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이 편의점조차 가기 힘든 제주 환경 때문도 있지만 정말 나의 휴식 공간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루종일 집에있어도시간이 모자랄 만큼 할 일이많았다.세탁기를 돌렸는데요상한냄새가 나는수건, 과한 열로 연기 나는 프라이팬, 무슨 맛인지 모를 요리들. 처음 해보는 집안일은 실수투성이지만 그냥 재미있었다.실수를 해도 아무 고민 없이 웃을 수 있는 건 너무 평온했다.
혼자 있다 보니 표정이 사라졌다.
나는 웃는 상이 아니다. 평소 무표정으로 있으면 남들보다 차가워 보여 오해도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미소 지으려 노력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더욱 미소 지었다.
혼자인 지금. 나는 슬프면 울고 즐거울 땐 웃지만, 기본 표정은 차가운 무표정이 되었다.
간만에 지인들을 만났는데 예전처럼 오래 웃고 떠들지 못했다. 그냥 나이 먹고 기력이 없어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화할 땐 상황에맞게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제주에서 무표정으로 지내다 보니 표정근육이 사라져 오래 대화를 못한 것이다. 마음은 진심으로 반가웠는데 대화가 길어질수록얼굴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아차!별로 반갑지 않은 줄 알고 상처받겠지? 재빨리상대를 위해 표정근육을 당기며 웃는다.
웃는 상의 쿼카처럼.활짝!
웃는 상의 쿼카 <자연바라기 그림>
초반엔 참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놀러 왔었다. 제주에 살고 있는 내가 관광 가이드를 해야 했고, 갔던 관광지를 수차례 소개하고 나서야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해졌다. 몇 년이 더 흐르니 가족과 친한 친구 외에는 연락이 뜸해졌다.
사람과의 만남이 줄어들자 서울에서의 기억이 점점 과거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표정, 화장, 입는 옷, 식성 등 모든 것이 자연스레 변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편한 쪽으로 말이다. 물론 서울생활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생에서 쉼표를 찍고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