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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Oct 06. 2023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어느 날 아침 길을 건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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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만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평소라면 내처 잘 시간이지만 벌떡 일어나 책가방을 꾸려 스터디 카페에 나왔다. 100시간을 등록해 놓고 여름이 다 지나도록 절반도 못 써서 이번 가을에 다 소진해 버릴 심산이다. 그러고 보니 중고등학교 시험 기간인지 정오가 지나자 학생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난다. 그때의 아이들은 주로 학교나 공공도서관, 독서실 같은 곳에서 공부를 했다.  나는 답답한 곳을 못 견뎌 주로 집에서 혼자 떠들며 하는 편이었는데 가끔은 친구들을 따라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친구들과 도서관에 간다는 건 뭐... 한 십 분 앉아 있다가 지하 매점에 가서 우동 한 그릇 먹고 기분 전환 겸 수다 떨다가 오겠다는 뜻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동 먹은 기억밖에는 없... 크흠.


스터디 카페 내에서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저들끼리 눈짓으로 대화한다. 친구끼리 괜히 툭툭 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쉬는 시간에 정수기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지 웅성웅성 모여 별 일도 아닌데 키득댄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귀엽고 애틋하다. 뾰족하게 난 여드름도, 끊임없이 매만지는 머리도, 조금씩 비뚤게 입은 교복도, 괜히 툭툭 던지는 사춘기 한정 말투들도 그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이런 말을 하면 교사인 친구들은 가끔 봐서 그런 거라고 하고 - 그럴 수도 있다 -  또 다른 친구들은 기겁을 하며 다 큰 아이들이 어디가 귀엽냐고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 그래서 중등교육을 전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무탈하게 다 잘 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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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어린이집도 많다. 그래서 아침이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자기 몸에 비해 배는 큰 책가방을 멘 초등학생들도 가끔 등장한다. 조그만 아이들이 출근길 어른들 사이에 섞여 거리를 지날 때, 거인국에 사는 요정을 보는 것처럼 반갑고 조마조마하다. 가끔 슬프기도 하다. 주책인 걸 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한 육십이나 칠십쯤 되면 거리의 아무나 붙잡고 울게 생겼... (그러지는 말자, 진짜)


누군가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건 큰 기쁨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건 아니건 기쁨은 똑같고 여전하다. 그렇지 않다면 겨우내 잠잠하던 씨앗이 움을 틔웠을 때 보는 사람들마다 탄성을 내지를 리 없다. 눈도 못 뜨고 꼬물대던 시골 강아지가 통통하게 살이 붙고 어느 순간 깡! 하고 짖었을 때 웃음보를 터뜨릴 리 없다. 뽈뽈 기어다니던 아기가 벽을 붙들고 서더니 한 발짝 두 발짝 뒤뚱뒤뚱 걸을 때 집이 떠나가라 박수를 칠 리 없다.


그렇다면 슬픈 감정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건 '지극한 아름다움'의 끝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게 아닐까.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끝내는 좀 슬퍼지고 만다. 작고 여린 것들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모든 생명들이 자라나며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고통들을 하나도 모르는 얼굴은, 옅고 부드럽고 반짝여서 마음이 아프다. 그럴 때면 마음을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래도 기뻐해야지, 기쁘게 키워야지 중얼거려도 본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응원해야지, 그게 나의 일이지 여백에 끼적여도 본다. 그 일을 하라고 어른들은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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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그런 어른을 만났다. 아이는 한 네 살이나 다섯 살쯤 되었을까? 어린이집 책가방을 메고 할아버지 손을 꼬옥 잡고 내 맞은편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잡느라 몸 한쪽이 온통 아이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반대편에 서서 그쪽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신호가 언제 바뀌나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후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바쁘게 횡단보도로 발을 내디뎠다. 아이와 할아버지도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한쪽 손을 번쩍 들어 귀 옆에 붙였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풍경이다. 그들이 내 곁을 스칠 때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잘하네! 아주 씩씩하고 멋있어요.


아이는 손을 더욱 꼿꼿하게 들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길을 건넜다. 나는 횡단보도를 다 건너고 나서도 잠시 뒤로 돌아 할아버지와 손주의 등굣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이 쪽으로 몸이 기운 할아버지와 작은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기는 귀여운 손주. 뒷모습이 씩씩하다. 둘의 모습이 점점 작아질 때까지 보고 있다가 흘러내린 가방끈 한쪽을 고쳐 메고 나도 발끝에 힘을 주어 걸었다.


길을 건널 때는 꼭 손을 들기. 아주 오래전 나도 배웠을 텐데 그만 잊어버렸다. 아이들은 작으니까 잘 안 보여서 그렇겠지. 그렇다면 아이들이 더 이상 손을 들지 않아도 괜찮을 때까지, 그렇게 훌쩍 자라날 때까지 잘 지켜 주고 싶다. 여력이 닿는 한 오래 살아남아 좋은 어른으로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해 주고 싶다. 대단하지 않아도, 근사하지 않아도 그냥 곁에 자리하며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응원해 주고 싶다. 오래된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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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눈이 작고 통통하고 은발의 머리가 곱슬곱슬한. 일단 눈은 작으니 통과. 할머니가 되어서 귀여운 생명들과 서로를 귀여워하며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해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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