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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May 18. 2020

다큐멘터리 <김군>

결코 잊지 않으리

https://artlecture.com/article/1262



1:1에 가까운 4:3의 갑갑한 화면비, 영화는 당대 tv의 매체성을 통해서 과거를 작금에 다시금 소환한다. 갑갑하게만 느껴지는 당대매체의 속성을 통해서 5.18에 대한 당대의 푸티지들과 1989년의 5.18 진상조사위원회의 기록이 펼쳐진다. 이후 영화가 촬영되던 2016년으로 옮겨오며 영화는 1.88:1의 화면비로 넓어지고, 거친 필름의 매체성은 디지털의 매끈함과 투명함으로, 또한 빛을 잃어버린 세계에는 비로소 색채가 회복된다. 하지만 시간을 동시대로 옮겨와도 영화는 여전히 갑갑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광주의 초상들은 암실 속에 갇혀있어 회복된 색채의 수혜를 받지 못한다. 이렇게 어둡고 갑갑한 세계 속에서 피해자들은 여전히 5.18이라는 과거를 바라본다. 청산되지 못한 문제들, 허나 청산된다 한들 결코 잊지 못할 쓰라린 상흔이기에 이들은 동시대를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당대의 광주시민들을 거세게 탄압했고, 작금에는 이를 왜곡하는 당대의 부역자들은 이 같은 매체의 수혜를 여전히 흠뻑 받는 실정이다. 피해자들이 여전히 음지를 누비고 있다면, 5.18의 북한 개입설을 주창하며 이를 왜곡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당당하게 양지를 누빈다. 피해자들의 복권되지 못한 권리가 불완전한 구도들로 드러난다면, 부역자들의 초상은 오히려 안정적이고 당당한 정면상이다. 왜곡된 세계를 형성해가는 자들의 당당한 초상과 진실을 바라보는 이들의 궁벽한 초상, 과연 후자들의 권리는 그리고 진실은 복권될 수 있을까.      



영화포스터



영화는 5.18 당시의 시민군들을 북한에서 개입한 '광수'들로 왜곡하여 이를 선전하는 극우단체 및 지만원의 부당한 주장을 바로잡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다. 극우단체 및 지만원의 주장을 포착하는 영화의 시간은 짧다. 그들은 북한에서 5.18 시민군들의 초상과 유사한 인물들을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는 구체적인 물증이 부재하고, 방법론도 얄팍하다. 그들의 무책임한 주장에는 영화의 러닝타임처럼 긴 시간이 동원되지 않는다. 무책임한 선동을 일삼는 그들의 시간이 짧게 포착된 이후, 나머지 영화의 시간은 부당하게 제 1 광수로 지목된 이의 진실을 찾아 나서는데 길게 할애된다. 지만원 등이 주장하는 무수한 광수들은 쉬이 수면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상흔 속에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데 무수한 세월을 보내고 있거나, 부조리한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의해 당대의 기억을 상실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스스로가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상황으로서 더 이상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볍게 제기된 주장에 거짓이라는 바를 입증하기 위한 영화의 여정은 대단히 길다. 여러 광수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와중에도 제 1 광수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이름도 모르는 넝마주이였기 때문에, 또한 5.18 이후의 흔적이 전무하기 때문에 거짓은 쉬이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광수에서 김군으로 향하는 일련의 복권이 서서히 이뤄진다. 과정이 어렵다 한들 거짓은 은폐된 진실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다.      



영화는 5.18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된 당대의 상황에 일련의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5월 15일에 서울에서 촉발된 시위는 명백히 민주화의 의도를 띠었지만, 5월 17일 계엄령 이후 18일에 계엄군들이 탄압하고 학살한 광주시민들은 구성원 모두가 민주화 운동이라는 정신을 공유하진 않았다. 민주화의 목적을 갖지 않았던 광주시민들 조차 영문도 모른 채 일방적인 폭력에 노출되었고, 이후 이들이 뒤섞여 민주화와 더불어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5.18에 의해 박탈된 그들의 생존권은 온전히 복권되지 않았다. 정치권력에 의해 짓밟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이를 복권시키고자 당대라는 동굴 속을 헤매고 있다. 또한 당대에도 생존을 위해 들고 일어섰던 이들은, 오늘날에도 생존을 위해 급급할 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생존권 투쟁임과 동시에 민주화 운동이었던 5.18이지만, 그 이후 운동의 당사자들은 생존권이자 민주화라는 양자 모두의 수혜를 받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서 자신들을 향해 부당하게 덧씌워지는 프레임에 대항하지 못하며, 또한 민주화의 시대 속에서도 자신들의 존재,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생존에 있어서도, 또한 민주화의 수혜를 받는 이들은 당대의 부역자들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영화의 연출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낸다. 민주화의 수혜자들은 역설적으로 이를 가능케 한 역사를 부정한다.      



제 1 광수에서 김군으로 바뀌어가며 거짓이 점유해온 그 자리는 서서히 진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영화는 서서히 광주시민들, 5.18 희생자들의 자리를 음지에서 양지로 확대해나간다. 그리고 김군은 계엄군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바가 결국에는 드러나며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제 1 광수가 아니라 시민군 김군이었다는 바를 입증해줄, 그와의 관계망에 놓였던 무수한 이들의 증언으로 진위가 드러난다. 그렇게 김군과의 관계망에 놓인 무수한 구성원들, 그리고 단체들은 광주 전역으로 확대되어 간다. 영화는 동굴에서 그리고 적은 개인들에서, 광주 전역으로 그리고 무수한 광주 시민들의 네트워크로 확대해나간다. 이를 통해서 모두가 그날의 증인임을, 설령 무수한 학살 및 실종 속에서 스스로가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이를 둘러싼 무수한 이들이 진위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렇게 양지로 광주 전역의 구성원들로 확대되어 감에도, 영화의 말미에는 다시금 영화가 상영되는 암실로, 또한 어둠이 자리한 밀실로 돌아간다. 여전히 무책임한 태도로 범람하는 거짓들에 진실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다시금 동굴로, 어둠으로, 그리고 밤으로 시대는 퇴보하는 것인가.      



영화는 다큐멘터리로서 5.18을 두고 일어나는 왜곡과 진실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전달의 역할을 띠기도 하지만, 이미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진실이 드러남에 넝마주이 출신의 시민군들이 거주했던 천변을 포착하는 렌즈에는 빛이 굴절되어 일말의 희망을 포착한다. 하지만 계엄군에 의해 사망하고 주검도 상실되어 온전히 그를 복권할 수 없음에 버드나무에는 거센 풍랑이 불어 닥치며 다시금 비극을 강조한다. 또한 김군을 추도하는 동지의 시간도 황혼이요, 당대의 상흔을 간직한 구 전남도청에는 밤이 찾아오며 어둠을 수놓는다. 하지만 구 도청의 문은 열어젖혀지며, 이에 어둠으로 가득한 구도청에도 여명이 밝아 오리라. 영화는 지금 여기에서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참극을 고발한다. 허나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프더라도 고통을 느낌에, 또한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망각하지 않음에 있다. 김군의 존재도 작금에 이르러서 알려진 것이 아닌 1989년의 진상조사회에서 밝혀진 바다. 허나 이 같은 사실을 망각함에 왜곡과 거짓들이 범람한다. 희생자들은 더 이상 5.18을 마주하는 이들이 피해자들처럼 아파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파해야 하고 이를 통해 기억해야만 한다. 아도르노는 2차 대전의 비극을 마주하고, 그 이후의 예술은 고통과 숭고함을 통해서 이를 기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예술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역사를 다루는 예술에 있어서 이 같은 정신은 분명 필요하리라. 누군가는 쓰라린 고통을 외면하고 이를 왜곡하여 심미성에 도취되리라, 이에 서서히 진실은 잊혀지리라. 하지만 이런 위협 속에서도 본 극 <김군>은 더 이상 왜곡되지 않으려는, 또한 역사와 그 고통을 어떻게든 기억하려는 불굴의 의지를 천명한다. 



관련 리뷰 링크: https://artlecture.com/article/556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qhBGuXN1DzE


글 아트렉처 에디터_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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