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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Sep 14. 2018

어느 만화가의 교실 풍경

조민협 작가의 잃어버린 현실들   

내달리는 시간만큼이나 우리의 생각은 속도에 맞춰 흐른다. 상념과 계획들은 빈 공간 없이 촘촘하게 정보의 그물을 채워간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은 비트가 빠른 음악과 같다. 깨어있는 동안 두근거리는 비트는 우리에게 좀처럼 잠을 주지 않는다. 꿈을 꿀 여유가 없는 것이다. 도시와 공간, 학교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비트를 주는 다양한 장면들을 선사한다. 끊김 없이 흐르는 사운드, 반복되는 일상들이 주는 긴장은 그에 걸맞는 해방구나 문화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한다.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순간에서 조차도 사실상 우리는 불편한 각성들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러한 반복적인 고리들로부터 불쑥 튕겨져 나와 어떤 공간과 순간들을 만날 때가 있는 것 같다. 현실 혹은 정신이라는 음악 위로 순간적인 실수로 누른 일시 정지 버튼이 작동한다. 밝은 일상의 시간 사이에 꿈이 살아난 것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나를 현실적 연결고리와 불편함 속으로 몰아넣던 긴장의 그림들을 찢고 또 다른 기억의 차원으로 발을 내딛으면 어떠한 기분이 들까? 백일몽처럼.





카툰 작업을 하고 있는 조민협의 그림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러한 거창한 이야기까지 필요치는 않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민협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야 할지 카툰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회화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해지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사는 현실 속 감정에 담겨있는 인식의 고리들이 나른하게 붕괴되는 그러한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조민협의 그림은 우리에게 모처럼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하고 각성하게 한다. 가공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조우는 참 독특하고 낯설게 우리의 친숙한 것들을 달리 보게 만들고 있다. 뻔한 것들(?)을 그리는 조민협의 그림들은 있는 그대로의 교실 풍경을 어떠한 해석이나 주제를 달지 않고 우리가 본 것들을 날것으로 드러낸다. 사물이나 풍경, 혹은 사람들은 거기에 그렇게 그저 있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봐 왔던 것이고 아무런 의미도, 해석도 필요치 않는 친숙한 대상이기에 이것은 어쩌면 이미 우리의 일부, 혹은 의식의 미처 되새기지 못한 숨겨진 기억 한 조각처럼 되살아 난다.


조민협의 그림에는 일상이 주는 진부한 공간이 되살아나 색다르게 말을 건네고 있다. 오히려, 익숙한 것들을 가공하고자 하는 일체의 서정적인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들은 어떤 현대적인 해석을 가하고자 하는 그림은 아니다. 우리는 이 그림들을 나 자신과 실제적인 어떠한 관계를 가진 듯이 만나거나 ‘경험’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이 주는 흥미로운 사실감과 집요하고도 끈기 있는 표현들을 쉽게 뿌리치기 힘든 것은 어떤 이유일까?





정지되어 있는 시간, 낯설고 익숙한 대상들, 텅 빈 공간들은 – 화려한 이미지가 우리에게 상시적으로 말을 걸거나 미술의 문화적 테마를 요구하는 이러한 때에 – 오히려 반대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기술적으로 강박적인 디테일을 요구하는 작가의 작법은 무의미한 것을 강박적으로 노동하는 시지프스의 행동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물성화 된 교복과 사물의 친숙함이 부각되어 유머러스하고도 허무한 측면까지 느끼게 된다. 그렇다. 슬프게도, 아무도 다루지 않았던 것들 - 닫힌 공간과 교실의 학생들과 사물들의 색다른 집중에서 다소 놀랍고 기묘한 신선함이 있다.





길을 걷거나 신문을 펼치거나 웹서핑을 할 때에 우리는 이미지가 말을 건네고 규정하는 어떤 강요들을 떨쳐낼 수가 없다.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경험과 무관한 수많은 단어의 설명들을 접하면서) 거닐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들에 의해 사로잡혀 있다. 잘 짜인 정신의 시간표에 따라 우리는 사실상 허무의 빈 공간들을 명쾌함이라는 현실적인 색깔들로 덧칠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그림들은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아무런 관습적 의미의 테마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너무나 익숙해서 해석을 가할 필요조차 없는 그러한 풍경들과 생경함들이 주는 경험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의미와 정보의 속도 속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공간과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하고 지낸다. 이 그림들은 내게 뒤돌아선 여학생의 뒷모습처럼, 강박적으로 한 곳만 향해 달리던 정신의 한숨처럼 현실이라고 믿었던 그 너머의 시간들을 선사했다. 주변부에만 존재하는 낙후된 공간이나 잉여의 시간 속에서, 나는 꿈이 나에게 주곤 하던 존재론적인 시선을 회복할 때가 있다. 마치 구글의 맵을 우연하게 잘못 누른 뒤 길을 잃고 그 지역의 로드맵을 통해 우연하게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마주한 것과 같다. 그렇게 튕겨져 나가서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무한하게 열린 시간의 어떤 열린 문을 통해, 강렬하게 각인된 일상이란 현실을 익숙한 낯섦 속에서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사실적이면서도 꼼꼼하게 재현된 별 뜻 없는 도돌이표 속 음악처럼 정지한 풍경들은, 나의 학창 시절에 분명 존재했지만 어떤 잃어버린 시간의 빈구석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 그림들은 우리가 언젠가부터 익숙해 지기로 작정했지만, 사실상 거칠게 잘려나간 심상의 한 절단면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면서 분명 그것은 얼어붙어 깊은 심상의 저 깊은 바닥에 잠긴 꿈 꾸고 있는 우리 의식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수준 높게 재현되는 있는 그대로의 낙후된 공간 속에서, 비로소 자기연민 속에 스스로를 지탱하는 나 스스로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이런 종류의 재현 예술이 지닌 진정한 덕목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토록 익숙한 것들을 강렬하고도 낯설게 ‘경험’ 하는지 모른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듯 말이다. 




조민협작가는 macias01@hanmail.net 는 만화, 카툰, 일러스트 등의 작업을 하며 현재 웹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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