37.5도의 인간

2020년 8월



오늘 당신이 꼭 필요합니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저마다 이야기 하나씩은 품게 된 여름.

그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엮으면 온 지구가 파도처럼 날마다 일렁이겠다. 나 역시 늦봄부터 시작돼 얼마 전에 마무리된 학교 출장 건만으로도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제법 쌓였다. 눈발처럼 흩어지기 전에 그중 하나를 조심스레 기록해 본다.


그래, 하필 코로나 시대였고, 하필 고등학교들을 방문 중이었으며 하필 열이 37.8도까지 오른 날이었다. 나는 기초 체온이 높은 편이다. 손은 항상 펄펄 끓고 있고, 아침이면 이유 없는 미열도 자주 난다. 그럼에도 뜨거운 계절을 좋아해 한여름에도 솜이불을 포기할 수가 없는데, 이런 체질과 취향을 가진 사람 한둘쯤은 내 주변에도 있겠지...? 그런데 이런 상태로 코로나 시대에 '학교 방문'을 주로 하는 외부인이 된다는 건- 꽤 괴로운 일이다.



그날은 마침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 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후 동선 겹침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부서는 전원 선제적 검사를 받았다. 업무상 고교 방문 일정이 많았던 까닭이다. 그렇게 바로 전날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즉시 귀가해 자가격리를 마치고 난 다음날 아침. 나를 포함한 동료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음성 판정 문자가 마치 마패라도 되는 양 소중히 저장해 두고 이른 오전부터 서둘러 그날 배정받은 A구의 B모 여고로 나섰는데- 오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체온이 땡볕 때문인지 점점 올라가 학교에 도착할 무렵에는 37.5도를 찍고, 교무실에 들어서자 37.8도가 나왔다. 원래 1도 정도는 왔다 갔다 하는 것 아닐까... 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왜 37.8도까지? 딱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좀 높기는 했지. 지금 돌이켜 봐도.


교문을 지키는 수문장 선생님은 여러 번 체온을 재더니 37.4도인가를 찍었을 때 아주 미심쩍게 나를 들여보내며, 여기 체온 높은 사람이 한 명 있다고, 꼭 다시 체온을 재야 한다고 교무실에 미리 일러두셨다. 나도 무척 당황했다. 아니, 왜 이렇게 높지? 긴 시간 골목길을 올라오며 덥다고는 느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교무실에 도착해 다시 체온을 재면서도 얼떨떨했다. 나 어디가 아픈가? 인후통이 있었나? 기침은? 근육통은?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그저 다른 날보다 좀 더 더웠던 것인데 체온이 생각보다 높게 나오자 두 귀가 점점 더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요. 


부장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보건 선생님이 호출됐고, 그사이 함께 간 동료들은 먼저 교실로 들어갔다.


제가 정말 열심히 준비해 왔거든요.

아니 글쎄... 그건 알겠는데... 일단 열이 높으니까요.

오늘 아침에 음성 판정을 받고 오긴 했는데요.

어? 코로나 검사는 왜 하셨는데요?

아, 그게 저희 학교 내부에 확진자가 나와서... 접촉자는 아니구요. 예방 차원에서 사측 비용으로 선제적...

아니 글쎄... 그래도 열이 높으면 일시적 관찰실로 가셔야 해요.

아... 관찰실요...

오늘, 선생님이 꼭 필요해요?


그런 맥락이었다.

오늘, 당신이 꼭 필요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조그맣게 답했다.


아니요. 꼭 필요하지는... 그러니까, 없어도... 됩니다.


동료들이 강의를 하는 동안 나는 일시적 관찰실에 격리되어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휑하니 빈 교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가방을 열었다. 혹시나 열이 떨어지면 늦게라도 들여보내 줄까 희미한 기대를 품고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꺼냈다. 이미 읽은 내용이지만 읽고 또 읽었다. 밑줄을 치고 질문거리도 다시 만들었다. 그사이 보건 선생님이 들어와 체온을 재고 갔다. 열은 더디게 떨어졌다. 열을 재고 고개를 흔들던 선생님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순간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졸지에 커다란 바이러스 덩어리가 된 느낌이었다. 예민한 시기니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히 맞지,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싶으면서도 내내 마음이 아팠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무언가에 가슴을 꿰뚫린 양, 무언가가 가슴을 관통한 양 웅크리고 있다가 관찰실을 나왔다. 소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방호복을 입은 방역업체 사람들이 들어와 내가 앉았던 자리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지금 집에는 못 가실 테고... 다른 분들 나올 때까지 운동장이라도 도시죠.


부장 선생님의 마지막 전언이었다.


벤치에 앉아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오늘 왜 이러지? 정말 어디가 아픈 건가? 이마에 손을 대 보니 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모르겠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네가 바이러스인지 내가 바이러스인지 내가 괜찮은지 네가 괜찮은지 그래서 우리는 결국 괜찮은 건지. 괜찮을 건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하나도.


오늘, 내가 꼭 필요한가?


사실 그런 건 없다. 나는, 꼭 필요하지는 않다. 이 세상에도, 이 사회와 이 조직에도 사실 꼭 필요하지는 않다. 나는 결국 대체될 것이고, 내가 있건 없건 이 세계는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며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다. 나는 내 세계 속에서나 중요하지 언제나 어디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에든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을 곱씹으며 바라본 늦오후의 텅 빈 운동장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무엇에든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은 때로 족쇄와도 같구나. 그냥 쿨하게 넘겨 버릴 수도 있었는데 나는 꽤나 오랫동안 이날의 일을 마음에 품고 속 쓰려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그날의 내가 아니라 '그 후로 오랫동안'의 '나'였다.


조금 더 가볍게 살아도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가벼워져도, 끝내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가볍게 하나씩 털어내며 살면 그때에야 비로소 산뜻하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되새겨도 매일 잊어버리는 건 꽤나 비극이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런 끼적임 없이도, 그저 태생적으로 가볍게 살 줄 아는 사람들도 있을 테다. 많이 보고 배워야겠다. 아니 배운다는 생각조차 잊고 그저 스며들어야겠다. 노을과 하늘의 경계가 없듯 그렇게 스미고 스며들어 무수한 경계들을 흐트러뜨리고 지워내야겠다.


그러니까, 37.5도보다 조금 더 낮은 온도로 살아도 좋을 것이다. 너무 뜨겁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금 더 평균의 온도에 가까워지고 때로는 그 아래를 밑돌며 살수록 나는 더욱 가벼워지고 더 자주 기쁠 것이다. 그저 뒹굴며 할 일 없이 보낸 낮은 온도의 하루가, 지나고 나면 제법 근사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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