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알아낼 리 없는데」 5화

이것저것 다 실험해 봤어.

by 아노 Art Nomad

누가 현장 수사팀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사진을 찍어 올렸더라고. 자세히 보니 이 구더기가 내가 본 그 구더기가 아닌 거. 내 손가락을 타고 기 올라온 구더기는 분명 좁쌀만 했는데, 사진에 찍힌 구더기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거야.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너무 궁금하잖아?


그래서, 그때부터 파리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거지. 그전까지는 내 머리가 깡통인 줄 알았어. 공부 머리는 진짜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고 싶은 걸 공부하니까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 1령 구더기, 2령‧3령 구더기, 구리금파리, 치즈도둑파리, 신선기 ‧ 팽창기…


배웠으면 실행을 해봐야지.


아마 춘덕산에 있는 고양이란 고양이는 다 내가 잡았을 거야. 갓 잡은 고양이를 낙엽으로 대충 덮고 표시목을 해둔 뒤에 그냥 내려왔어. 구더기가 끼려면 밖에 좀 놔둬야 하니까.


딱, 이틀 뒤에 다시 가보니까 고양이 사체에 구더기가 덕지덕지했어. 그 고양이 사체를 새로 잡은 고양이랑 같이 묻었어. 그리고 다시 표시목을 두고 사나흘 뒤에 찾아갔지. 처음에 묻을 때 분명 좁쌀만 했던 구더기가 손톱만 하게 커졌더라고.


그때부터는 이것저것 다 실험해 봤어.


땅에 묻었을 때랑 밖에 놔뒀을 때, 여름이랑 겨울에 구더기가 커지는 속도가 다 다르더라. 나중에는 고양이가 모자라니까 한 마리를 잡아서 나눠. 처음 구더기가 꼬이게 실험하는 건 파리가 알을 많이 낳도록 멀쩡한 거, 그 옆엔 토막 난 걸 두는 거지.


신기한 건 뭔 줄 알아? 파리는 같은 시체에는 다시 알을 안 까. 근데, 옆에 있는 토막 난 시체에는 새로운 알을 까기도 한다는 거야. 웃기지? 파리 주제에 더 신선한 게 뭔지 안다는 게.


거기까지 해보고 나니 사람 시신 옆에다가 토막을 놔둬도 사망 추정 시간을 비틀 수 있는지 그게 너무 궁금하더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지, 도구도 다 준비돼 있지, 갖출 건 다 갖췄는데 딱 하나만 없었어. 재료.

‘고양이의 저주’ 사건 때는 그놈이 시신을 암매장하는 걸 우연히 봤다고 쳐. 근데 그렇게 우연에만 기대면 재료 수급이 어렵잖아. 그렇다고 내가 다 죽일 수도 없고.


그래서 암매장된 시신이 발견됐다는 데를 다 조사해서 액셀 파일로 정리해 봤어. 그중 내가 사는 부천 일대만 한 번 추려봤지.


나는 하여튼 범죄 운은 타고났더라.


내가 그간 시야가 좁아서 춘덕산밖에 안 간 거지, 인근에 성주산 ‧ 춘의산 ‧ 천왕산 ‧ 도덕산 ‧ 시화호 뭐 악명 높은 암매장 추천지들이 많더라고. 노 난거지.


근데 또 여기 아무리 암매장하러 오는 놈들이 많다고 해봐야 언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후보지 근처를 삥 돌면서 버려진 차들을 섭외해 블랙박스 영상을 땄어.


며칠 눈알 빠지게 영상을 돌려보니까, 진짜 있더라고. 새벽에 수상한 짐을 끌고 산으로 가는 놈이. 세상이 참 흉흉해? 수상한 인간들이 아주 뻔질나게 드나들더라니까?


그래서 바로 작업에 착수했느냐고? 에이. 그럼 안 되지! 이래서 분석관님이 역사에 이름을 못 남기는 거야. 너무 허술하잖아.


내가 처음 블박 영상을 확보했을 때는, 이미 놈들이 수상한 짐을 들고 산으로 가고 난 다음이었어. 게다가 수상한 짐을 끌고 산으로 들어가는 것만 봤지, 그놈이 그 큰 산 어디로 올라갔는지 알아? 운이 좋아서 표시목을 발견했다고 쳐, 근데 내가 헤매다 발견하면 거긴 파봐야 구더기가 한참 컸을 거거든.


차량 블박만 서른 대 섭외하고, 수상한 놈이 들어간 길을 따라 야생동물 카메라로 위장한 캠을 한 스무 대 설치하고 나서 좀 기다렸어. 그때까지 벌어 논 돈 다 깨졌지.


그러다 기회가 왔어. 수거한 영상을 다섯 배 속으로 돌려보는데 성주산 일대에서 그날 새벽 두 시경에 딱 잡혔어, 시신을 암매장한 놈의 얼굴이. 걔는 초짜였어. 막 삽을 한 번 쑤셔 넣고 돌아보고 또 한 번 쑤셔 넣고 돌아보는 데 보는 내가 다 정신없더라.


그거 발견했을 때가 아침이었는데 그때부터 심장이 얼마나 쿵쾅대던지.


구더기가 더 자라기 전에 어여 파봐야 하는데, 옆에다 묻을 시신은 또 어디서 구할지, 전신으로 묻을 건지 토막을 낼 건지. 준비할 게 많아서 바쁘더라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7 「알아낼 리 없는데」 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