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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y 21. 2021

좋은 안녕, 퇴사하던 날

마지막 출근하던 날에 관한 짧은 기록



아름답고 좋은 마무리란 어떤 것일까?


10년 여의 시간 동안 이/퇴직만 대여섯 번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어느 정도 나름의 답을 찾았을 법도 한데 여전히 비슷한 고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애초에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인 듯도 하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수많은 Hello와 Good-bye를 건네 왔고, 3월 24일 다시 한번 Bye를 외쳤다. 말 그대로 외쳤다. 홀가분했고, 마음이 좋았다.    



원래 예정된 마지막 출근일은 26일이었다. 정식 근무일은 말일까지이나 사흘 정도 배려를 해 주셔서 나머지 날들은 휴가로 대체하고 26일까지 나가기로 한 것. 나는 그날에 맞추어 작은 퇴사 선물을 준비했다. 지금까지 이곳은 떠날 때 작게나마 선물로 마음을 표현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 직장 안에서도 특별히 더 마음이 가고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소략하게나마 마음을 전한 적은 있지만 '퇴사 선물'로 명명된 무언가를 준비해 본 적은 없어서 고민이 좀 되었다. 아, 물론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다.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될 일이지만, 왜 그런지 이번에는 꼭 하고 싶었다.


2020년은, 코로나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한 해였다. 사회생활이 대체로 그렇듯 어디에나 그런 일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유독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에 휘말려 오해와 괴로움 속에 남몰래 눈물도 몇 번 쏟았다. 그러다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쳐 버렸다. 갚지 못할 빚을 진 채로 놓쳐 버린 시간들이 깊고도 넓어 여전히 마음의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다. 망망대해 속에 속수무책으로 잠겨 들 듯 어쩔 줄 몰라할 때마다 산더미 같은 일들이 쏟아졌고, 그 덕분에 차라리 살아 나올 수 있었다. 진심으로, 그 일들 덕분이었다. 휘몰아치는 가을을 그렇게 보냈고, 겨울을 맞았고 긴 잠에서 깨어나듯 봄을 만났다. 그렇게 한 해의 끝에 섰고 퇴사를 준비하던 중 코로나 건이 터져 엄벙덤벙 시간이 흘렀다.


22일, 23일은 코로나 건으로 사무실 전체에 휴가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그 주 주말에 있을 공연 준비를 하며 이틀을 보내고 다음날을 맞았다.  


선생님, 잠깐 저 좀 보시죠.

네...? 아, 넵!


오전에 출근해 바쁘게(바쁘지 않지만 괜히 마음이 그래서)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과장님의 호출이 떨어졌다. 후다닥 회의실로 가 보니 과장님의 표정이 미묘하다.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안 됐기도 하면서 또 이것이 아니면 달리 도리가 없으니 그나마 낫겠다는 그런- 오. 묘. 한. 표정.


저기- 서로 이렇게 있어 봤자... 달리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이제 딴 선생님들은 다 출장을 나갈 텐데.

아... 네에.

그래서 팀장님도 그렇고... 오늘 오전에 정리를 해서 나가는 걸로-

아, 오늘 오전이요... 네.


더욱, 진심으로, 바빠졌다. 게다가 수요일은 출장이 많이 잡힌 날이라 동료 선생님들 중 일부는 벌써 출장을 나가 있거나, 나갈 예정이거나. 원래 이곳의 Good-bye가 대체로 이런 느낌이라고 건너 건너 들은 적은 있으나 이렇게 급작스러운 줄은? 자리로 돌아와 손을 더욱 바삐 놀렸다.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고, 놓아두었던 옷과 신발을 챙겼다. 이전부터 어느 정도 정리는 해 두었지만 당장 오전 중으로 나가야 하므로 빠뜨리는 내용이 결코 없어야 한다.



마지막 날이 되면 소라가 차를 몰고 와 도와주기로 했었다. 짐을 한가득 안고 터덜터덜 나오면 처량하고 쓸쓸할 수 있으므로 모양 빠지지 않게, 필요하다면 약간의 액션(?)도 취해 주기로 낄낄대며 약속했던 것. 내가 건물 밖으로 나오면 그 앞에 차를 딱 대고 있다가 촥- 문을 열어 주고 '수고했다!'라고 하면 나는 '자, 그럼 이제 어디 다시 재미나게 살아 볼까?' 등지의 오그라드는 멘트도 좀 날려주고 훌훌 떠나기로 했는데... 그랬는데...!


한 마디로 망했다.


정신없이 짐을 싸고 버리고 챙기며 사이사이 출장 나가는 선생님들 배웅을 하며, 못 만날 선생님들께는 전화를 돌리며 그날 오전을 보냈다. 나올 무렵에는 거의 모두가 자리를 비워 그야말로 쓸쓸히 퇴장. 마지막까지 진귀한 경험을 선사해 준 이곳을 정말이지 오랫동안 못 잊을 것 같다는 생각. 짐이 가득 든 쇼핑백을 이고 지고 챙겨 나오며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건물을 바라보았다. 코로나로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해일에 휩쓸리듯 여러 풍경들이 사라져 버리는 가운데서도, 그래도 덕분에 그 일 년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저를, 그리고 어쩌면 저의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가끔씩이나마 먹이고 입힐 수 있는 시간 아래 놓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어찌 될지 아직 모르겠으나, 또 어떻게든 살아가 보겠습니다.



근처 우체국에 가서 무거운 짐은 부쳐 버리고 지하철에 올라 타 집으로 돌아왔다. 평일 낮의 지하철  풍경은 이 얼마나 오랜만의 일인가. 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고 마루에 누우니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끝이 났구나. 엄니께 전화를 드려 오늘 짐을 싸서 나왔다고 하니 그래 잘했다 하신다.


엄니, 저 믿으시죠?

그래. 믿지.

진짜로 믿으시죠?

아, 그럼 진짜지.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 나를 믿지 못할 때 나는 부러 그렇게 묻곤 했던 것 같다. 저 믿으시죠? 큰소리 뻥뻥 치며.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알 수 없는 풍경들 속을 헤매다 스르르슥슥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까 봐, 겁이 나서 말이다. 나를 믿으신다는 엄니는 이제 다시 풀 뽑으러 가신다며 그만 쉬어라 하시고, 나는 전화를 끊고 소라에게 문자를 남겼다. 야, 나 퇴사했어. 어??? 오늘??? 어, 오늘. 'ㅋ' 초성이 이천 개는 날아온 것 같다. 우리의 계획은 한 마디로 망한 거지. 하하. 다음번을 노려 보자.


이렇게 또 한 곳에서의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퇴사 선물은 '개인위생 철저 준수 시대'를 맞아 휴대용 손소독제와 몇 가지를 꾸려 하나씩 소포장해 사무실로 부쳤다. 힘든 가운데서도 닻이 되어준 분들이 계셨다. 튕겨 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우나 고우나 이 곳에서의 한 해를 허락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이곳을 다녀가야만 했던 어떤 이유들도 살아가며 조금씩 더 깊이 깨닫는 날들이 있겠지. 스쳐가는 인연들에도 정이 들고, 그렇게 서로 스며들고 나면 마음이 애틋하게 아프더라.


애틋한 사람들 뭉근하게 떠오르니.

좋은 안녕이었다.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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