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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Sep 21. 2018

기억과 빛을 만난 추상회화

조부경 작가의 그림들 

얼핏 보기에 그림들은 무엇인가를 묘사한 것 같다. 아마 그것은 공간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굳이 공간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무엇인가는 중요치 않다. 우리가 본다는 사실로부터 파생된 그 무엇은 형태로 변모했다. 공간에 놓인 사물과 형태는 서로 섞이면서 구분 없는 물질의 본질, 그러니까 시간 속에 흐르는 존재론적인 증명처럼 서서히 우리에게 부각된다. 


우리가 의미, 혹은 언어라고 불러왔던 구분들이 흔적만을 남기며 이리저리 경계를 긋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또 다른 표현으로 지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강렬하고 대비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이 그림에서 경계들은 대조를 위해 강압적인 권유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드러운 뒤섞임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탐미적으로 보일 정도로 다각도의 구성 요소들을 다양하게 변주해 내고 있다.   





작업실의 빈 구석과 창문 밖 베란다를 보며 그림을 그리는 조부경 작가의 오랜 응시는 캔버스 위에 빛을 대면하는 사물이 반사되며 형태를 그려내는 과정들을 정성스레 반복한다. 조부경의 회화는 현실의 한 측면을 (보이는 방식들을) 드러내 보이지만, 바로 그 물질이 우리의 망막에 맺히며 드러나는 비본질적 측면들을 은근하게 반영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시간의 현존성 안에서  빛과 기억이 만나는 순간들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는 습관적 형태는 역시 상당히 강한 긴장의 속성, 구성적 원리 위에서 우리의 인간적 정신의 한 단면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시간 속에서 만이 형태에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우리의 인지적인 체계가 순간 속에서 가시화되는 형태의 속성들 말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기억의 요소와 관련을 맺는 '색상의 덩어리'를 외면할 수 없다. 색채들은 부드러운 원래 캔버스 천의 속성을 그대로 전달하듯 강렬한 대조 없이 은근하게 다가온다. 사실 이 회화는 처음부터 색상과 형태, 빛의 불가분의 회화적 요소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우리에게 그 외연의 제한성으로 인한 '인식의 한계'를 드러나게 한다. 형태가 바로 물질이며 그 속성을 비틀면서 회화를 줄곧 모더니스트들이 추상으로 비구상으로, 미니멀로 나타내며 제시해 오지 않았던가. 






조부경 작가의 회화의 색상은 미니멀리스트의 물성이 강조된 색채라기보다는 가변적인 심리적 특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점이 더욱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지점인 것 같다. 채도가 낮은 푸른빛이 감도는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두 번 세 번을 자세히 다가가 그림을 보았을 때 그림은 오히려 노랑과 주황색의 빛깔이 두드러지는 색채감을 지니고 있다. 바탕에서 작은 입자가 비쳐 올라오는 여러 번의 꼼꼼하고도 치열한 붓질이 아마도 그렇게 약간의 착시로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를 주고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기억이나 이미지가 규정하는 그러한 강압적인 단정에 대한 지각적인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았던, 혹은 기억하는 것들은 이러한 메커니즘 안에서 그 무엇도 단정적으로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조부경의 회화는 우리가 나 자신이 아닌, 어떠한 순간의 일부가 되어 마주하는 현존의 요소로서 있을 때 보이는 것들을 표상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깃들게 해준다. 빛 안에서 구조도 외형도 덩어리도 궁극적으로 인식과 반응하며 자리 잡은 하나의 의미의 굴곡이라는 명제와 그 한계들은 작가가 기억하는 조각들을 만나서 순간의 일부가 된다. 



프레임 안에서 나는 절대적 긴장의 구성 요소들의 질서와, 또한 그 어떠한 것도 분명하지 않은 경계와 구분들을 동시적으로 경험한다. 조부경의 회화에서는 절대적 질서를 동경하는 듯하면서도 그 어떤 단정적 강압을 용납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 그의 회화는 형태와 물질의 본성에 관해 심미적인 약간의 심리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모더니스트들이, 형태가 지닌 물질적 속성이 물감이 되고 색채가 되는, 그러면서 회화의 한계와 물성을 부각했던 태도들을 견지하면서도 독특한 지각적인 변용을 시도하고 있다.





긴 응시의 시간을 거쳐오며 조부경은 캔버스라는 닫힌 공간에서 형태가 지니는 표피적으로 관여할 뿐인 경계들 위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재료의 내부에서 (물감이나 빛, 반사와 입자 등) 그것은 형태적 본질을 규정하고 시간과 관련을 맺는 공간들이 덩어리로 형태로 점차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성질의 직관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오히려 현대 물리학에서 점차 사실적인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입자가 시간 안에서 우리의 관찰 안에서 형태나 공간을 구성하는 원리들을 한번 숙고 해 볼만 하다. 빛을 반사하는 그림들은 우리에게 항상 시간 속 관찰의 대상이 되면서 공간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직관을 명민하게 포착하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과정안에는 진실한 것이 세겨진다.   




조부경의 회화는 우리가 나 자신이 아닌, 어떠한 순간의 일부가 되어 마주하는 현존의 요소로서 있을 때 보이는 것들을 표상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깃들게 해준다. 빛 안에서 구조도 외형도 덩어리도 궁극적으로 인식과 반응하며 자리 잡은 하나의 의미의 굴곡이라는 명제와 그 한계들은 작가가 기억하는 조각들을 만나서 순간의 일부가 된다. 끊임없이 응시해온 시간들, 그것은 사실적 외형이기도 하고 내면의 의식적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틀림없이 의미라는 한계에 부딪혀 표피 만을 집요하게 강요하는 형태와 결별하여 오로지 자신의 (의식/무의식 같은 수준의 이분법적 내면이 아닌) 또 다른 다원적 차원과 관련을 맺는 순간들을 경험했을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힐링이라고, 천착이나 혹은 내면화라는 그 어떠한 용어로 단언하여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조부경의 그림은 소위 인기 있는 대중문화적 아이콘을 충동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내놓는 도발적인 회화 작품은 아니다. 다만 빛과 시간이 만나 그려내는 형태의 다양한 구성을 다시금 살펴보고자 하는 관객의 깊은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한 번쯤 갤러리에서 멈추어 서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가의 눈에 비친 빛과 사물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다양한 갈래들의 시간을 긴 호흡으로 작가의 권유와 함께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조부경작가  cho77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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