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명 Aug 03. 2018

이영주 작가의 일상 너머의 일상

마음에 비치는 그림 

붓으로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사진이 포착한 어떠한 순간을 그린 것 같기도 한 하나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놓여 있다. 이 그림은 회화적인 어떠한 테크닉이나 테마가 주는 독특함을 천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오히려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이기에 조금은 무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은 단번에 주제나 테마를 통해서 우리를 그러한 의미의 연쇄에 사로잡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작가는 우리를 위해서 또는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위해 파도의 리듬이나 구름의 색채 안에 의미나 생각의 집중을 텅비워 놓는다. 그러나 그림의 각 부분들은 꼼꼼하고 강박적일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를 주고 있기에 마치 우리에게 현실적인 어떠한 재현된 이야기를 따라오기를 권유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집중은 곧 길을 잃는다. 이곳에는 놓인 풍경 이외에는 어떠한 이야깃거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창문 너머로 놓인 풍경처럼 이 그림은 그저 사실적으로 놓여 있다. 나는 오히려 은연중에 이 그림이 스스로 이것은 ‘그림에 불과하다’ 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은근히 빛을 받아 빛나는 사물들, 우울할 정도로 깊은 색채감, 공허한 공간과 외로운 사물들은 낭만적이고도 묘한 고독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것이 이 그림이 지닌 묘한 현대적인 나르시즘적 이미지, 혹은 자아도취적인 관점을 내포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닌 이미지로서, 주관적인 관점이나 카메라의 포커스처럼 풍경을 프레이밍 framing 해내는 그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나게 한다. 때문에, 그림이 관련을 맺고 있는 영상 스틸의 어떠한 '장면', 카메라의 기계적인 빛을 포착하는 렌즈의 심도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도약은 아니라고 본다. 프레임이라는 하나의 장면은 곧 나머지의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현실 결핍의 한 상징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영주의 회화는 완성된 세계를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된 심상의 한 조각으로써 나른한 상실의 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강렬한 현대의 이미지의 연쇄들 속에서 시선 둘 곳을 잃은 회화의 소외이기도 할지도 모르겠다.

 



부산에 작업실이 있는 이영주 작가 - 사진의 정지된 찰나가 주는 초현실적 인상과 회화적 터치가 독특하게 결합하고 있는 이미지를 묘사하는 그만의 화풍은, 감정이나 정보가 과잉되어 있는 우리의 시각적인 세계에서 절제된 방식의 담백한 시각 구성, 회화의 조건들, 그리고 우리의 정서적 관조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알던, 적어도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현실로부터 멀리 떼어놓은 체, 낯선 시간의 감각을 던져주는 그의 회화는 오히려 단조로움을 넘어서는 신선함을 주고 있다. 




그림은 지극히 관조적인 시선으로 대상과 풍경을 펼쳐 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내밀한 관련을 지닌 무의식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진실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듯이 보인다. 어쩌면 창문 그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중인지도 모른다. 가장 일상적이고 무료한 시간의 빈 여백 속에서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며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초현실적인 순간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나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내 마음에 비친 그림은 무엇일까?   




진부한 일상의 표피적 외양 속에서도 창문 사이로 부서지는 빛들은 사물과 일상의 풍경들을 생동감있게 물결치게 한다. 의미와 의미 사이나, 무장해제된 시간의 공허함 사이에 존재하는 어떠한 순간의 빛 속에서 문득 우리는 현실이 아닌 곳에 한 번쯤 존재 가능한 빛나는 존재가 되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림이 아니다.’ 마치 마그리트가 파이프를 그린 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표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오히려 이것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분주한 시간, 혹은 어떠한 어지러운 강박적인 어투의 예술적 권유들로부터 피해 또 다른 시간을 사는 순간들을 포착한 비범한 초현실의 세계 그 자체 인지도 모른다. 



이영주 작가  88zoo@hanmail.net 




이전 02화 김영미 작가의 환상과 놀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