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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Jun 24. 2021

안 맞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가다실 9> 예방 접종에 관한 짧은 기록



엊그제 <가다실 9> 2차 주사를 맞고 왔다.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 맞는 것이 큰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올 4월부터 주사 가격이 오른다는 뉴스를 보고 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덜컥 신청했다. 그게 3월 말.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지 3월 일정으로는 당연히 예약이 되지 않았고, 결국 4월 중순으로 넘어갔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 미루어 왔던 찜찜한 마음을 뒤늦게라도 좀 덜고자, 그리고 안 맞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 휘리릭 신청을 하고 다녀왔다. <가다실 9> 주사는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주사로도 알려져 있다. 약 6개월 동안 3회에 걸쳐 맞아야 하고 도합 5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아주 오래전 이 주사를 맞는 것이 약간 캠페인(?)처럼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십 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즈음이었던 것 같다. 친구 중 하나가 이 백신 주사를 홍보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홍보 대사였나? 아무튼 그때 백신을 안내하는 소책자를 나누어 주면서 왜 이 주사를 꼭 맞아야 하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한참 설명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암을 예방하는 백신이라고?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친구의 열의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건강에 큰 관심이 없어 검진도, 무엇도 하지 않은 채로 이십 대를 지나왔으니. 용감했다고 해야 하나. 어리석었다고 해야 하나. 삼십 대가 훌쩍 지나고 생의 한가운데(끝 날을 모르면서도 늘 용감하게 쓰는 표현이지만)로 다가갈수록 그런 과신과 만용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닫는다.


정신력과 체력이 무궁무진한 화수분인 줄 알고 아무렇게나 꺼내 쓰다가 바닥을 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게 여기저기 폐도 끼치고 자괴감도 느끼면서 어떻게 흘러는 왔다. 요행으로 온 셈이다. 요행 큰 탈 없이 오늘까지 왔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독립한 지 1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건강한 매일을 구축하는 일은 어렵고, 어쩌다 하루를 잘 보내면 다음 날이 망하는 식으로 널을 뛰며 살고 있다. 이십 대에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준비했다면 지금 사는 일이 좀 더 수월했을까? 그렇지는 않겠지. 현재는 늘 가장 날카롭게 벼린 칼처럼 위태롭고 선명해서 도무지 '선선하게'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준비를 해도, 안 해도 벅찬 것이 바로 지금 '오늘'이려니- 하다가도 <가다실 9> 주사와 같은 일들을 떠올리면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아, 어리석었어! 그때 맞았어야 하는데! 이십 대의 나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것도 하나 챙기지 않고! 뭘 했느냐고? 살았다. 매일을. 오늘까지 오기 위해. 그럼, 왔으니 일단은 성공 아닌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분당 서울대병원에 다다랐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에서 분당까지는 왕복 4시간 정도가 걸린다. 아니 굳이 그렇게 먼 곳을? 그러게 말이다. 내가 하는 선택들이 대체로 이런 편이다. 시간과 돈을 함께 날리는 것이 주특기라, 어떤 것에 꽂혀 버리면 다른 게 안 보인다. 4월부터 주사 가격이 오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겁을 내다가 찾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다는 데 꽂혀 그만 오가는 시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덜컥 예약부터 했다. 그리고 1차 주사를 맞고 와서야 깨달았다. 하하하! 그래, 시간 비용도 비용이었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도 접종을 하는 병원들이 있었는데 숫자에 휘릭 넘어가 분당까지 나들이라니.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좋은 점만 생각하기로 한다. 이제 두 번을 맞았으니 한 번만 더 맞으면 끝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안도가 된다. 백신 주사의 정확한 의학적 효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므로, 내가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역시 '안도감'인 듯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맞았으니 이제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안도감.  


내게는 코로나 백신도 그러하다. 사실 <가다실 9> 주사를 맞기 전에 한 며칠을 잔여백신을 예약하는 데 골몰했었다. 잔여백신이 한창 풀리기도 했고, 주변에서 하나 둘 예약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어 그럼 나도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게다가 부모님은 6월 초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으셨고, 오빠네 부부는 귀국 전 화이자를 맞고 와서 뭔가 나도 빨리 맞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이 있었다. 맞고 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다'라고 해 그것이 부럽기도 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집에만 있는 날이 많지만, 가끔 강의를 나가거나 학교 수업을 하면 괜히 걱정부터 되는 것이다. 혹시나 내가 전파자가 될까 봐. 목이 좀 아프거나 컨디션이 저조할 때는 더욱 그랬다. 이건 코로나가 가져온 신개념 의심병 같다. 작년부터 얼마나 많은 순간들에서 나 자신을 의심하고 몰아붙였던가. 직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고 검사를 할 때마다 아니겠지, 맞나, 아닐 거야, 나인가, 아니리라, 혹시나 사이를 오가며 괴로워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불안증이리라. 그걸 좀 벗어나고 싶다.


물론 백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맞았다고 해서 섣불리 마스크를 벗는다던가, 과신하여 무모한 행동을 하면 도로 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백신 부작용도 알려진 바와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들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피하거나 불안해하면 이 시기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가능하다면 어서 맞고 싶다. 맞고 나서 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의 일들까지 고려하기에는 시절이 너무 가혹하고 괴롭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순간에나 모든 삶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는 것 같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에 중차대한 의미를 부여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2021년을 살아가는 한 명의 소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 그뿐이다. 너무 크게 좌절하지도, 또 너무 크게 희망을 말하지도 않으면서 눈앞에 다가온 하루를 그저 성실히 사는 것.


그러면, '현재'라는 것이 가장 날카롭게 벼린 칼처럼 아프고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이 하루를 또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선선하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나는 40이 되고, 50이 되고 어쩌면 그 너머의 너머까지도 오래도록 비교적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너무 큰 희망인가. 그러니 이 삶에서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주사 한 번 맞고 와서 넋두리가 길었다. <가다실 9> 2차 주사는 생각보다는 좀 아팠고, 맞고 나서 두통도 약간 있었다. 이제 3차 주사만 남았다. 비용은 회당 약 14만 원 정도? 이것이 3월까지의 금액에 비해 오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병원마다 다르고, 두 명이 짝지어서 가면 좀 더 저렴하게 해 주는 곳도 있으니 아직 안 맞으신 분들은 참고하여 준비해 보셔도 좋을 듯하다. 주의할 점은 이 주사를 맞고 나면 약 2주간 코로나 백신 주사는 피해야 한다고. 모든 종류의 주사들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나를 맞고 나면 다른 백신과 어느 정도의 텀을 두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하다.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은 역시 병원과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나는 엊그제 <가다실 9>를 맞고 왔으니, 그렇다면 7월에나 잔여백신 신청이 가능할 텐데- 8월부터는 의무 접종 대상자가 되니 괜히 예약하는 데 시간 쓰지 말고 조심하며 8월을 기다려야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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