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밥 한번 먹자.' 이제는 진심이 아닌 형식적인 인사가 되어버린 먹기 인사. 인간 욕구 중 가장 기본적인 욕구. 먹기. 음식. 부엌. 이것을 담는 작가가 있다.
어릴 적 어머니는 가족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남긴 음식에 향신료를 섞어 드셨다. 남자와 여자는 한 밥상에서 식사하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는 부엌은 따뜻한 어머니가 있던 곳이었다. 우리의 옛이야기가 아닌 인도 이야기다. 2007년 영국 가디언지는 그를 인도 '델리의 데미안 허스트'라고 소개했다. '21세기 뒤샹'이라는 찬사가 붙는다. 인도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 수보드 굽타이다.
수보드 굽타 작품 Aam의 일부분 2015 ⓒphoto:Ben Davis "당신은 인도 예술가입니까? 아시아 예술가입니까?" 사람들이 물었다. 그는 답했다.
"I am just an artist. 예술가는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살건 주변 가까운 사람들, 자신의 나라, 정치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20년간 델리에서 작업하며 내 문화와 일상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동네 비하르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주 배고픔을 경험했다.
Subodh Gupta, Line of Control, 2008, Brass &Copper kitchen Utensils, 500x500x500cmⓒnaturemorte.com
"내가 지내는 델리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걸프 지역이 가깝습니다. 주변은 항상 정치적 긴장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정치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년 전 우리는 파키스탄과 큰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때 양국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핵을 쏘면 너희 2500만 명이 죽을 거야."
"오 우리는 10억 명의 인구를 가졌어. 그중 2500만 명이 죽으면 Big Deal이지."
그때 내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Line of Control>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상상해 보세요. 만약 마을이 폭격당한다면 부엌이 파괴됩니다. 내 가족의 먹을 것이 있는 장소. 음식 없이 삶은 없습니다. 이 작품은 부엌에 있던 오래된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과 도구를 모아 만들었습니다. 이 거대한 폭탄 구름 덩어리로 마음, 삶, 정치 사이 경계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Subodh Gupta, Very Hungry God, 2006, hundreds of stainless steel containers, 360x280x330cm, installation view, Monnaie de Paris, photo: Martin Argyroglo
거대한 해골은 <매우 배고픈 신>이다. 인도 부엌에서 스테인리스 용기와 냄비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역시 부엌에서 사용했던 용기를 모아 만들었다. 해골은 과거 인도인들의 죽음을 상징한다. 13세기 말 이후부터 서양 미술에서 죽음은 두개골로 표현되며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Subodh Gupta, Two Cows 1964, Bronze and aluminum with chrome 106.7x185.4x45.7cmⓒchristies.com 자전거에 우유병을 싣고 다니던 릭샤꾼이 있었다. 자전거를 소에 비유한 이 작품 제목은 <두 마리 소>다.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천 년 전 유목민인 아리아인들이 인더스 강 유역으로 소를 가져왔다. 인도 풍토에 맞지 않아 사육하기가 힘들었다. 인도 농경 사회에서 소는 농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에서 나오는 우유 역시 신성시했다.
Subodh Gupta, Silk Road, 2007, Stainless steel structure &utensils,200x480x480cmⓒSubodh Gupta 쌓여있는 스테인리스 도시락 탑들이 거대한 테이블 위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실크로드 Silk Road>이다. 굽타는 일식집에서 빙빙 도는 움직이는 그릇을 보고 착안했다. 중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가난한 인도 사람들도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음식의 여행 food travel을 표현하고 싶었다. 스테인리스 도시락은 카레의 보온성을 더 길게 유지시켜준다. 국물과 기름이 흡수되지 않아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서 많이 사용한다.
굽타는 기억한다. 고향 마을에 누군가 사망하면 30일 후 제례가 있었다. 제례를 필름에 담아 짧은 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릇에 밀가루 반죽을 버무리며 소리 질렀다. 죽은 이를 위한 행위였다. 인도 장례문화에서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한 마음. 음식.
Subodh Gupta, Ray 2012, stainless steel and stainless-steel utensils, 6x4x4m ⓒartsy.net 인도에서 왜 스테인리스가 대중적으로 쓰였을까. 인도의 80%는 힌두교다. 힌두교는 '정'과 '부정한 것' 두 가지로 세상을 본다. 정결 정도에 따라 사람도 등급 제도로 나뉜다. 부정한 것 즉 낮은 계급 사람들이다. 질그릇이나 토기 그릇을 쓰면 낮은 계급 사람들 타액이 묻는다. 부정한 것이 오염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타액이 전해지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쓴다.
영국이 들어오기 전 인도 철강 산업은 영국을 능가했다. 카스트 제도는 유동적이고 느슨했다. 영국 식민 통치수단과 분열정책으로 카스트 제도는 절대적 신분제도로 굳혀졌다. 가장 아래 계급인 불가촉천민은 어느 곳을 가든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공동우물도 엄격한 규율을 따라 사용했다.
(좌) 수보드 굽타 <이것은 연못이 아닙니다> 2011-2013, old, aluminum utensils, water, painted brass taps, PVC pipes, motor, 165.1x482.6x784.86cm Collection Albright-Knox Art Gallery New York ⓒalbrightknox.org
(우)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라고 쓰여 있다. 1929 ⓒrenemagritt.org
마을 주민들은 한 파이프에서 나오는 공동 우물을 사용해야 했다. 물 때문에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굽타도 시골마을에서 뉴델리로 온 이주민 중 하나였다. <이것은 연못이 아닙니다> 작품은 오랫동안 낡은 부엌 식기들을 모은 것이다. 중간중간 수도꼭지가 있고 물이 흐른다.
<이것은 연못이 아닙니다> 제목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에서 착안했다. 마그리트는 예술 작품, 언어, 사실 사이 경계를 캔버스에 담았다.
Subodha Gupta, U.F.O. 2007 Brass utensils 114x305x305cm ⓒsaatchigallery.com 굽타는 미술을 회화부터 시작했었다. 현재는 스틸, 브론즈, 마블, 페인트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 뒤샹의 '레디 메이드'처럼 널려진 오브제를 가져온다. 그는 물건을 선택할 때 인도인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을 택한다. 또한 이주 문제와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생각한다. 그것들은 한 곳에 모여 거대한 연못을 만들어 오랜 인도 계급 제도를 말한다.
Subodha Gupta, U.F.O. 2007 Brass utensils, 114x305x305cmⓒsaatchigallery.com
굽타의 어릴 적 부엌 기억에서 시작한 그릇은 오늘날 음식 소비를 상징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모이는 것은 가족적 유대감과 친밀감을 나타낸다. 인도의 수많은 종교와 문화들은 다양한 식생활, 지역 특산품을 만들었다. 한 끼 나눠 먹자.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포용과 수용의 상징이다.
Cooking the World, 2017, aluminum utensils, monofilament line, steel ⓒpublicdelivery.org 굽타는 2017년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서 작품 전시와 함께 요리하고 먹는 퍼포먼스를 했다. 작가는 음식을 준비하고 관람객들은 먹었다. 알루미늄 도구들이 투명한 낚싯줄에 매달려있다. 낡은 그릇들은 개인의 기억과 시간을 매달고 있다.
참고
Museum of Fine Art Boston, 'Subodh Gupta:Coexistence, Ritual, Growth' 2016.3.23 ㅡMuseum talk
QAGOMA 'Subodh Gupta discusses his art practice and 'Line of control'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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