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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바라기 Sep 30. 2023

03. 혼자가 되는 과정

무표정의 집순이



제주살이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집순이였다.

서울에선 상상도 못 했던 집순이.

 없이 편의점조차 가기 힘든 제주 환경 때문도 있지만  정말 나의 휴식 공간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할 일이 많았다. 세탁기를 돌렸는데 요상한 냄새가 나는 수건, 과한 열로 연기 나는 프라이팬, 무슨 맛인지 모를 요리들. 처음 해보는 집안일은 실수투성이지만 그냥 재미있었다. 실수를 해도 아무 고민 없이 웃을 수 있는 건 너무 평온했다.






혼자 있다 보니 표정이 사라졌다. 


나는 웃는 상이 아니다. 평소 무표정으로 있으면 남들보다 차가워 보여 오해도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미소 지으려 노력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더욱 미소 지었다.

혼자인 지금. 나는 슬프면 울고 즐거울 땐 웃지만, 기본 표정은 차가운 무표정 되었다.


간만에 지인들만났는데 예전처럼 오래 웃고 떠들지 못했다. 그냥 나이 먹고 기력이 없어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화할  상황에 맞게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제주에서 무표정으로 지내다 보니 표정근육이 사라져 오래 대화를 못한 것이다. 마음은 진심으로 반가웠는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얼굴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아차! 별로 반갑지 않은 줄 알고 상처받겠지? 재빨리 상대를 위해 표정근육을 당기며 웃는다.

웃는 상의 쿼카처럼. 활짝!


웃는 상의 쿼카   <자연바라기 그림>


 




초반엔 참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놀러 왔었다. 제주에 살고 있는 내가 관광 가이드를 해야 했고, 갔던 관광지를 수차례 소개하고 나서야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해졌다. 몇 년이 더 흐르니 가족과 친한 친구 외에는 연락이 뜸해졌다.

사람과의 만남이 줄어들자 서울에서의 기억이 점점 과거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표정, 화장, 입는 옷, 식성 등 모든 것이 자연스레 변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편한 쪽으로 말이다. 물론 서울생활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생에서 쉼표를 찍고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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