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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This Is Water」후기 ②

이거 내 친구 이야기인데는 사실… 내 이야기.

by 아노 Art Nomad

사진 출처 : By photo3idea_studio _ Flaticon

https://www.flaticon.com/free-icon/fish-bowl_1472226?term=goldfish&page


자기 삶에서 얻은 영감으로부터 소재를 찾는 소설가들이 많다고 한다. 내 경우엔 그런 작품들도 있고 아닌 작품들도 있다. 삶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의 경우엔 경험을 쪼개고 쪼갠 후 확장이나 축소 등을 통해 상황, 사건, 인물에 맞춰서 재구성해 넣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이 나와 지나치게 비슷하게 되어 글의 진도가 안나가는 걸 겪어본 이후엔 더욱 잘게 잘게 쪼개 그게 내 흔적이라는 걸 탈고하면서 잊어버릴 만큼 해체해서 넣었다.


주인공의 특성이 나와 너무 비슷했을 때, 나는 오로지 나 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주인공의 대척점에 선 인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소설 전체가 균형을 잃게 되고 그 글은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1인칭 화자라면 오히려 더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더라. 자칫하면 제대로 묘사도 하지 않고 왜 독자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채지 못하는 건지 혼자만 답답해하고 이야기가 고여버리게 되어서.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의 경우에는 날 것 그대로 넣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많았다.


이 소설의 제목, 첫 구절, 마지막 구절은 모두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레스(David Foster Wallace)의 케니언(Kenyon)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아래는 축사 원문을 영상화한 링크다.


This is Water


한 마디로 ‘늘 깨어 있으라.’라는 말 되시겠다.


처음 이 글을 접하고 나서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어렵다.


장작 12년 만에 AI의 도움을 받아 요약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졸업하고 나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때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인간을 외롭고 무디게 만든다. 앞으로 여러분은 돈, 외모, 권력, 지적 능력 등 무언가를 숭배하고 살아갈 테고 이때 깨어 있지 않으면 맹목적 확신과 편협한 사고가 스스로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일상의 불편, 좌절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이것은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세상이란 게 원래 그렇다.) 이런 것들이 인생을 좀 먹을 때 고개를 들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일상의 부정적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 인식하고 사유하는 데서 진정 주체적인 삶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자 교육의 의미이다.



2013년 파리에서 교육연극축제 (IDEAFestival : InternationalDramaEducationAssociationFestival)가 개최되었다. 이 축제의 하위 축제로 전 세계 2030 교육연극 종사자를 모집했을 때(YoungIDEA2013Paris) 나도 지원했다. 지원한 52개 국가 중 13개 국가가 선정되었고 감사하게도 이 13개국 중에 한국의 대표, 우리 팀이 끼어 있었다.


당시 나는 대학로 무대에 서고, 중 ‧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 연극반 강사를 하며 지냈다. 연극 놀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의 모임에도 나가고 있었으니 대다수는 처음 들어봤을 이 교육연극축제에 지원한 게 그리 희한한 선택은 아니었다.


2013년 1월에 결과 발표가 나왔다. 축제 일정은 2013년 6-7월이었다. 공통주제로 짧은 공연 한 편과 그에 걸맞는 워크샵을 마련해가야 했다. 그때 공통 주제로 주어진 게 「This Is Water」서두에 쓰인 구절이다.



There are these two young fish swimming along and they happen to meet an older fish swimming the other way, who nods at them and says "Morning, boys. How's the water?" And the two young fish swim on for a bit, and them eventually one of them looks over at the other and goes "What the hell is water?"



당시에는 축사의 전문을 다 알지 못했다. 우리 팀뿐 아니라 나머지 12개국가 팀도 정말 딱 저 두 문장을 제각기 해석해서 준비해 왔기 때문에 각국, 각 팀의 해석방향이 다 달랐다.


적도 기니에서 온 팀은 적도 기니에서의 조혼과 성범죄에 대해서 다뤘다.


스페인 팀도 성범죄에 대해서 다뤘지만 스페인팀은 성범죄가 꼭 남성이 여성에게만 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에게, 남성이 남성에게 가는 것도 성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대만 팀은 양약에 대한 맹신이 약물과용으로 인해 대만을 좀 먹는다고 했고,


필리핀 팀은 마닐라에서 일어나는 다른 지역 출신에 대한 차별이 빈익빈 부익부를 낳는다고 했고 그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출신성분이 마약 소굴을 낳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 해왔다.


우리나라팀의 리더였던 나는 이 이야기를 세대 간 갈등에 세대 내 갈등을 얹어 해석했다.


표면적으로는 두 마리 어린 물고기가 나이 많은 물고기 앞에서 그의 비위를 맞춘다. 하지만 그와 거리가 좀 떨어지자 어린 물고기 하나가 나이 많은 물고기를 향해 꼰대라며 짜증을 낸다. 하지만 두 마리 어린 물고기는 사실상 경쟁상대이지 한패가 아니다. 이 둘은 이 좁아터진 물속에서 자신의 헤엄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 그저 공공의 적이라는 대상이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의 험담을 하며 일시적인 유대감을 가졌을 뿐이다.


베베 꼬인 발상이다. 내 추구미는 아니다. 단지 그때 한국인으로서 세상이 그렇게 느껴졌을 뿐.


안타깝게도 지금의 생각이 그때와 대단히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이 소설에 반영되었다.


유희만 취하고 자신의 핏줄은 버린 아버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취업한 젊은이들의 인생을 갉아먹은 파렴치한 어른.

그 앞에서 은혜와 데이빗은 잠깐의 유대를 가졌으나

결국 승자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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