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문화기획가 하정아
Jan 13. 2021
징글징글 사랑하는 단어가 사람이었지, 아마!
좌충우돌 문화기획가가 쓰는 <그들이 사는 세상> 외전
#두번째스무살 #기록으로잡아두는기억
#짠내걷어낸사는얘기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스터스 스크럽'의 성장과정이었다. 시간여행의 타임머신이었던 그림 속 '바다'가 빨려들 듯 사라지며 돌아온 집, 방 안에서 루시와 에드먼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짓던 유스터스의 모습은 여전히 묵직하게 마음을 터치한다. 뭔가 짠하기도 하고.
그 미소엔, 상상 이상의 엄청난 일들을 겪어내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느라 쌓여진 묵직한 감정의 테, 루시와 에드먼드가 그 모든 걸 지켜봤고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안도의 동질감, 자신을 견뎌준 이들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모두 함축되어 있었다. 그래, 알아, 다 알아, 토닥거림이 진한 허그 뒤로 따를 것 같지만 영화는 복잡한 감정을 담백하게 풀어낸 엔딩으로 두고두고 흐뭇함을 주었다.
유스터스 사촌들의 입장이야 묻지 않아도 다 아는 것 아닌가? 쉼없이 계속되는 불평불만, 잘난 척, 있는 척, 안하무인에 사건사고는 도맡아서 치니 할 수만 있다면 확 갖다 버리고 싶었을 텐데, 그런 인간을 견디는 일이 어디 쉬웠을까. (<반지의 제왕> 피핀에 비하면야 이 소년은 차라리 귀엽다.) 무시로 짜증 나지만 어쨌든 낯선 세계에서 좌충우돌하는 사촌을 데리고 다녀야 하니 마음을 다잡고, 다잡고, 또 다잡을 밖에.
그러고 보니, 같이, 힘든 모험을 헤쳐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전우애 같은 게 생긴 걸까? 유스터스의 변화로부터 시작된 반전은 드라마틱했는데, 그런 유스터스와 함께 한 루시와 에드먼드 또한 괴로우면서도 상당한 성장과정을 경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로가 주고받은 영향이 있었음은 마지막 미소들에서 이미 확인했다.
ㅡ
끌어모아 판을 만들고 조율을 업으로 하는 문화기획가로 살다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 많은 명함을 받았는데, 산처럼 쌓인 수두룩한 종이조각들을 들여다보며 문득 이 중 몇 사람과 마음으로 벗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유의미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좋은 문화 현상을 만들고, 아름다운 예술을 선보인다 하더라도 이 바닥 또한 엄연한 비즈니스. 공과 사가 복잡하게 얽혀드는 일로 만나, 서로 마음을 터놓는 존재로 남게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사람 손에 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헤집어봐도 올해는 내게 참 유난한 해였다. 아으, 못된 것, 어쩜 그렇게 성깔을 부려댔는지, 내가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미치도록 휘몰아치는 태풍에 이처럼 다양한 인간군상을 종합세트로 겪어댔으니 혼이 나갈 밖에. 다 겪는 일, 어쩌다 왕창 몰아서 겪었기로서니 뭐 그리 죽을 시늉이냐 하겠지만 이건 내 손가락이고, 내겐 거의 지구종말급 재난영화를 방불케 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지켜낸 사람이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죽여야 했던 사람이 당신이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함께 얽혀든 당신들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대응하며 사느라 내 감정도 복잡했단 뜻이다.
사람이 모여, 사람이 하는 일이 전부인 우리 세계에서, 누군가의 진의를 분석하고, 이 일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를 두고 머리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코가 베어지다 보니 균형을 잡느라 온몸이 다 뻐근하곤 했다. 내 목덜미의 파스냄새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는데, 향수도 아니고 파스냄새라니, 우스갯소리로 내가 이래서 장가를 못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분석하려 해도 피아식별조차 안 되는 마당에 마음 터놓기는 무슨, 순진하기도 했지. 타인의 언행에서 숨은 맥락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매 순간이 벅찼는데, 코딱지만하긴 해도 주식회사의 대표라 사업가 마인드를 강권 받는 통에, 아무렇지 않은 척 등을 곧추세우느라 정신은 늘 아득했고 마음은 너덜너덜했다.
거칠고 모질고 비정했던 날들을 지나와 보니, 징징대고 실수투성이고 사고뭉치여도 내쳐지지 않았던 유스터스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내 현실에서 그 소년처럼 굴었다간 아마도 당장에 버림받았거나 소외되었을 것이다. 매장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듯.
일전에 '드립커피를 내릴 여유를 찾았다'던 글에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시험 받았다'고 썼는데, 지친 감정은 둘째 치고, 솔직히 사람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참으로 징글징글했던 것 같다. 언젠가 전에 몸 담고 있던 회사의 대표가 돌아가며 속썩이는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노래방에서 '말 달리자'를 부르며 온 영혼을 다 불어넣어 '닥쳐'를 외쳤던 게 기억나는데, 그다운, 꽤 귀여운 복수극이었다. 알아들어야 할 인간들이 못 알아들은 것은 웃프지만.
올해 내내 '지옥은 타인이다' 라는 문장이 유독 크게 달려들었는데, 내 지옥은 '타인'이었고, 성능 좋은 탈곡기에 걸려 멘탈은 탈탈 털렸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성장했냐,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마음 속에 들어앉은 칼 몇 개가 광란의 춤을 추며 그어대는 통에 비릿한 상처들을 견뎌내느라 혼미했고, 감당의 수위를 넘길 때면 고통스런 관계를 끊어내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느라 애가 쓰였다고 할 밖에. 하지만 조금은 덤덤해졌다. 덤덤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이게 위로라니, 음... 이건 좀 짠내가 나는군.
생각해보면 혈육인 가족도 늘 좋은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만난 타인이 어떻게 마음에 꼭 들어찰 수 있을까. 죽고 못 사는 사랑도 어느 시점에선 징글징글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타인이야 오죽할까. 지내다 보면 때로 서운함, 실망감, 야속함, 혹은 극한의 배신감에 치를 떠는 순간이 쓰나미처럼 달려들 때도 있을텐데, 어떻게 타인이 늘 좋은 사람일 수 있겠냐 되묻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쯤 되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시전할 밖에. 술 한 잔에 맘 놓고 흉이라도 좀 볼 밖에. 하늘 아래 흠결 없는 사람도 없고, 십 년을 만나든 삽 십 년을 만나든 서운함이란 녀석은 언제고 생길 수 있는 게 '관계'이니, 도저히 안되겠으면 욕도 좀 하라 하고 싶은 것이다. 묵언수행하듯 가슴에 끌어안고 산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폭발할 것 같다. 아니, 심장이 먼저 아우성칠지도 모르겠다, 날 그만 멈춰줘, 라고.
꼭 그래서 3명일 때 화장실을 잘 못 가는 건 아니지만... 적당하게 흉 좀 보고 사는 거 뭐가 그리 대수겠는가. 그쯤은 우리 모두에게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바야흐로, 알지만 요것 봐라, 아니 이 사람들이... 하면서 대수롭잖게 넘어가야하는 비범함도 갖춰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서운하다. 하지만 그깟 흉좀 보았다고 나에 대한 마음을 통째로 걷어내는 게 아니라는 것쯤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원래 내 자리가 욕 먹는 자리기도 하다. ㅋ 나랏님은 더한 욕도 먹고 사는데 고작 흉좀 본 게 뭐 대수인가. 물론 흉 안 잡히고 살면 상당히 품위있겠지만 그게 어디 쉽나. 나는 차라리 작은 도발로 가볍고 명랑한 사회를 꿈꾸겠다. 혹여 흉을 좀 보더라도 그게 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서로의 관계를 끊어낼 정도가 아니면 되지, 흠없고 고결하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 아닐까. 나 또한 나름대로 이 바닥 평판이 중요한 사람이다 보니 늘 타인의 평가에 귀가 쫑긋할 수밖에 없는데, 모르긴 해도 나를 두고 욕하는 사람, 흉보는 사람, 맘에 안든다는 사람 분명 적지는 않을 것이다. 성격이 무던하지도 않거니와 일도 비교적 깐깐하게 하는 편이라 크던 작던 악역도 해야 하니 이왕 잘근잘근 씹을 거 조금은 살살 해주면 고맙겠다, 정도의 바람만 가질 뿐. 물론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겪어낸 내면의 전쟁은 숱하게 많았음을 고백한다.
내겐 여전히 쓰라린 관계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스스로를 지옥에 가둔 채, 타인에게도 지옥이 되는 사람들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너무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타인에 대한 '반응유연성'이 생각보다 말랑하여 어려움을 배로 겪어야 했지만 조금쯤 물러나 바라볼 여유가 생긴 덕분이기도 하다. 이 여유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고 분단위로 환산해도 이처럼 조그맣고 짧은 세상에, 뭐 그렇게까지 복잡다단한 일이 펼쳐지는지 놀라울 뿐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단단해져야겠지. 이젠 조금쯤 요령도 부리고, 쥐콩만한 품격과 자존심도 챙기며 살아보고파 진다. 내 구역 사회관계망에서 소외될까 불안해 하지도 않고, 고슴도치들처럼 지혜롭게 타인과 거리를 두며 조금쯤은 맘편히 살아보고파 진다. 나름대로 감정과 관계를 복원해가며 삐뚤어지지 않기 위해 부던히 애쓰고 있으니 왠만하면 좀 살살 다뤄주면 좋겠다. 씹고 빨고 던지고 할퀴고 하더라도 우리 관계의 제자리에만 갖다 놓아주면 좋겠다. 징글징글하게 사랑하는 단어 '사람'과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간격 복원력은 필요하니까.
#시시콜콜한일상 #지옥은타인이다 #문득그런생각 #누군가의성장과정도아름답고 #누군가의성장을지켜봐주는묵묵함도아름답다
#발음하고나면같아져버리는삶사람
#적당의미덕이필요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