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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Jul 20. 2018

기쁨의 흔적으로서의 그림

장수임 작가의 숨은 그림 찾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창이 있었다. 커튼을 열어젖히자, 마치 나의 등장을 오랫동안 기다려 오기라도 한 듯 반갑게 맞아주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나타난다. 새로울 것도 없이 친숙한 꽃병, 가구와 귀여운 동물들은 첨예하게 구분되거나 긴장감을 지니고 등장하지 않는다. 이 공간 안에서는 누구나가 주인공이다. 바닥의 카펫 패턴과 동물과 나비의 무늬에 새겨지는 색채들은 처음부터 하나였듯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뒤섞이고 있다. 이들은 그림의 일부라기보다 커튼 뒤로 활짝 열린 마음의 창문처럼 우리에게 나타난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음악의 가장 커다란 요소 중의 하나가 청중이다. 이 이야기를 미술에 적용하여 말한다면 그림의 가장 커다란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의 삶 속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장수임의 회화에는 지난한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문득 넘쳐흐르는 멜로디처럼, 사물들과의 놀이와 색채들의 세련된 뒤섞임 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의 회화는 우리와 결부된 어떤 경험의 인상들과 다정한 위로들이 엄숙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띠고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커다란 매력이다. 


장수임은 부산의 어느 화실에서 부부가 함께 그림을 그려 생활하는 회화작가이다그녀는 대학 동기이자 역시 화가인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며 생활과 작업을 겸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부부 화가의 아파트와 작업실을 겸하는 생활공간을 보면 이들이 가꾸어 온 공간의 아늑함이 잘 드러난다. 이 그림들은 아마도 햇빛이 드는 작업실, 거실을 뛰노는 자라나는 여자아이, 음악과 함께 하던 화가 부부의 일상 공간을 떠올려 보지 않고는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마치 비슷비슷한 구도의 수채화를 위한 사물이 놓여 진 테이블과 같은 그림 속의 공간들을 거닐며, 음악의 이국적인 멜로디가 우아하게 변주되어 가는 과정처럼 그곳을 함께 산책하게 된다. 그곳은 소박하지만 세상의 현란함과 거리를 두고 좋아하던 아이의 흔적과 음악, 사물들이 나름의 세계를 꾸리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섬과 바닷가의 향기가 난다. 나는 그들이 그동안 마주했던 일상의 고민들이 없었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수준만큼의 낙천성과 대화하며 쌓아왔던 시점을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  





그렇다고 마냥 장수임의 회화를 소박한 프리미티브(원시적)의 범주로 단정하는 것은 그림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다. 수채화의 투명한 비침을 아크릴 물감으로 무리 없이 옮겨놓는 감각이 오랫동안의 숙련된 화가의 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세필로 표현되는 겹겹의 잎과 가구들의 세부적인 표현들이 작가가 섬세한 기교를 지닌 연주자의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풍성하게 번져가는 꽃,  바닥, 사물들이 지닌 패턴의 미묘한 움직임도 스스로 살아서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 있는 운동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 들 속에는 분명 우리가 기억하는 어렴풋한 기억 속 숨은 그림들이 존재한다. 패턴과 사물과 배경인지 따로 걸린 그림인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모두들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림들은 조금씩 어긋나 있는 원근이나 재치 있게 비스듬한 수평선들이 멀리 있는 풍경들과 가까운 것들을 평면적으로 뒤섞어 독특한 공간 구성을 지니게 되었다. 아마 어린아이의 시점을 자연스레 체득한 결과물일 것이다. 장수임의 회화에서는 감각적이면서도 보다 차분하고 절제된 색감으로 변모하고 있는 점과 무엇보다도 모조리 다 채우지 않고도 (탁 트인 공간으로 처리된 배경처럼) 시각적인 경쾌함으로 이끄는 절제된 비움과 구성이 돋보인다. 틀림없이 아이와 함께, 그의 천진하면서도 감각적인 회화들도 자연스레 함께 성장하여 갔을 것이다. 그림 속 거실이라는 공간 속에 나름의 자세로 있는 각각의 모양과 사물들을 숨은 그림처럼 찾아내는 기쁨을 우리의 삶의 공간에서도 연장해 볼 수 도 있다.  




한때 모든 사물이 나의 무대에서 주인공이며 먼 미래와 현재가 커다란 구분 없이 뒤섞여 있던 그 시기를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교훈이나 예술미학의 엄숙함이 때로는 일상의 삶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장수임의 회화는 그 모든 위축감을 이해하며 우리 삶의 아름다운 그림 속 놀이들을 굳이 지워내지 않는다. 멜로디처럼 마냥 떠오르는 기쁨도 있고, 그림책과 내방에서 모두가 친구였고 친근하게 서로를 인정해 주었던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빛과 사물들의 진정한 관능성과 감각, 풍요로운 기쁨을 회복해 준다는 점에서, 장수임의 회화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감상하는 법도 아울러 배우게 해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와 목적의 경계들 속에서 나의 주변 사물들은 언제나 첨예한 긴장의 무대가 된다. 우리는 사물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던 우리의 마음속 커튼 뒤 숨은 그림들의 동산을 잊고 있다. 나는, 가까이 손을 뻗으면 존재하는 우리의 삶과 장수임의 회화를 결부하여,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통해 세계를 상상하고자 했던 열망을 아직은 간직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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