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알아낼 리 없는데」 6화

이야, 반갑더라고.

by 아노 Art Nomad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그 성주산 밑에 심곡동 일대가 반지하가 많거든. 그런 데는 대문들도 다 열려 있어, 세놓는 데가 많으니까. 그날 내가 들어간 데는 심지어 현관문도 그냥 열리더라고. 아무리 훔쳐 갈 게 없어도 그렇지,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술 냄새 진동하는 아재가 자고 있대? 꽐라가 되가지고는 지 경동맥 따이는 줄도 모르더라. 급한 건 한 토막이니까 다리만 먼저 썰어서 랩으로 감싸 가지고 암매장지로 냅다 뛰었지.


암매장지에 도착해 보니까 확실히 초짜인 거. 너무 얄팍하게 묻었어. 근데 그럼 또 빨리 발견될 수도 있는 거니까 나야 좋은 거 아니겠어? 내가 낼 퀴즈는 그 시신이 발견되어야만 시작되니까.


후딱 묻고 다시 심곡동 반지하로 돌아가서 남은 시신을 처리했지. 그렇게 바쁜 날도 없었어. 간절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건 다 개뻥이야. 그날만큼 간절한 날도 없었는데 아무도 날 돕지 않던데 뭘.


며칠 동안 뉴스를 종일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안 나왔어.


우울증 걸릴 거 같으니까 다음 암매장지 헌팅하는 일에 몰두했지.


이번에는 누가 춘덕산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겠어? 설치해 놓은 캠 영상으로 동선을 따라가다 보니 실루엣이 좀 익숙한 거야.


특히 그 소리!


스러럭, 스러럭. 시링, 틱, 시링 틱.


맞아, 그놈! 날 눈뜨게 한 그놈! 이 새끼, 연쇄살인마였나 봐. 주무대가 춘덕산이었고.


이야 반갑더라고.


땅 파는 솜씨가 전보다 훨씬 나았어. 어쩌면 내가 파리와 사망 추정 시간을 공부할 동안 그놈은 삽질 연습을 했는지도.


춘덕산은 뭐 내 집 마당처럼 드나들던 곳이니까 매장지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어.


근데 하필이면 이놈이, 그 나무 아래 시신을 묻었더라고. 내가 화형 시킨 그 나무.


타다 만 줄기를 보니까 갑자기 숨이 막혔어. 고양이를 아무리 죽여도 계속 꾸던 그 불타는 나무 악몽이 줄어들고 있었을 땐데 갑자기 마주치니까 현타 제대로 오더라. 아, 그즈음 바빠서 잠을 거의 못 잤거든.


죽은 나무랑 눈을 안 마주치려고 애 많이 썼어. 시선이 조금만 닿아도 옛날에 살던 집 벽에 남은 끄슬린 자국이 자꾸 생각이 나서. 괜히 무서웠거든.


게을러지면 자꾸 악몽이나 꾸고 하니까 그때부터 진짜 부지런하게 움직였어. 운 좋게도 춘덕산 그놈도 부지런하게 일하더라고. 그 연쇄살인마 이름값 제대로 하대?


그 사이 성주산에 암매장한 시신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떴어.


표정들이 아주 가관이었지. 역사상 이렇게 난해한 사건은 없었다, 신원 확인이 어렵다, 사망 시간 추정에 혼선이 있다. 주로 이런 내용인데, 신나더라고. 내가 이긴 거 같고.


종교적 이유인가? 아니면 복수인가? 오지게도 헤매대.


1차 브리핑, 2차 브리핑 때도 수사보고는 별거 없었고 결국 미제사건이 됐어.

이 정도면 완전 범죄 아냐?


근데 원래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부랄이 깨지는 거야.


그해 겨울, 갑자기 공급이 끊겼어.


춘덕산 그놈이 하도 뻔질나게 암매장을 해대길래 아예 그놈 집 앞에 진을 쳤었어. 집에서 시신을 가지고 나오는 시간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면 나도 제때 재료 준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놈 집 앞에 있는 블박 영상도 섭외하고, 그놈 차량을 알아내 차 밑에 GPS도 붙였지.


한참 좋았는데. 얼마 안 가 이쯤이면 하나 들고 나올만한데 싶은 날이 지나도 안 나오는 거야.


뭐야, 쫄았나? 아님, 좀 쉬나?


답답해서 근처 다니며 놈에 대한 근황을 물어봤어. 돈 떼먹고 나른 친구인데 나도 사정이 급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하면서.


부동산 아재가 그러더라. 놈이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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